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40주기…2010년을 사는 어린 전태일
뉴시스 | 강은혜 | 입력 2010.11.13 15:48
"우리는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바보처럼 살아왔다.
우리 한 번 바보답게, 되든 안 되든, 들이박아나 보고 죽자"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지 40년이 흘렀다.
40년 전 81억 달러였던 GDP가 9800억 달러 수준에 이른 지금.
대한민국 가장 밑바닥에서 밤새 뛰던 전태일의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 최저임금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편의점, 카페, 음식점 배달부일까지 안 해본 게 없어요"
아버지가 퇴직한 이후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왔다는 김형원군(19·춘천시 퇴계동)은
주말 파트 타임으로 닭갈비 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일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항상 피곤하지만 학비를 벌려면 별수 없다"고 운을 뗀 김 군은
"지금은 시급이 5000원이라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편의점에서 일 할 때는 3500원꼴이라 엄청 힘들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말이 빨라진 김군은
"편의점은 시급이 진짜 짜요.
최저임금이 4000 얼마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3000 얼마를 부르더라고요"라며
"그래도 막일하는 것보다야 나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도 않아서
힘들어도 돈 많이 주는 알바를 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근자 들어 김군의 가장 큰 관심사는 취업.
다른 건 몰라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김군은
"솔직히 부모가 부자가 아닌 이상 부자로 살기는 힘든 것 같다"며
"저는 제가 많이 벌어서 제 자식들은 저 같은 고생 안 시키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장모군(21·원주시 명륜동) 역시 대학에 입학한 이래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온 케이스.
"대학을 다니는 것 자체가 나중에 잘 먹고 잘 살자는 이윤데
대학 때문에 빚만 벌써 800만원"이라며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인 장군은
1학년 때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해결해왔다.
새벽 내내 밤을 새워야 하는 PC방 아르바이트부터 소위 말하는 '막노동'까지 다 해봤다는 장군은
장학금을 놓친 적 없는 모범생이지만 요즘 들어 학업에 부쩍 부담감을 느낀다.
"지금 일하고 있는 주점 마감 시간이 새벽 4시예요.
손님이 없으면 더 빨리 끝나기도 하지만 늦어지면 아침에 들어가는 일도 허다해서
수업 시간에 자주 조는 편이에요."
학업에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은
얼마 전 장군의 부모님이 한평생 일궈온 농사를 접었기 때문.
"쌀값이 떨어지면서 줄곧 어려워하셨는데 농사를 지을수록 적자가 나다 보니 힘들어 하시더라고요.
이제는 농사일 접고 희망근로를 하고 계세요. 부모님께 손 벌릴 처지가 아니죠."
한창 '즐길' 나이에 일 하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장군은 발끈했다.
"요즘 '노는 대학생'이 어딨나요. 있는 집 자식이 아닌 이상 요즘엔 다 일하면서 학교 다녀요.
그게 커피 전문점이든 술집이든 여하간 거의 다 아르바이트를 하죠.
안 그러면 영어 학원 같은 건 꿈도 못 꿔요."
최저임금제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한참을 망설이던 장군은
"요즘 세상이야말로 전태일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고 입을 열며
"해마다 등록금은 몇십만 원씩 오르는 데 최저임금은 300원 오르더라고요.
이 나라는 대학생을 신불자(신용불량자)로 만들고 싶어 혈안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제2의 전태일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 나 살기에 바쁜 현실 때문인 것 같아요"라며
"우리도 뭉쳐서 비정상적인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하는데,
막상 취업문 뚫기가 급하다 보니 바꿔보려고 뭔가를 시도한다는 게 어려워요"라고 덧붙였다.
전태일 기일 40주년을 맞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10월~지난달
서울·인천 등 5개 지역 20~30대 청년노동자 618명을 대상으로 청년 부채에 대해 조사한 결과
51.6%가 '부채가 있다'고 응답했고
이 중 20대는 학자금·교육비로 인한 부채가 34.8%에 달해 가장 큰 원인으로 집계됐다.
젊은 신불자가 나날이 늘어나는 가운데
다음해 확정된 최저임금은 4320원.
이는 올해 최저임금인 4110원에서 210원 오른 수치다.
전태일이 근로 개선을 울부짖으며 떠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일하는 자들의 몸과 마음은 아직도 가난하기만 하다.
다소 씁쓸한 40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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