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맹목적 중국사대주의자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망쳤다.

기산(箕山) 2017. 7. 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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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중국사대주의자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망쳤다.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 진덕여왕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진덕왕(眞德王) 4년(四年)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다.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다 ( 650년(음) )
이 해에 처음으로 중국의 영휘(永徽)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원문 = 是歲, 始行中國永徽年號.)
註 : 당(唐)나라 고종(高宗)대의 연호(年號)로, 650년부터 655년까지 사용되었다.
      신라에서 최초로 사용한 당나라의 연호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관)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setId=-1& prevPage=0&prevLimit=&itemId=sg&types=r&synonym=off&chinessChar=on&levelId=sg_005r_0030_0190&position=-1



연호(年號)는 그 해를 표시하는 것으로 (올해를 '서기2017년'이라 표시하는 것처럼)

예를들어 광개토대왕은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썼죠.

광개토대왕 즉위한 다음해가 영락(永樂)1년.


연호는 천자(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신라가 그전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스스로 천자(황제)국이라 표방했다는 의미.
(물론 고구려, 백제 역시 독자적인 연호를 많이 사용.)


그런데 650년에 신라가 당나라 연호를 쓰기로 한 것은

당시 고구려, 백제의 압박이 강해서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기로 하여

당나라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서 신라역사상 최초로 외국(당나라)의 연호를 쓰기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삼국사기 편찬자 김부식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논하여 말하다.


논하여 말한다.
삼대(三代)가 정삭(正朔)을 고치고 후대에 연호(年號)를 일컫는 것은
모두 통일을 크게 여겨서 백성들이 듣고 보는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까닭에 때를 타고 나란히 일어나 둘이 마주 서서 천하를 다툰다든지,
간교한 사람이 틈을 타고 일어나 제왕의 자리를 엿보는 경우가 아니면
변두리의 작은 나라로서 천자(天子)의 나라에 신하로 속한 자라면 진실로

사사로이 연호를 칭할 수 없다.


신라와 같은 나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중국을 섬겨서

사신의 배와 공물 바구니가 길에서 서로 마주볼 정도로 잇달았다.


그런데도 법흥(法興)[왕(王)]이 스스로 연호를 칭한 것은 알지 못할 일이다.
그 후에도 그 잘못된 허물을 이어받아 여러 해를 지냈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꾸지람을 듣고도 오히려 머뭇거리다가

이때에 와서야 당나라의 연호를 받들어 행하였다.


비록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잘못을 저지르고 능히 허물을 고친 것이라고 할 만하다.


(註 = 중국 고대의 하(夏)·은(殷)·주(周) 세 왕조를 말한다.)


(원문 =
論曰. 三代更正朔, 後代稱年號, 皆所以大一統, 新百姓之視聽者也.
是故, 苟非乘時並起兩立而爭天下, 與夫姦雄乘間而作, 覬覦神器, 則偏方小國,
臣屬天子之邦者, 固不可以私名年. 若新羅以一意事中國, 使航貢篚相望於道.
而法興自稱年號, 惑矣. 厥後承愆襲, 繆多歷年所.
聞太宗之誚讓, 猶且因循, 至是然後, 奉行唐號. 雖出於不得已, 而抑校勘 可謂過而能改者矣.)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levelId=sg_005r_0030_0200&types=r



위 글을 보면
김부식은 신라가 이전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을 잘못한 일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신라를 '변두리의 작은 나라로서 천자(天子)의 나라에 신하로 속한 자'라 하고 있고
'법흥(法興)[왕(王)]이 스스로 연호를 칭한 것'도 잘못한 일이고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꾸지람을 듣고도 오히려 머뭇거리다가' 
이제야 당나라 연호를 쓰는 것도 잘못한 일이고

이제 '잘못을 저지르고 능히 허물을 고친 것(過而能改)'라 하고 있습니다.


김부식은 고려인이고,
고려의 국가적 사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인데 어처구니 없이 얘기하고 있는 거죠.


웃기지도 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김부식이 '뼛속까지 사대주의자'이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김부식(金富軾)이라는 이름도
중국 문인 소동파의 본명인 소식(蘇軾)에서 따왔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일이죠.


이러한 맹목적 중국사대주의자가 삼국사기를 편찬함으로해서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맹목적 사대주의자가 편찬한 것이 삼국사기이기 때문에
한국고대사를 심하게 폄훼하였고, 게다가 후에 일제강점기 때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찌감치 고대국가 형태를 갖췄다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마저 일제의 관변학자들에 의하여 정략적으로 부정 당하는

상황이 되죠.


일본에서 최초로 고대국가가 형성된 것이 야마토(大和)이고  4~5세기의 일인데
고구려, 백제, 신라가 그보다 더 먼저 고대국가체재를 갖췄다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인정하게 되면 일제의 한국통치 명분이 흔들린다는 일제의 생각때문이겠죠.


어차피 맹목적 중국사대주의자인 김부식에 의해서 삼국사기에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므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초기기록만 부정하면
일본이 한국보다 더 먼저 고대국가 형태를 갖췄다고 우길 수 (사기칠 수) 있으리라

본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중국의 국수주의자들이나 일제의 입장에서 단군조선(檀君朝鮮)은

철저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역사입니다.


중국 최초의 나라는 하(夏)나라인데, 기원전 2070년경에 건국했기 때문에
단군조선(檀君朝鮮)보다 수백년 후에 건국합니다.


하(夏)나라 이전에 요, 순임금의 나라가 있었는데 나라이름이 없습니다.
나라이름이 없기 때문에 그냥 [요, 순임금의 나라]라고 하죠.


왜 나라이름이 없을까요.

당시 사람들에게 세상은 천제(天帝)를 중심으로 한가족이어야한다는 의식이 강했고
독립적인 나라를 만든다는 것은 불경한 일이기 때문에 나라이름이 없습니다.


중국인들도 요임금을 천제(天帝)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는 요임금의 나라에 태양이 10개나 떠서 모두 타죽게 생기자
요임금이 천제(天帝)께 요청하여 활잘쏘는 사람을 초빙해서
9개의 태양을 활로 쏴서 떨어뜨리고 1개의 태양만 남았다는
중국의 옛날 이야기도 증명해준다 하겠습니다.


중국인들에게 천제(天帝)는 요임금이 아닌 다른 곳의 임금이라는 겁니다.
단군(檀君)임금이 동아시아 최초로 조선(朝鮮, 아사달)이라는 나라이름을 만든 것은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제 각 지역들이 독립국이 되어야한다는 선언이기도 하죠.


그리고 한국이 원래 고대문명의 중심국이자 천제(天帝)의 나라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나라이름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감히 그런 일(나라이름 붙이기. 독립.)을 앞장서서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불경한 일이므로.


그래서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생긴 지 수백년이 지나서야
기원전 2070년경에야 중국에 '하(夏)'라는 나라이름이 생겼다 봅니다.


중국에서 처음 황제라 칭한 사람은 진시황이죠.
진시황(秦始皇)이라는 이름 자체가 시황(始皇) 즉 시작하는 (첫번째) 황제라는 뜻이고요.


하(夏)나라 (기원전 2070년경 ~ 기원전 1600년경)의 건국자 우왕(禹王)
은(殷)나라=상나라 (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의 건국자 탕왕(湯王)
주(周)나라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의 건국자 문왕(文王)

요, 순임금에게도 또한 하, 은, 주의 건국자들인 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에게도
황제(皇帝)라는 칭호가 붙지 않는 것은 원래는 중국이 천자국이 아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중국 후한시대의 학자인 채옹(蔡邕)이 그의 저서 독단(獨斷)에서
"천자(天子)라는 말은 원래 동이(東夷 : 한민족)과 북방민족이 쓰는 말이다.

그들은 하늘(天)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대지(大地 : 땅)을 어머니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지도자를) 천자(天子)라 부른다."


[ 원문 = 天子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稱天子 ]라 한 것도
[천지인(天地人)사상]이 원래 한민족에서 생겨난 사상임을 보여주는 발언 중 하나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