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탐방

정재형 교수 ‘댄스스포츠 예찬’

기산(箕山) 2006. 12. 3. 10:31

정재형 교수 ‘댄스스포츠 예찬’

 



댄스 동호회 ‘엔조이’ 2주년 기념 파티에서

샤리권 원장과 함께 스포츠 댄스를 즐기는 정재형 교수(오른쪽).

 

 
친구여, 이제 댄스 스포츠를 시작해보자.

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취미는 댄스 스포츠라는 춤이다.
술과 담배, 스트레스로 몸이 갈수록 망가지고 울화와 우울증이 겹쳐
무기력 증세가 심해져 갈 무렵 바람돌이라는 닉 네임의 영화계 지인이
내게 댄스 스포츠를 권했다.
영화 ‘바람의 전설’의 안무를 했던 샤리 권 선생님을 소개받아 찾아갔는데
그분은 댄스 스포츠란 춤을 정통으로 추신 분이란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댄스 스포츠가 뭔가. 그건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교춤과 혼동하고 있다.
사교춤 하면 제비족, 꽃뱀, 탈선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에 바탕을 둔 사교춤은 원래 교양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탈선의 상징으로 변한 것이다.
샤리 권 선생님의 지도를 받다보니 사교춤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을 잘못 발전시켜온 한국의 사교춤문화가 잘못이었다.
 
원래 서양에서 나온 말인 사교춤은 사교적으로 추는 모든 춤을 말하는데
이제 댄스 스포츠라는 용어로 새롭게 정리되었다.
댄스 스포츠는 각 나라의 민속춤 10개를 정리하여 영국에서 체계화시킨 것이다.
스페인(파소도블레), 중남미(룸바·삼바·차차차·탱고), 미국(자이브·폭스트롯·퀵스텝),
유럽춤(왈츠·비엔나 왈츠)으로 구성되어 있다.

댄스 스포츠의 성격은 반은 댄스고 반은 스포츠다.
댄스라는 성격에는 예술이란 뜻이 담겨 있다.
예술은 인간의 정신을 순화시키고 감성을 발달시킨다.
스포츠라는 것은 운동과 경기의 두가지 뜻이 있다.
건강한 신체를 배양하여 균형있는 몸매를 만들어 주고 경쟁을 통해
삶의 도전의식과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이런 좋은 의미들이 우리의 사교춤에는 사라져버렸다.
현재의 카바레는 말이 무도장이지 술집이나 다름없다.
술이 만취되어 어찌 춤을 제대로 추겠는가.
 
그건 한국의 사교춤이 그간 정치사회적 질곡을 겪으면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잘못 발전되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 년내에 이런 흐름은 댄스 스포츠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 예상한다.
전국의 많은 카바레 등도 탈선의 장소가 아닌
건전한 댄스 스포츠 무도장으로 다 바뀔 것이고
사교춤의 새로운 판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댄스 스포츠를 배우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춤출 공간을 위해
댄스 스포츠 무도장이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술문화와 춤문화가 분리되어 새롭게 정착될 것이다.

사교춤 하면 나이 먹은 어른들의 탈선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 개념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남녀가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법도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가르쳐줘야 한다.

그 최고의 방식은 댄스의 조기교육이다.
댄스는 남녀가 손을 맞잡고 마치 사랑하듯이 춤을 추기 때문에
자연스레 남녀의 법도를 알게 한다.
그러면서도 댄스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니까 도를 넘치지 않는다.
이런 경지를 공자는 낙이불음(樂而不淫),
즉 즐거워하되 음란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댄스는 뭐든지 좋다.
댄스 스포츠의 10종목도 좋고 발레, 재즈댄스, 살사, 밸리댄스, 태보댄스 뭐든지 좋다.
꼭 서양춤만 하란 법도 없다.
한국춤도 하면 더 좋다.
이런 춤의 세계를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바라건대 교육정책에 이런 교과과정이 반드시 들어가서
무용과 체육을 동시에 이수케하는 댄스 스포츠 과정이 초중등교과에
포함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위정자들이여, 제발 국민들을, 자라나는 차세대들에게는 두뇌만 커지는
이기적인 입시교육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녀가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며
건강한 체력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전인 교육정책을 펼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댄스가 어렵다고 하는데 과연 어려운가?
처음에 배우는 사람들은 기본자세를 익히기 위해 신체적 고통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댄스가 어렵다고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빨리 달성하려는 마음 때문에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다.
댄스를 일생동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
헬스운동을 일생 하듯이 댄스도 일생동안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국면에서 춰야 할 춤이 있다.
알고 보면 춤은 곧 인생이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을 다 춤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견뎌나가는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춤을 추면서 삭이게 된다.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그 아니 즐거운가.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 인생 안으로 춤이 찾아와 모든 벗들과 같이 춤을 추니 그 아니 즐거운가.

정재형/동국대학교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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