2006년 11월 9일 (목) 16:26 한겨레
‘입지 못할 옷’ 속에 비즈니스가…
[한겨레] “대체 패션쇼는 왜 하나요?” 소위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이 말의 뒤에는 종종 다음과 같은 냉소적인 부연 설명도 숨어 있다. 입지도 못할 옷을 대대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돈도 꽤 들 것 같은 패션쇼라는 이벤트 자체의 효용 가치는 무어냐는 것이다.
일단 패션쇼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 우선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즉 최고급 맞춤복이라는 의미의 이 컬렉션은 1960년대 기성복의 거센 바람 앞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오늘날도 파리에서 열리고 있다.
아마 ‘패션쇼의 옷은 보통 사람은 못 입을 옷’이라는 선입견은 오트 쿠튀르 쇼의 한 장면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다. 마치 예술에 가까운 듯 작품 같은 의상들이 선보이기 때문이다. 이 쇼에 등장하는 옷들은 우수 고객(VIP)들 개개인의 취향에 맞추어 프라이빗 오더(Private Order)로 판다. 예를 들자면, 주문복 체제인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패션쇼 역시 오트 쿠튀르 쇼다.
반면 ‘본게임’에 속하는 프레타 포르테(Pret-a-Porter), 즉 기성복 컬렉션의 패션쇼에는 대체로 ‘누구든 입을 수 있는 옷’이 등장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실은 아무리 봐도 패션쇼의 옷들이 그다지 ‘입을 만하게’ 보이지 않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숨은 이유들이 있다.
첫째, 디자이너들에게는 평범한 옷도 좀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장치란 화려한 무대와 조명, 모델들의 카리스마, 콘셉트에 맞춰 더 과장한 화장과 헤어스타일 등이다. 런던 출신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은 패션쇼에서 캣워크(패션쇼의 ‘T’자형 무대) 위에 인공비를 뿌리거나 살아 있는 늑대를 등장시켜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퀸처럼 ‘쇼’를 보여주는 디자이너들도 철저히 상업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패션 비즈니스계의 흐름 속에 점차 백기를 들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패션쇼는 냉정한 비즈니스의 장이다. 가구 전시회나 소프트웨어 전시회, 자동차 엑스포 등과도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 신제품을 보여주고 좋은 평가를 받아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단지 패션쇼라는 형식은 그야말로 ‘패셔너블한’ 표현 방식일 뿐이다.
두번째 이유는 패션쇼 의상들은 일부 ‘대표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대표선수 격 의상들을 토대로 디자이너들은 좀더 평범한 의상들을 추가하여 바이어들에게 내놓는다. 실제적으로 바이어들은 패션쇼 장에서 의상을 구경하는 것보다 전체 컬렉션이 구비되어 있는 조용한 쇼룸에서 제품을 자세히 보고 구입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서울 학여울 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는 1일부터 9일까지 SFAA·서울컬렉션이 열렸다. 외형적으로는 유수의 패션 도시들과 큰 편차가 없을 정도지만 아직 우리의 패션쇼가 가야 할 길은 멀다. 패션 컬렉션 유치를 둘러싼 기구와 협회간의 세력 다툼, 글로벌 홍보체계 미흡,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독창적이고 검증된 신인 디자이너의 발굴 등이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쌓여 있다.
‘어디를 밀라노로 만든다’는 계획보다 SFAA 서울 컬렉션부터 부산 영화제 수준의 국제 축제로 만드는 데 힘을 합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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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패션쇼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 우선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즉 최고급 맞춤복이라는 의미의 이 컬렉션은 1960년대 기성복의 거센 바람 앞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오늘날도 파리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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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본게임’에 속하는 프레타 포르테(Pret-a-Porter), 즉 기성복 컬렉션의 패션쇼에는 대체로 ‘누구든 입을 수 있는 옷’이 등장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실은 아무리 봐도 패션쇼의 옷들이 그다지 ‘입을 만하게’ 보이지 않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숨은 이유들이 있다.
첫째, 디자이너들에게는 평범한 옷도 좀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장치란 화려한 무대와 조명, 모델들의 카리스마, 콘셉트에 맞춰 더 과장한 화장과 헤어스타일 등이다. 런던 출신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은 패션쇼에서 캣워크(패션쇼의 ‘T’자형 무대) 위에 인공비를 뿌리거나 살아 있는 늑대를 등장시켜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퀸처럼 ‘쇼’를 보여주는 디자이너들도 철저히 상업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패션 비즈니스계의 흐름 속에 점차 백기를 들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패션쇼는 냉정한 비즈니스의 장이다. 가구 전시회나 소프트웨어 전시회, 자동차 엑스포 등과도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 신제품을 보여주고 좋은 평가를 받아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단지 패션쇼라는 형식은 그야말로 ‘패셔너블한’ 표현 방식일 뿐이다.
두번째 이유는 패션쇼 의상들은 일부 ‘대표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대표선수 격 의상들을 토대로 디자이너들은 좀더 평범한 의상들을 추가하여 바이어들에게 내놓는다. 실제적으로 바이어들은 패션쇼 장에서 의상을 구경하는 것보다 전체 컬렉션이 구비되어 있는 조용한 쇼룸에서 제품을 자세히 보고 구입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서울 학여울 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는 1일부터 9일까지 SFAA·서울컬렉션이 열렸다. 외형적으로는 유수의 패션 도시들과 큰 편차가 없을 정도지만 아직 우리의 패션쇼가 가야 할 길은 멀다. 패션 컬렉션 유치를 둘러싼 기구와 협회간의 세력 다툼, 글로벌 홍보체계 미흡,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독창적이고 검증된 신인 디자이너의 발굴 등이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쌓여 있다.
‘어디를 밀라노로 만든다’는 계획보다 SFAA 서울 컬렉션부터 부산 영화제 수준의 국제 축제로 만드는 데 힘을 합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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