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위기징후 뚜렷한데…경제수장들은 예나 지금이나 "괜찮다"

기산(箕山) 2012. 7. 18. 20:48

위기징후 뚜렷한데…경제수장들은 예나 지금이나 "괜찮다"

 

                                                                      매일경제 | 입력 2012.07.18 17:37 | 수정 2012.07.18 19:43

 

IMF 수혈 한달前 강경식 부총리 "펀더멘털 튼튼"
리먼 사태땐 과소평가하다 부랴부랴 대책 쏟아내
박재완 장관 "`高`시점 지연돼도 상저하고 맞다"
한은 `선제적 인하` 강조…靑수석실 낙관적 보고만

◆ 경제팀 위기 불감증 ◆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

경제위기의 징후가 드리울 때마다 으레 경제 수장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원조는 바로 '미스터 펀더멘털'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다.

 

 

 

당시 강 부총리는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한보 등 대기업들의 줄부도로 주가가 곤두박칠치는 와중에도

"한국 주가는 과도하게 저평가돼 있다"거나 "아시아 외환위기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기회"라고 말했다.

특히 위기가 발발하기 한 달여 전인 1997년 10월 28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이 강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그해 11월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수혈을 받기로 내부결정을 내리면서

강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은 19일 경질되기에 이르렀다.

우리 경제의 아픈 기억이다.

그러나 이 같은 패턴은 외환위기 이후에도 수차례 반복됐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파고가 덮쳤을 때도 마찬가지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를 과소평가하다 뒤늦게 부랴부랴 각종 대책을 내놨다.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대외경제 충격에 민감한 한국 경제 키를 쥔 경제사령탑들의 위기의식이 실종됐다.

수출, 취업 등 표면적으로 개선되는 경제지표에 빠져 가계부채, 기업 수익성 하락 등

위기 징후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경제팀의 키를 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외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상저하고에서 '고(高)' 시점이 조금 지연될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상저하고가 맞다"고

강조했다.

아직 최종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말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 발표 직전까지

종전 3.7% 성장 목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결국 성장 전망치(3.3%)를 0.4%포인트나 깎았다.

2분기 유럽위기 충격을 반영한 측면이 있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 앞에 사실상 백기투항한 셈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청와대 경제수석실 등 경제팀도

한국 경제에 잠재된 폭탄인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노무라 등 해외 주요 기관들이

가계, 공기업 부채를 한국 펀더멘털 위험요인으로 손꼽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고는 있지만 정부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한은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친 한은은 금리 인하 여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13개월 만 인 최근에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췄을 뿐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도

최근 집값 하락으로 하우스푸어가 속출하고 백화점 무차별 세일 등

소비의 손길이 뚝 끊기는 상황인데도 낙관적인 보고만 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 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매주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 비상경제대책회의, 서별관회의에서도

현장 경제위기의 심각성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참석자들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특히 청와대 내에서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금융센터 금융연구원 등 국책연구소 중심으로 보고를 받다 보니

민간 산업 및 시장부문에서 깨져 나가는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럽발 재정위기와 중국 등 신흥시장 경기침체로 하반기 이후 우리나라의 수출과 생산, 투자와 고용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의 경기인식도

너무 안이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비슷하다.

그는 이달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3.25%→3.0%) 낮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선제적'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향후 경기 하락에 대비해)선제적으로 한국은행이 움직였다"면서

"무슨 기조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경기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건 당연하다.

가계, 기업 등 민간부문이 냉각됐기 때문에 정부라도 나서서 투자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안이한 상황 판단을 꼬집었다.



[채수환 기자 / 이진명 기자 / 전정홍 기자 / 김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