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관

담배 소송...

기산(箕山) 2007. 1. 26. 08:34

                                                                                         2007년 1월 25일 (목) 20:01   한겨레

 

[한겨레]
‘담배소송’ 흡연자 패소 판결 논란
법원은 25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내린 담배소송 선고에서 흡연과 폐암의 역학관계를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폐암 발병과 흡연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케이티앤지의 손을 들어줬다. 의료계에서는 “모순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흡연-폐암 개별적 인과관계 입증 안 돼”=재판부는 “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이 비흡연자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 통계 등을 봤을 때 흡연과 폐암의 일반적인 역학관계는 인정되지만, 이를 개별적 인과관계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역학적 인과관계는 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 통계적 관련성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폐암의 발병에는 흡연과 같은 단일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개인적, 환경적 요인들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다요인설’과, 흡연은 폐암만 일으키는 게 아니라 폐기종과 방광염 등 여러 인체기관에 다양한 질병을 초래한다는 ‘다결과설’이 현대 의학이 취하는 암에 대한 관점”이라며 “이 사건 흡연자들의 흡연과 폐암 발병 간 인과관계의 고리를 자연과학적으로 모두 증명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담배의 중독성을 강조한 원고 쪽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흡연은 정신병적 상태나 의식 이상으로 인한 비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흡연자 자신의 판단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한국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1980년 79.3%에서 2006년 49.2%로 감소한 사실, 니코틴 의존을 이유로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나 행동치료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점 등을 들어, “흡연은 니코틴 의존에 따른 작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모순된 판결”=의료계 전문가들은, 흡연과 폐암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환자들의 폐암이 담배 흡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 못한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모순된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박재갑국립암센터 원장은 “캐나다의 담뱃갑에는 폐암 원인의 85%가 흡연 때문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 흡연과 폐암의 관련성은 인정되고 있다”며 “폐암 환자 개개인의 원인이 흡연 때문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는데 환자 쪽에 패소 판결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는 “이번 판결은 환자들이 해당 제조사의 담배를 피웠는지,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됐는지 등을 직접 증명하라는 것이어서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슷한 사례로 석면 관련 소송을 들었다. 석면은 직업성 폐암을 일으키는데, 이번 판결은 석면 작업현장에서 폐암에 걸린 노동자에게 석면에 노출된 시간, 노출 강도 등을 별도로 증명하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원고 쪽 홍영균 변호사는 “미국과 일본도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법원이 그 인과관계를 인정했다는 점은 의미 있다”며 “(그러나 이번 판결에는) 헌법에 보장돼 있는 국민보건권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 없다”고 비판했다.

원고 쪽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담배를 둘러싼 공방은 항소심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항소심에서는 원고 쪽이 새로운 증거를 얼마나 제출할 수 있을지, 재판부가 원고 쪽의 입증 책임을 얼마쯤 완화해 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의료소송과 공해소송의 경우처럼 과실 입증 책임을 피고에게도 부과하고 원고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순혁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yuk@hani.co.kr




소송 7년이나 걸린 이유
‘연구 문건’ 정보공개 소송만 3년
‘법관 기피신청’으로 사건 재배당

국내 첫 담배 소송은 1심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무려 7년4개월이 걸렸다. 지난 1999년 폐암 말기환자인 외항선원 김안부씨(사망)씨와 가족 등 5명은 국가 및 담배인삼공사(현 케이티앤지)를 상대로 1억76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이 당시 김씨 등의 변호를 맡아 “담배 말고는 폐암에 걸릴 직접적인 원인이 없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같은 해 12월 폐암과 후두암 환자 6명도 가족 25명과 함께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3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미국에서 담배소송 논문을 쓴 배금자 변호사가 민변 소속의 변호사 20여명과 공동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선고가 늦어진 건 흡연이 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자료와 의사 감정서 등을 받아내는 데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첫 소송을 낸 외항선원 김씨 등 4명은 1심 결과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케이티앤지(KT&G) 부설연구소의 연구문건을 받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진행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원고 쪽은 또 한국인삼연초연구원(현 KT&G 중앙연구원)이 공개하지 않은 담배 유해성에 대한 연구자료를 내도록 요구했으나 각하당했다. 이에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대신 공개 소송을 제기해, 3년 만에 승소했다.

재판부가 2년마다 교체된 것도 선고가 늦어지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배금자 변호사가 대리한 사건을 맡은 조관행 전 부장판사는 2004년 서울대 의대가 낸 폐암 사망자 감정서 원본과 요약서를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 전 부장판사는 원고 쪽 변호인단이 법관기피 신청을 내자, 스스로 재배당을 요구해 사건을 또 다른 담배 소송을 진행하던 민사합의 13부로 넘겼다. 이에 따라 두 사건은 병합돼 재판을 받아왔다. 이밖에 2004년 윤아무개씨 등 5명이 7억5천만원, 2005년 임아무개씨 등 2명이 1억원의 손배 소송을 내, 모두 4건의 담배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엇갈리는 외국 사례

미, 환자 ‘520억원’ 승소
일·프랑스·독에선 패소
뉴욕, ‘순한 담배’ 집단소송
‘사상 최대 188조원’ 진행중


미국에서 흡연 피해 소송은 1950년대 처음 시작된 이래 80년대 말까지 담배회사 승소로 모두 귀결됐다. 판결에선 흡연자의 책임이 강조됐다. 90년대 이후 법원이 담배회사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중을 속여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회사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종종 나왔다. 하지만 일본과 프랑스, 독일 등에선 여전히 흡연자 책임에 무게를 두고 담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40년간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우다 폐암에 걸렸다며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를 상대로 소송을 낸 리처드 뵈켄의 손을 들어주었다. 뵈켄은 5550만달러(약 520억원)를 배상받았다. 법원은 담배가 치명적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필립 모리스가 알면서도 소비자에게 기만적 마케팅을 펼쳐왔다고 판시했다.

필립 모리스가 ‘순한(light) 담배’란 표기로 애연가를 속였다고 제기된 101억달러 짜리 소송은 담배회사 승리로 끝났다.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11월 “필립 모리스가 라이트, 저타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인체에 해롭다는 점을 명시해, 공정거래법과 주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일리노이주대법원의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뉴욕 연방지법은 지난해 9월 ‘순한 담배’ 흡연자들에게 최대 2000억달러(약 188조원) 규모의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 현재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담배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2월 폐암 환자 6명이 장기간 흡연으로 폐암에 걸렸다며 일본담배회사(JT)와 국가를 상대로 낸 6천만엔의 손배소 상고심에서, 담배 회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심 재판부는 △흡연이 폐암 등을 일으킬 중대한 위험이 있으며 유해하다는 사실은 사회적 상식이고 △중독성이 술보다 훨씬 약해 본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금연할 수 있어 담배 제조ㆍ판매의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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