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관

"한국 통일돼도..."

기산(箕山) 2006. 11. 11. 10:37

                                                                                  2006년 11월 11일 (토) 03:02   조선일보

“한국 통일돼도 일본과 1대1 경쟁 어려워”



[조선일보]

미국 학계에서 최고의 동아시아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에즈라 보겔(Ezra Vogel)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역할처럼, 박정희(朴正熙)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76세로 6년 전 강의에서 은퇴하고 현재는 연구교수로 중국현대화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보겔 교수는 캠퍼스 인근 자택에서 본사 강효상(姜孝祥) 경제산업에디터를 만났다.

―요즘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가?

“최근 나의 주요 연구는 덩샤오핑의 시대를 조명하는 것이다. 그의 주요 활동기간인 1973년부터 1992년까지 중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1978년 이후 중국의 변화다. 덩샤오핑이 어떻게 집권해 어떤 전략을 수립했으며, 어떻게 변화를 일으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만약 덩샤오핑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 것으로 보는가?

“덩샤오핑이 없었더라면 중국은 아주 뒤처진 모습 그대로였을 것이다. 덩샤오핑 외에는 누구도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덩샤오핑은 아주 경험이 풍부한 리더였다. 경제정책을 다뤄봤고, 1966년부터 76년까지 당비서를 지냈다. 외교정책도 다뤄봤으며, 1949년부터 52년까지 중국 남서부 지방에서 지방행정을 해본 경험도 있다.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등 준비된 리더였다. 머리가 우수하고 전략적이며, 추진력도 갖추었다. 덩샤오핑이 아니었다면 중국은 훨씬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히 중화학공업 정책 이후 그가 폭력을 사용하고 나라를 경찰국가로 만들었을 때 우리는 매우 화가 났고 흥분했었다. 당시 한국은 철저히 통제된 사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큰 발전을 이룩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그 변화를 가능케 했던 독재적인 리더가 있었다. 1920년대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그랬고, 대만과 한국이 그랬다. 중국은 덩샤오핑 치하에서 발전을 이뤘다. 모두 독재적이었고, 중앙집권적이었다. 먼저 민주화부터 하라는 미국인들의 충고는 성공하지 못했다. 민주적인 정부하에서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독재적인 리더십은 잔혹하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결국 좋은 것으로 결과를 맺을 때가 있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 (보겔 교수는 과거 한국의 군사정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인물이다.)

―중국에서 시장경제와 공산당이 공존(共存)할 수 있다고 보는가?

“공산당에 대한 과거의 정의에 따르면 공존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공산당 자체가 워낙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중국 공산당은 대학에서 아주 우수한 인재들을 관료로 채용한다. 이들은 중국의 전 지역을 대표하며, 탈(脫)이념적이다. 지금 중국 공산당은 세 가지를 강조한다. 선진화된 문화와 과학, 그리고 모든 인민의 대표성이다. 이런 요소들은 혁명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당 자체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중국에는 과거 20년 전에 비해 훨씬 많은 자유가 부여되어 있다. 비록 과거의 공산당과 공식명칭이 똑같고, 비슷한 특징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미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시장경제를 위해 공산당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옳지 않다. 중국 공산당은 계속 변화할 것이며, 중국 사람들은 더 많은 개방을 원할 것이다. 실제적으로 중국인들은 외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일부에선 한국의 88올림픽 때처럼 2008년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Expo)를 계기로 중국의 민주화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중국은 한국과는 좀 다를 것 같다. 중국은 워낙 큰 나라이므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려고 할 것이다. 지방의 부락선거에서부터 시작, 전국 단위의 인민대표대회에 보다 많은 자유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중국인들이 국제적으로 큰 자부심을 느낄 경우, 보다 개방적인 성격을 띤 새로운 민족주의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일본의 긴장 관계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먼저 최고위급에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덩샤오핑은 일본과 좋은 관계를 맺었었다. 일본측에서는 오히라(大平) 총리와 나카소네(中曾根) 총리가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없다. 중국이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계속될 경우, 모든 방문을 중단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상호 방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보겔 교수는 지난해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일총리의 참배를 중단해야 한다’며 일본을 비판한 적이 있다.) 둘째, 일본은 2차대전에서 중국에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보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중국측으로선 일본에 알릴 것은 널리 알려 일본인들이 중국 쪽으로 되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논쟁거리가 있지만 중·일 관계보다는 좋아 보인다. 한·일 양국의 최고 리더들이 서로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토분쟁은 과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쳐 놓는 것도 필요하다.”

―얼마 전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중국은 앞으로 일본의 5배에 달하는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는데,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은 1980년대 중국 개방 이후부터 중국과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려 노력해왔다. 중국이 너무 강하다고 느낄 경우 또다시 균형을 찾으려 할 것이다. 북한의 경우 중국이 큰 형님처럼 자신들에 대해 명령을 하려 한다는 이유로 화가 나 있다. 중국의 세력이 매우 커질 경우에도 한국이 중국과 긍정적인 관계를 지속할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의 5배라는 표현은 너무 심한 것 같다.”

―미국이 일본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이유는?

“중국에 홀로 맞서지 않기 위해 일본과 같은 동맹이 필요하다.”

―귀하는 1979년 ‘최고로서의 일본(Japan as Number one)’이란 저서를 발간, ‘일본 배우기’ 열풍을 일으켰다. 일본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일본은 평화세력이고, 아주 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문화적으로 볼 때 일본을 아시아의 한 부분(a part of Asia)으로 보기는 어렵다. 경제적으로는 강하지만, 아시아에서 정치적으로 강한 세력은 되기 힘들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어떤가? 한국이 통일될 경우 일본과 견줄 만한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인구는 여전히 일본의 절반이어서, 일본과 1대1로 경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새우(shrimp)는 아니지만, 고래(whale)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강한, 유럽의 어느 한 강국처럼 중간 규모의 나라가 될 것으로 본다.”

(강효상 경제·산업 에디터 hskang88@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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