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대기업, 돈 쌓아두고 중기에 어음…거꾸로 가는 동반성장

기산(箕山) 2012. 7. 24. 00:04

대기업, 돈 쌓아두고 중기에 어음…거꾸로 가는 동반성장

 

                                                                   한겨레 | 입력 2012.07.23 19:30 | 수정 2012.07.23 21:50

 

상반기 중기 현금결제 68.9%
대기업 협력업체는 더 떨어져
2010년 이후 최저치 기록
대기업 석달새 현금 14% 늘어
자금난 영세업체들 '죽을맛'

"죽겠습니다."

알루미늄 주물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ㄱ사의 김아무개 총무과장은 한숨 섞인 어조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는 대기업들의 현금결제 비율도 높았고, 60일 또는 90일로 대금 입금 기간을 약속했으면 지켰는데,

올해 들어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물품을 팔면 대금을 현금이나 어음으로 받는다.

현금결제 비율이란 전체 대금 가운데 현금으로 받는 비율을 말한다.

 

이 비율이 높으면 기업 입장에선 유동성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위기에 대처하기 쉽다.

ㄱ사의 현금결제 비율은 올해 1분기 50%가량에서 2분기 2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유럽 부채위기로 인한 세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져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자금사정이 취약한 중소기업 쪽의 피해가 차츰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중소기업중앙회(중앙회)가 지난달 1363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상반기 현금결제 비율이 68.9%로, 지난해 하반기에 견줘 2.7%포인트 떨어졌다.

 

중소기업의 현금결제 비율은 2010년 상반기 68.9%를 끝으로 줄곧 70%대를 유지했는데,

올 상반기에 70% 선이 무너진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50%대로 내려앉았다가 상승선을 그려오던 현금결제 비율의 추세가 반전한 것이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대기업 협력 중소기업'의 현금결제 비율 하락폭은 더 컸다.

지난해 하반기 70.6%였던 것이 올해 상반기 66.5%로 4.1%포인트 떨어졌다.

전체 중소기업에 비해 더 큰 낙폭이다.

 

2008년 이후 대기업 협력 중소기업의 현금결제 비율이 전체 제조 중소기업보다 높았던 때는

2008년 하반기 한때에 불과했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대표적인 실적 지표로 현금결제 비율 증가를 내세웠던 게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중기 쪽의 '현금 가뭄' 사태와는 달리, 대기업 쪽 금고에서는 현금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한국거래소 자료를 보면,

대기업 위주로 돼 있는 유가증권시장 12월말 결산법인 635개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월말 현재 60조8000억원에 이른다.

 

불과 석달 전인 지난해 12월말(53조4000억원)에 견줘 14%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을 맞은 국내 기업들이 '현금 실탄'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반영한다.

초대형 기업일수록 현금을 끌어당기는 강도는 더 거세다.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월말 기준 3조5000억원으로 작년말보다 30%나 늘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삼성중공업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각각 2조4000억원, 1조7000억원으로

146%, 11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을 맞은 국내 기업들이 '현금 실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현대중공업은 7월 한달에만 1조4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달 보유중인 현대자동차 지분 760만주 가운데 절반가량을 처분해 7047억원을 확보했고

7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도 발행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도 5000억원 회사채 신규 발행에 나섰다.

동양그룹은 부동산을 매각해 자금 마련에 나섰다.

강원도 속초의 동양리조트를 이마트에 393억원에 팔았다.

에스케이(SK)네트웍스는 2014년에 이전 예정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신사옥을 지으면서

현금 확보 차원에서 명동, 성내동, 목동 등에 보유한 건물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과 업계마다 개별적인 사정은 달라도, 다가오는 경제위기 파도를 앞두고

곳간을 미리 채워두겠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중기 쪽이 거래 대금을 현금으로 받는 비율이 자꾸 축소되고 있는 것은 그에 따른 파생효과인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은 경기가 좋을 때는 단가 후려치기, 결제 기일 어기기 등의 횡포를 줄이다가도

경기가 나쁘면 무자비하게 중소기업을 쥐어짜곤 한다"며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경제민주화' 논의는 말로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인기기사>
[화보] '그땐 그랬지~' 대한민국 올림픽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