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기름값이 묘하다” 떠들썩하더니…결국 ‘두 손’ 든 정부

기산(箕山) 2011. 4. 2. 01:57

“기름값이 묘하다” 떠들썩하더니…결국 ‘두 손’ 든 정부

                                                                   한겨레 | 입력 2011.04.01 20:30 | 수정 2011.04.01 22:20

 

유류세·환율 놔두고 정유사 압박 안통해,
TF참여 관료·전문가들 처음부터 회의적 태도,
결론 못내고 활동 접어...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뒤 꾸려진

'석유제품가격 티에프(TF)팀'이 활동을 마무리하고도

아무런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부처 장관들이 잇따라 정유사들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석유 전문가와 경제부처 실무자들로 꾸려진 티에프팀의 결론은

기대와 달라 진퇴양난에 빠진 꼴이다.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1일

"지난주 담당 과에서 최중경 장관에게 석유제품가격 티에프팀 활동 결과를 보고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고 한다"며

"결과물이 본인 기대와 달라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티에프팀 구성을 주도한 기획재정부 또한 가타부타 말이 없다.

 앞서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 대통령 발언 다음날

"석유제품가격 티에프팀을 구성해 가격 결정 구조를 재검토하겠다"고 말했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석유가격 티에프팀에서 최종 회의를 조만간 열고,

3월 중순 정유사 가격 적정성에 대한 결론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이렇게 큰소리만 쳐놓고 정작 때가 되니 꼬리 감추기에 급급한 양상이다.

 지난 1월 꾸려진 티에프팀에서는 석유제품 가격 결정 방식과

비대칭성을 집중적으로 검토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처음부터 회의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은 원유로부터 차례대로 추출되는 것이어서

개별 원가를 정확하게 매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의 부위별 고기 원가를 매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시장 수급에 의해 가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시장이 개방된 현 상태에서는 유일한 척도가 국제석유시장이다.

 기름값의 비대칭성 문제도 '단죄'가 쉽지 않다.

소비자가 봤을 때 국제시세가 오를 때는 휘발유값이 금방 따라 오르고

내릴 때는 그만큼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유사뿐 아니라 주유소의 자기 잇속 챙기기도 한몫을 한다.

정부가 정유사의 비대칭성을 문제삼을 수는 있지만

수많은 주유소를 상대로 씨름을 하기는 버겁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티에프팀 논의 결과도

△ 대형마트 주유소 등 활성화

△ 국내 석유거래시장 개설 검토

셀프주유소 확대

△ 석유수입상 규제 완화 등 보조적이거나 당장 실행할 수 없는 수단들이 대부분이다.

 

기름값 논란 때마다 등장한 '단골' 메뉴들이다.

지경부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우리 부처 안에서 상황을 모르는 딱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우리 장관"이라고 말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으로

티에프팀을 출범하게끔 한 이명박 대통령도 자기 말의 함정에 빠진 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의 지적은 원유가격이 140달러까지 치솟았을 때 휘발유값이 ℓ당 2000원이었는데

그때보다 원유값이 낮은 지금 휘발유값은 왜 그만큼 비싸냐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지만,

이는 정유사나 주유소 탓이 아니라 세금과 환율 차이 때문이다.

 

2008년엔 ℓ당 82~83원의 세금을 깎아줬고 원-달러 환율도 지금보다 낮아

원유를 싸게 수입할 수 있었다.

 

지경부 관계자는

"세금감면분과 환율이 ℓ당 200~250원 정도는 (더 비싸게)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가격이 오름세에 정부 고환율 정책이 겹치면서 서민과 중산층의 가계를

압박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묘한' 것은 기름값이 아니라

이 대통령과 경제부처 장관들의 태도다.

 

정유사로 하여금 당장 휘발유값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큰소리치다가

약속 기한이 지났는데도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윗선'의 뜻에 따라 티에프팀을 꾸리고 법석을 떨었던

관료들도 눈치만 보고 있다.

 정유사들을 상대로 기름값 인하를 요구해온 시민·소비자단체들도

좌충우돌식 정부 행태에 비판적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석유시장감시단 김창섭 부단장(경원대 교수)은

"지금과 같이 즉흥적인 방법은 곤란하다"며

"고통분담 차원에서 정유사의 기름값 인하와 정부의 유류세 인하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

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단기 대책보다는 에너지 저소비형 사회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