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관

실록을 보니 "독도에 조선사람 살았다"

기산(箕山) 2008. 7. 22. 03:44

 

실록을 보니 "독도에 조선사람 살았다"
등록일 : 2008-07-21 18:31:46


[사진=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맑은 날 울릉도에서 보이는 독도'
울릉도에서 독도를 쵤영한 사진이 오늘 21일 아침 일부 신문에 실렸습니다.
독도 연구의 권위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전문 사진가에게 의뢰해

촬영에 성공한 사진이 라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2일 아침 7시 무렵에 찍었습니다.


최서면 원장은

"맑은 날 울릉도에서 독도를 볼 수 있다는 옛 문헌 기록을 일본 측이 자꾸 부정하고 있어

촬영을 시도했다"며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임을 뒷받침하는 부정할 수 없는 근거"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작지만 또렷이 보이는 독도의 모습.
지난해 8월 기자가 독도로 처음 갈 때 배 위에서 본 모습과 똑같습니다.



기자는 지난해 여름휴가 때 홀로 울릉도를 찾았다 독도를 방문했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배로 2시간반 거리. 기자가 탄 삼봉호는 8월 11일 오전 7시 30분

도동항을 출발했습니다

('독도엔 누가 사나' http://blog.joins.com/n127/8412391 ).


오전 9시 무렵.
도동항을 출발한 지 2시간 가량 지나자 독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울릉도에서 찍은 사진 속 독도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왼쪽에 뽀족 솟아오른 것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서도 북쪽에 있는 탕건봉입니다.

서도 정상 높이는 168.5m, 탕건봉은 98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오전 10시 무렵 드디어 동도쪽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선착장 반대편인 서도에 위치한 어업인숙소 앞에서 놀고있는 꼬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구일까.
독도에는 김성도-김신열씨 부부가 2006년 2월 19일 들어와 살고있었죠.

두 분은 1996년 태풍으로

숙소가 파손되는 바람에 울릉도로 나와 살다 10년 만에 다시 들어간 것이죠.
꼬마는 아마 손자인 듯 합니다.
 



도동항 옆 망향봉에서 동남쪽 방향. 위 사진은 도동항, 아래 사진은 망향봉 반대편 봉우리.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 '삼척도호부 울진현'편에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

 

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고

록되어 있습니다. 무릉은 지금의 울릉도이고, 우산이 독도입니다.


지난해 기자는 독도를 다녀온 직후 도동항 옆 망향봉에 올랐지만

바다쪽에 안개가 끼어 아쉽게도 독도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과거 독도에 사람이 산 적이 있을까.
조선왕록실록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성종 7년(1476년) 2월 8일(음력인 듯)에 이런 일이 있었더군요.


지금 종성에 있는 친군위 노의순이 상언하기를

 

'지난해 5월에 경성(鏡城) 사람 김한경과 회령 사람 임도치와 경원(慶源) 사람 임유재,

김옥산, 이오을망, 김덕생과 더불어 경원지방의 말응대진에 나아가서 배를 타고 3일 동안 가서

삼봉도(三蓬島)를 보았는데, 멀리서 바라보니 섬 가운데에 7, 8인이 있었으나,

우리 무리들은 고단하고 약하여 육지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니,

 

경이 노의순 등 각 사람에게 상세히 물어서 아뢰라.


성종이 영안도(지금의 함경남도) 관찰사 이극균에게 지시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삼봉도는 독도의 또 다른 이름이더군요.

같은 해 6월 22일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경이 아뢴 것을 보고,

경성의 김한경 등 2인이 신묘년(1471년) 5월에 삼봉도에 표박하여 섬사람과 서로 만났었는데,

또 을미년(1475년) 5월에 한경 등 6인이 이 섬으로 향하였다가 7, 8리쯤 떨어진 곳에서

섬이 멀리 바라보였지만 바람에 막혀 끝내 도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을 비록 믿을 수는 없지만, 또한 혹시라도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 건장하면서도

믿을만한 사람 3인을 보내어 한경 등과 섬 안으로 들어가서 수색하여 보게 하라.


조선 성종때 이미 "독도가 사람이 산다"는 보고가 여러 건 있었습니다.
또 10월 22일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영안도 관찰사 이극균이 치계하기를

"영흥 사람 김자주가 말하기를 '삼봉도를 가보고 또 그 모양을 그려왔다'고 하므로

김자주를 보내어 바치게 합니다" 하였다.

 

명하여 물어보게 하니, 김자주가 대답하기를

"경성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4주(晝) 3야(夜)를 가니, 섬이 우뚝하게 보이고,

사람 30여명이 섬 입구에 벌려 섰는데 연기가 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흰 옷을 입었는데, 얼굴은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개는 조선사람이었는데, 붙잡힐까 두려워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니.

유의 두 벌을 하사하였다.


1476년 독도에 '조선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문헌으로 남긴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 김자주가 독도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영흥 사람 김자주의 공초에 이르기를 '본도(本道)의 관찰사가 삼봉도를 찾는일로써

김자주와 송영로 그리고 전일(前日)에 갔다 온

김흥, 김한경, 이오을망 등 12인에게 마상선 5척을 주어 들여보냈는데,

지난 9월에 경성 땅 옹구미에서 배를 출발하여

섬으로 향해 같은 날 부령땅 청암에 도착하여 자고,

17일에 회령 땅 가린곶이에 도착하여 잤으며

18일에는 경원 땅 말응대에 도착하여 잤고,

25일에 섬 서쪽 7. 8리 남짓한 거리에 정박하고 바라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섰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이 벌여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또 작은 섬이 있는데 다 바닷물이 통합니다.

또 바다 섬 사이에는 인형같은 것이 별도로 선 것이 30개가 되므로

의심이 나고 두려워서 곧바로 갈 수가 없어 섬 모양을 그려 왔습니다' 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왕년에 박종원이 강원도에서 배를 출발했다가 바람을 만나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지금 김한경 등이 경성 옹구미에서 배를 출발하여

다시 그 길로 출입하면서 섬 모양까지 그려왔으니,

지금 만약 간다면 찾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청컨대 명년 4월 바람이 온화할 때에 문무의 재능을 가진 자를

한 사람 선발하여 들여보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동도와 서도 사이의 촛대바위.

   532년 전 김자주 일행이 독도에서 본 것은 지난해 기자가 독도에서 본 것과 다를 것이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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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엔 누가 사나?

                                            http://blog.joins.com/n127/8412391      등록일 : 2007-08-24 01:52:39

 

  



사방을 어디를 둘러봐도 푸른 지평선밖에 없는 망망대해. 
배 앞쪽에 한 점 물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11일 아침 울릉도 도동항을 출발해 2시간 30분 남짓 항해 끝에 독도에 도착했습니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독도 서쪽 섬(서도) 어업인숙소.
배가 독도 동쪽 섬 접안시설에 막 접어들 무렵 반대편 섬에는 남자 어린애 한명이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누굴까?



김성도 김신열씨 부부 10년 만의 '독도 귀향'
2006년 2월 19일 경유 30말, 식수 30말, 쌀과 부식, 어로 장비를

행정선에 싣고 김씨 부부는 '제2의 고향' 독도로 돌아왔습니다.

1.3톤짜리 '독도호'도 행정선으로 예인해 함께 들어갔죠.


어민 김성도씨는 독도 최초의 주민 고 최종덕씨(1965년 3월 첫 입주)를 따라 

1970년대 독도에 들어가 어로활동을 하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에는 독도리 20번지(현재 어업인숙소 자리)를 주소지로 주민등록도 옮겼습니다.

하지만 1996년 태풍으로 집이 무너져 울릉도로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성도 김신열씨 부부는 해양수산부가 서도에 어업인숙소와 선가장을 완공하자

독도를 떠난 지 꼭 10년 만에 되돌아온 것입니다.

김씨 부부는 1991년 독도에 주소지를 옮긴 이후 지방세인 주민세를 매년 3000원 가량을 

납부해왔습니다. 명실상부한 독도 주민인 셈이죠.

어업인숙소 앞에서 놀고있던 어린이는 김씨 부부의 손자라고 합니다.

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댁을 찾아온 것이죠.



독도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제 거주하는 주민은 경북도로부터 매월 70만원씩 지원금을 받습니다.

세대원이 추가되면 1명에 30만원씩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경북도의회는 2006년 10월 10일 제210회 정례회 본회의를 독도 동쪽 섬 접안시설에서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독도 거주 민간인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일본 시네마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지정 조례안 통과에 맞대응한 것이죠.


현재 독도에 주민등록을 등재한 사람은 모두 3명입니다.

김씨 부부 외 시인 편모씨도 독도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주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또 독도에 본적지를 두고 있는 사람은 623세대 총 2100여명(7월말 기준)이라고 합니다.

2005년 3월16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식 표기)의 날' 지정

조례를 통과시킨 이후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비록 거주하지는 못하지만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일본에 과시하는데 일조하려는

애국심의 발로라고 봐야겠죠.


독도 땅에 첫 발을 디디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사람은

독도경비대 소속 의경들입니다.
독도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또 있습니다.
독도경비대 소속 경찰 1개소대가 있습니다.

경찰이 독도 경비를 맡게 된 것은 1956년 4월 8일부터라고 합니다.

울릉경찰서는 그전까지 독도 경비를 맡고 있던 '의용수비대'로부터

임무를 인수해 경찰 8명을 처음으로 파견했습니다.



독도경비대는 동쪽 섬에 병력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동도에 레이다 등 첨단 장비를 갖추고 일본 순시선 등

외부 세력의 독도 침범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독도경비대는 1996년 6월 창설된 울릉경비대 예하부대로

1개 소대가 2개월씩 돌아가며 경비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독도 탐방객의 입도가 가능해진 후로는 이들을 안내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까지 맡고 있습니다.


독도에는 1년 365일 30명 이상의 한국인이 살고있는 셈이죠.



독도에는 등대지기 3명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독도에 등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54년 8월이라고 합니다. 

무인등대였습니다.

하지만 1998년 12월 유인등대가 완공되어 해양수산부 독도항로표지관리소(등대)

직명 3명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독도 주변 해역에서 조업을 하는 어선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죠.

등대원 숙소와 시설물은 모두 동도쪽에 있습니다.



지난 20일 독도 서쪽 섬 어업인숙소 앞 선가장 확장공사를 할 때 굴착기로 터파기를 하던 중

땅 속에서 길이 40cm 지름 20cm의 폭탄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21일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48년 6월 독도 인근 해역에서 미국 공군전투기가 실시한 폭격 때 떨어진

불발탄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독도에서는 1948년 6월 8일 미 공군전투기가 잘못된 정보 때문에 독도 해역에서 미역 등을

채취하던 어민들을 폭격해 민간인 100여명이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발탄 발견 소식을 전하면서 언론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군 당국은

현장 보존조치를 하는 한편, 독도 주민 김성도씨 부부와 작업자 등 10여명을 동도로

대피시켰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22일 기자가 울릉도 독도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김성도씨 부부는 당시 독도에 있지 않고

울릉도로 나와 있었다고 합니다.

기사를 쓴 취재기자가 직접 현장을 확인할 수 없어 빚어진 '오보'였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기자가 탄 독도관광선이 동도쪽 접안시설에 정박할 때

서도쪽 김성도씨 부부는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배에서 내리기 전 한참을 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8월 휴가철에는 하루에도 두세번씩 배가 들어와 신기할 것도 없는 광경을 왜 주시할까.

기자는 지금도 그 모습을 아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60줄을 넘긴 나이에 외로운 섬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아직도 기자에게는 풀리지 않는 질문입니다.


바다 바로 앞에 건설된 어업인숙소엔 발전기가 갖추어져 세탁기, 냉장고는 물론이고

TV방송도 시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작년 김씨 부부가 독도로 돌아오던 날 언론들은 "(김씨 부부는) 독도 주변에서 미역,

소라를 채취하고 문어를 잡아 생계를 꾸릴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높으면 바닷물이 숙소 건물에까지 쳐들어오는 곳에서

과연 1년에 몇 일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몇달에 한번씩 식량과 연료 등을 들여와야 합니다.

물 이외에는 자급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봐야겠죠. 
그렇다면 두 노인 부부가 독도에 거주한다고 과연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해양수산부는 작년 10월 전국 2천700여 개의 무인도를 특별 관리하는 법안을 만들면서

독도를 '무인도'로 분류해 국민들의 공분을 산 적이 있습니다.

언론 보도에 해양수산부는 "독도가 무인도로 분류된 것은 무인도서 현황을 정리하면서

2004년 통계자료를 사용하는 바람에 빚어진 실수"라고 해명했습니다.

 

나아가 해양수산부는

"독도는 도서지역의 생태계 보전에 관한 특별법상 특정도서로 지정돼 있다"며

"독도는 '무인도서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독도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주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생태계 보전이 목적이라면 필수불가결한 최소의 사람 외에는 접근을 차단하는 게 

타당한 일 아닙니까.


일본은 틈만 나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깁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조용하지만 치밀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한국 정부는 이에 맞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확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독도에서 일반 민간인 2명이 살고 있다고 과연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영원히 인정받을 수 있을까.

 

독도를 처음 찾은 기자의 영원한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