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은행이 국민에 금리 사기극” 금융신뢰 무너질판

기산(箕山) 2012. 7. 20. 00:53

“은행이 국민에 금리 사기극” 금융신뢰 무너질판

 

                                                         한겨레 | 입력 2012.07.19 20:20 | 수정 2012.07.19 22:40

 

공정위에 1~2곳 'CD금리 담합' 자진신고설

사실일땐 대출자 주머니 털어 제 배 불린셈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조작 의혹이 '초대형 금융 스캔들'로 비화할 조짐이다.

증권사에 이어 은행들까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19일 은행과 증권사 한두 곳이 공정위에 짬짜미(담합) 사실을 자진신고(리니언시)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관련기사 2·3면

공정위 관계자는 자진신고 사실 확인과 관련해 "시인도 부인도 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그동안의 담합 조사들에서 공정위가 밝혀온 태도를 보면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시디금리 담합 건과 별개로 다음달 국민주택채권 매입가격 짬짜미 혐의로

공정위의 제재를 받을 상황에 처한 금융회사가 두가지 과징금을 모두 감면받기 위해

시디금리 담합을 자백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회사들의 시디금리 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거센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디금리가 가계대출은 물론 각종 파생상품의 기준금리로 활용되고 있는 만큼,

금융질서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디금리에 연동된 대출은 전체의 30%인 324조원에 이르고, 파생금융상품 규모는 4624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가구 10곳 가운데 7곳(69%)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있고, 대출자도 1000만명을 넘는다.

시디금리 짬짜미의 피해자는 대출자이고 수혜자는 금융기관이라는 점에서,

특히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금융기관의 배를 불린 '금융권의 탐욕'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디금리를 0.1%포인트만 높게 유지해도 가계가 한해 추가로 내는 이자만 1661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예대마진을 통해 얻은 이자수익은 39조원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직장인 권아무개씨는

"은행에서 매달 내야 할 이자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주는데, 이자가 내려가는 경우는 없었다"며

"1998년 외환위기 때 세금을 쏟아부어 살려준 은행들이 금리를 조작해 대출이자를 많이 받았다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시장 혼란도 불가피하다.

파생금융상품 가격 결정의 밑바닥에도 시디금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시디금리 조작은 수천조원에 이르는 금융상품의 거래가 왜곡된 가격으로 체결됐음을 뜻한다.

 

영국의 리보금리 조작 사건 이후, 손해를 본 투자자가 은행과 증권사들을 상대로 소송전에 돌입한 것처럼,

이번 사건도 이와 유사한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으로서는 신뢰 붕괴는 물론, 대규모 집단소송과 과징금, 임원들에 대한 처벌까지 각오할 수밖에 없다.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은 이 사건으로 4억5000만달러(약 51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고위 임원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을 향한 분노가 상환능력을 넘는 약탈적 대출과

고위 경영진에 대한 고액 보너스 지급 같은 문제였다면,

금리 조작은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사안으로, (사실일 경우) 금융기관들은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소비자단체들은 금리 조작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즉각 소송에 나설 태세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시디금리가 조작되고 담합했다면 이는 금융사들이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은 것"이라며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금융사들이 모른체한다면 집단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시디금리가 지난 5년간 0.1%포인트만 조작됐다고 가정해도 금융회사의 부당이득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

시디금리에는 근저당 설정비 반환 소송과 마찬가지로 워낙 많은 금융소비자가 걸려 있어

역대 최대 규모 소송이 될 전망이다.

"은행이 국민에 금리 사기극"

금융감독기관은 또다시 감독 실패 책임론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현재 금융감독 시스템이 금융부문 전체는 보지 못하고 개별 기관들의 건전성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담합과 같은 금융기관들 간의 횡적인 불건전 행위를 적발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날도

"아직까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고, 담합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혹시라도 책임론이 불거질까 우려하면서 공정위의 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저축은행 사태처럼 '업계와 유착해 눈감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침통한 기류마저 형성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그동안 시디금리의 문제점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권한싸움 탓에 개선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금감원이 지난해 말 시디금리를 대체할 단기 지표금리 개발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겠다고 나섰지만,

금융위가 자신들의 권한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금융위가 뒤늦게 다시 티에프를 꾸렸지만 결국 뒷북 대응이 되고 말았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날 티에프를 열어 당분간 시디 발행을 의무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시디금리를 대체할 지표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리니언시(leniency)

담합 자진신고 감면제.

제재 감면이라는 '당근'을 줘서 기업들이 담합행위 사실을 털어놓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담합 사실을 처음 신고한 업체에는 과징금 100%를, 2순위 신고자한테는 50%를 면제해준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조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으며,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일반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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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리보사태 중심에 선 CD가 뭐길래>

 

                                                                                  연합뉴스
| 구정모 | 입력 2012.07.19 14:25

 

양도성 예금증서(Certificate of Deposit.CD)는 은행이 양도 가능한 권리까지 부여해 발행하는 증서다.

일반적으로 은행이 채권처럼 자금조달을 위해 투신사 등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한다.

예금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개인들은 일반 정기예금보다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적용받으려고 가입한다.

만기는 30일 이상이다.

주로 91일(3개월물)이나 181일(6개월물) 금리가 단기금리의 기준금리로 활용된다.

91물 CD금리는 은행의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중소기업대출 등의 기준이 된다.

현행 CD금리는 신용등급이 `AAA' 이상인 7개 시중 은행들이 CD를 발행하면

10개 증권사가 금리를 평가해서 하루에 2번 금투협에 보고한다.

금투협은 이 중 최고치와 최저치를 제외한 8개 수치의 평균값을 내서 산출한다.

담당자들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리를 고려해 '이 정도가 적정하겠다'며 적어내는 방식으로 운영돼

담당 금융기관의 재량이나 암묵적 짬짜미가 생길 여지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CD는 다른 정기예금증서와 달리 만기 전에 다른 투자자에게 팔 수 있다.

CD 매매를 위해 은행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며 특별한 매매절차도 없다.

따라서 발행 주체인 은행은 중간 유통과정을 확인할 수도 없고, 최종 소지자에게 예금액을 지급할 뿐이다.

무기명 상품이어서 계좌추적이 어렵다.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후 맨 처음 은행에서 인수한 사람과 최종 만기 때 찾는 사람은 실명을 밝히도록 했으나

만기 이전 거래에선 무기명 거래를 할 수 있어 거래자의 신원 확인이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그동안 뇌물 목적이나 자금 돈세탁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발했다.

국세청은 최근 모 사학재단 이사장이 사학재단의 운영권을 넘기면서 받은 수십억원의 현금을

자녀 이름으로 개설된 CD계좌로 70여차례 입ㆍ출금을 반복하는 수법으로 자금을 세탁한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다.



pseudojm@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