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판·검사되라"는 父살해하려다 일가족 몰살시킨 10대 춤꾼

기산(箕山) 2010. 10. 21. 22:20

"판·검사되라"는 父살해하려다 일가족 몰살시킨 10대 춤꾼

                                                                                    뉴시스 | 박대로 | 입력 2010.10.21 18:42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춤꾼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평범한 10대 소년이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아버지를 살해하려다 일가족을 몰살시킨 참극의 장본인이 됐다.

서울 성동구 A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이모군(13)은 평소 주변에 소문난 춤꾼이었다.

사진촬영에도 일가견이 있는 이군은 자신의 예술적 끼를 살릴 예능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꿈꿔왔다.

인자한 할머니와 자애로운 어머니, 붙임성 있는 여동생을 둔 이군은

약간의 '불량기'는 있었지만 큰 말썽을 부리지 않는 평범한 10대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이군의 앞에는 넘기 힘든 벽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 B씨(48)였다.

아버지는 "예능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하라며 "판·검사가 되라"고 강요했다.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아버지는 아들을 훈계하면서 매를 들기도 했다.

때로 폭언도 했다고 한다.

가슴 속에서 증오를 키워가던 이군은 지난 19일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꿀 계획을 세웠다.

이날도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은 A군은

"아버지만 없으면 어머니에게 효도하며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인계획을 세웠다.

이군은 이날 오후 8시30분께 하답십리동 자신의 아파트 인근 주유소에서

학교 과학시간에 필요하다며 휘발유 8.5리터를 구입해 이를 자신의 방에 숨겼다.

가족이 모두 잠든 21일 새벽 3시35분께 이군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버지는 안방에, 어머니와 동생은 거실에, 할머니는 작은방에

각각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이군은 숨겨둔 휘발유를 꺼냈다.

이군의 계획은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를 살해하되

어머니와 할머니, 동생을 깨워 함께 탈출하는 것이었다.


이군은 안방부터 부엌, 거실까지 천천히 휘발유를 뿌리고 숨을 죽인 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런데 이군의 계획은 순식간에 빗나갔다.
불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휘발유 띠를 따라 삽시간에 집안 전체로 퍼졌다.

화마는 아버지는 물론, 다른 가족 3명을 덮쳤다.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롭다는 것을 깨달은 이군은

불길 속에 휩싸인 가족들을 외면한 채 밖으로 뛰쳐나왔다.
순간적으로 당황은 했지만 이군은 이 순간 성인 범죄자 못지 않은 침착함을 보였다.
'존속살해'라는 죄를 본능적으로 직감한 이군은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히지 않기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아파트에서 빠져나가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이군은 아파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1시간30분정도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연기와 휘발유 냄새가 밴 자신의 점퍼는 길가에 있던 노숙인에게 건네는 영악함을 보였다.
이군이 아파트 앞에 다다른 시점은 소방차 25대와 소방관 수십 명이 화재를 진압한 뒤였다.

이군은 아파트 경비원에게 "몇 호에서 불이 났느냐"고 태연스레 물었다.

그러자 경비원은 "XXX호에서 불이 났다"고 답했다.

이에 이군은 자신의 집이라며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사고직후 경찰은 어린 이군이 밤늦게 집 밖에 홀로 나와 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이군은 자신의 행적을 캐묻는 경찰에 "홍대 근처에 있었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더니 집에 불이 나 있더라"고 답했다.
하지만 알리바이가 맞지 않은 경찰의 추궁에 결국 범행사실 일체를 자백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한 10대 청소년이 존속살해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 까지는 불과 이틀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량기는 좀 있어도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아이였다"며

"이같은 참극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daero@newsis.com

 

 

 

 

계획적 범행..."소통없는 가정의 참사"
                                                                                         입력시간 : 2010-10-22 01:40
[앵커멘트]
이번 사건은, 만 13살밖에 안 된 아들이 이틀 전부터 계획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입니다.
평소 별다른 문제가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김현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이 군은 범행 직후 CCTV에 찍히지 않기 위해 계단으로 도망쳤습니다.
휘발유를 담았던 통은 계단 뒤에 버렸습니다.
이후, 한 시간 정도 주변을 돌아다니며 범행 당시 현장에 없었던 것처럼 꾸몄고
입고 있던 옷은 노숙자에게 줘 증거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경비원에게 불이 난 곳을 물은 뒤 울면서 어머니를 찾기도 했습니다.

[인터뷰:김대권, 서울성동경찰서 형사과장]
"학교 과학시간에 휘발유가 필요하다.
10ℓ를 다 채우면 또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약간 적게 8.5ℓ만 달라, 그렇게 해서..."

이웃들은 범행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평소 이 군이 착한데다 품행에 문제가 없었고, 어머니와도 친했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 군이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장기간 시달려왔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이웃 주민]
"평소에 착했죠. 착했어. 인사 잘하고 착했지요."

[인터뷰:이웃 주민]
"(아버지가) 좀 와일드하고 거칠고...
아이 엄마를 막 팬다고 하니까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애."

이 군은 경찰 조사에서도 아버지만 살해하고 다른 가족은 구해내려고 했지만
불길이 순식간에 번져 자신만 빠져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군의 계획적인 범죄는 장기간 쌓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란 분석입니다.

[인터뷰:이수정, 경기대 교수]
"가족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대부분 피해자가 약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격을 하는 행위에 있어서 시간이 소요된다거나
상당부분 계획을 한 흔적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외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현실감각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이죠."

얌전하던 아이, 하지만 소통 없는 가정이 결국 일가족 몰살이란 끔찍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YTN 김현아[kimhaha@ytn.co.k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