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음반의 부활
서울신문 | 입력 2009.08.03 03:26
전세계적으로 음악 산업이 불황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선 다시 LP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예전 LP를 리마스터링해 다시 찍어내거나 글로벌 오디오 제작 업체들이
턴테이블을 새로 내놓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1억원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하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LP 바람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CD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LP가 1~2년 전부터 수북한 먼지를 털어내고
흑진주 같은 자태를 다시 뽐내고 있다.
LP에 얽힌 추억이 가득한 중장년층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CD나 MP3에 익숙한 요즘 젊은 층도 LP를 찾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
예전에는 서울 회현동 지하상가와 황학동 등에서 LP를 구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온라인 매장도 생겼다.
또 용산 전자랜드가 새로운 메카로 떠올랐다.
이곳 2층은 원래 오디오 숍을 비롯해 일제 영상 장비를 다루는 가게가 대부분이었으나
경기 침체로 빈 가게가 생기며 대신 중고 LP 판매점이 들어서게 됐다.
최첨단 디지털을 웅변하는 장소에 아날로그를 상징하는 LP 판매점이 들어섰다는 점이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지난달 31일 찾아간 전자랜드 2층 한쪽 편에 '오디오 클럽', '33RPM', '45RPM',
'카페 드 아르떼' 등 LP 판매점 4~5곳 정도가 모여 있었다.
특히 오디오 클럽은 240평 정도 되는 매장에 클래식부터 가요, 팝, 재즈에 이르기까지
7만장 가량을 갖춘 대형 매장이다.
양경호 오디오 클럽 사장은
"주말에는 100명 정도 손님이 찾아온다."면서
"20, 30대 젊은 층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귀띔했다.
CD를 듣다가 LP를 접하고는 그 매력에 빠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게다가 LP를 취급하는 가게가 늘어나며 가격도 저렴해져 손님이 부쩍 늘고 있다는 설명.
일년에 2~3차례 정도 LP를 구하기 위해 해외에 나간다는 양 사장은
"외국 음반 딜러들도 한국을 가장 큰 시장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휴가 중 짬을 냈다는 김형철(38)씨.
영화 OST와 클래식 음반을 살펴보고 있던 그는 "음질을 따지기보다 음악 자체가 좋아서
LP를 찾는다."면서 "CD로는 구할 수 없는 앨범들이 LP로는 많아서 좋다.
나올 때마다 한아름씩 구입한다."고 말했다.
최은아(28·여)씨는
최근 관심을 갖게 된 경우. "우연한 기회에 LP에 담긴 클래식을 듣게 됐는데
음이 부드럽고 현을 누르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이전에는 알지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엿본 기분"이라고 했다.
수 천 장에 달하는 LP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500장 정도로 정리했다는
박은수(39)씨는 오디오 마니아.
그는 "CD나 MP3로 음악을 들으면 금방 피곤해져 30분 이상을 듣지 못한다."면서
"LP는 피곤하지 않고, 잡음이 있더라도 듣는 재미가 있다."고 예찬론을 늘어놨다.
평론가들에게 한정적으로 뿌리는 클래식이나 재즈의
LP 초판본 같은 경우는 100만원이 넘어선다고.
국내 가요 중에서 신중현이나 김추자 앨범처럼 희귀본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격이 착하다.
최저 2000원에서 최고 2만원 정도 사이.
음악을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약간의 스크래치가 있는 경우, 말만 잘하면 깎아준다.
한참 판을 고르던 한 고객이 18장을 한꺼번에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값은 4만 5000원. 흐뭇한 표정으로 매장을 빠져나갔다.
LP가 들려주는 아날로그 음의 매력은 무엇일까.
귀를 자극하지 않아서 좋고, 풍성하고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 것.
금강전자 고태환 사장은
"CD에서 나는 소리가 가는 철사줄 같다면 LP 소리는 비단실처럼 부드럽다."고 표현한다.
26년째 오디오 숍을 운영하고 있는 용산의 터줏대감인 고 사장은
요즘 LP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까닭에 대해
"사람에 대한 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이다 보니 추억을 찾고,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을 찾고자 하는 분위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아날로그 오디오 기기를 취급하기 시작한 고고오디오 김정희 사장은
"CD나 MP3는 정성스럽게 먼지를 제거하고 세팅하고 고이 앉아서 음악을 감상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줬지만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도 줄여버렸다."면서
"그러한 수고로움도 기꺼이 즐기는 음악 팬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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