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여기서 행복했는데…내집 뺏고 1~2억 더내라니”

기산(箕山) 2011. 4. 5. 00:52

“여기서 행복했는데…내집 뺏고 1~2억 더내라니”

                                                                   한겨레 | 입력 2011.04.04 20:30 | 수정 2011.04.04 23:10

파탄난 뉴타운, 파탄난 서민


젊은시절 미군부대서 구두닦고 청소 평생 모은 돈으로

3층 단독주택 마련 월세수입 60만원에 폐지 주우며 살아

 

"생활비 무슨 수로…정부가 먹여줄건가"

3일 오후 경기 의정부시 자금동사무소 앞에서 만난 박장표(76)씨 손에는

경기북부 노인보호전문기관을 홍보하는 전단지 뭉치가 들려 있었다.

 

노인들에게 전단을 돌리는 공공근로를 하는 박씨는

"뉴타운으로 집 빼앗길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욕을 해댄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고 귀국한 박씨는

20대이던 1960년대 초 동두천 미군부대 캠프 케이시에서 일했다.

이른바 '하우스 보이'다.

 

미군들의 구두를 닦고 막사 청소와 침대 정리 같은 궂은일을 했다.

일은 고됐고 월급은 쌀 한 가마 값도 안 됐지만 자녀들을 가르치며 지독하게 돈을 모았다.

그리고 1989년, 1억3000만원에 금오동 3층 단독주택을 마련했다.

이 집은 그의 평생의 전재산이다.

박씨는

"처음에 뉴타운으로 개발된다니까 난리가 났더랬다"고 했다.

땅값이 오르고 개발되면 돈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몇 달 지나고 공시가격이 나오자 박씨는

"따져보니까 1억~2억원은 더 주어야 뉴타운 새 아파트를 얻을 수 있고,

보상비로는 그나마 전세 하나 못 얻고 쫓겨나더라"고 말했다.

현행 뉴타운 사업 구조는

자신의 집값과 입주 희망 아파트의 분양가는 사업 최종 단계에서야 알게 돼 있다.

내 집값은 통상 공시지가의 120%다.

박씨가 사는 금의뉴타운을 비롯해 198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마친 곳 대부분이

뉴타운 사업지구에 포함됐다.

반듯하게 소방도로가 나고 공원들도 여럿 갖출 만큼 구획정리가 돼 있다.

박씨처럼 40~50대에 이곳에 집을 마련한 뒤

이제 노인층이 돼 월세 수입으로 연명하는 주민들에게, 집은 놓을 수 없는 '생존수단'이다.

자신의 집 3층에 사는 박씨는 1~2층 4가구에 세를 놓아 한달에 60만원을 받는다.

아내는 폐지 줍기로, 자신은 전단지 배포로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해 20만원씩 번다.

박씨는

"그래도 먹고 싶은 것 다 사 먹고 행복한데, 여길 나가면 죽을 길밖에는 없지 않냐"고

하소연했다.

인근 뉴타운지구인 가능1동 은하수공원에서 만난 주민 강준식(76)씨는

"설사 뉴타운에 들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아파트 관리비나 생활비는 무슨 수로 내냐. 정부가 먹여주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정부시가 조사한 금의·가능지구 주민 가운데

월 300만원 수입 이하인 소득분위 5분위 이하 비율은 65.5%다.

의정부지역의 평당 아파트 매매가격을 823만원으로 보면 33평형은 최소 2억8000만원 이상이다.

박씨처럼 더 많은 벌이가 어려운 주민 10명 가운데 7명은 사실상 재정착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추진위 및 조합 설립이 가능한 뉴타운 촉진계획이 결정된

경기도 11개 지구의 총가구수는 22만959가구인 반면, 뉴타운 계획 공급 가구는 18만9125가구다.

이미 3만1834가구 8만여명의 '뉴타운 난민'이 확정된 셈이다.



의정부/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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