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이근안에 고문당했던 ‘간첩누명’ 납북어부, 36년만에 무죄

기산(箕山) 2012. 12. 27. 06:23

이근안에 고문당했던 ‘간첩누명’ 납북어부, 36년만에 무죄

 

                                                                                  한겨레 | 입력 2012.12.26 22:10
  • 댓글보기
  •  

    조기잡이 도중 북한 경비정에 피랍됐다가 돌아온 뒤

    경찰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13년간 옥살이를 한 어부가 36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인천지법 형사13부는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12년11개월간 복역한 정규용(70)씨에 대한

    재심에서 26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최소 18일간(최대 34일)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조사 도중 가혹행위가 있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의 경찰 신문 조서 등 검찰이 제출한 자료는 증거 능력이 없거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36년 만에 누명을 벗은 정씨는

    법원의 무죄 선고 직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감사합니다"는 말만 연발했다.

    함께 법정을 찾은 부인 연아무개(66)씨는 "기쁜 날이다.

    남편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을 살았는지 모른다"며 울먹였다.

    재판장인 송경근 부장판사는

    "과거 권위적의적 정권하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30여년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정씨에게 법원을 대표해 사과드리고

    사법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1968년 6월 당시 26살이었던 정씨는

    서해 소연평도 근해에서 조기를 잡다 북한 경비정에 피랍된 뒤 약 5개월 만인 그해 11월 돌아왔다.

    정씨는 이후 8년 뒤인 1976년 7월13~14일 경기도경찰국에 간첩 혐의로 연행됐고,

    구속영장이 발부된 그해 8월14일까지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된 채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수사관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정씨는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했고

    결국 1976년 10월 법원에서 간첩 혐의와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 1989년 풀려날 때까지 12년11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정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6월 재심을 결정했다.

    이날 공판에서 정씨를 고문한 장본인으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지목돼 눈길을 끌었다.

     

    정씨는 이씨에 대해

    "오금에 몽둥이를 끼워 꿇어앉으라고 한 뒤, 80kg이나 되는 거구로 허벅지를 밟아

    고통이 말도 못할 정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까매져 한동안 걷지 못하고 기어다녀야 했다.

    팬티만 입힌 채 조사했고, 3~4일씩 잠을 재우지 않은 고문도 했다"고

    이씨의 가혹했던 고문을 증언했다.

    지난 5일 열린 정씨 공판에

    검찰이 이씨를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천/김영환 기자yw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