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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이란 국호는 원래 韓國人이 쓰던 것"
평생연구한 일본 연구 대공개-2 / 가야족의 자치령 '日本'
박병식 / 역사연구가
기사입력 2008 / 01 / 08 [12:40]
최근에(2003년6월23일),
일본 교-도-통신(共同通信)이 아래와 같은 매우 흥미로운 뉴-스를 전했다.
"동경대학의학부(東京大學醫學部) 인류유전학교실(人類遺傳學敎室)
도꾸나가쯔시(德永勝士)교수는, 인간의 6번 염색체 내에 존재하는 hla유전자군을 이용한
인간유전자(게놈)을 비교 연구한 결과, 일본본토인과 가장 가까운 집단이,
한국인과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으로 추정된다는 걸론에 도달하였다.
'도꾸나가'교수는
일본인, 한국인, 중국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12개 민족(집단)을 비교분석한 결과
일본본토인은 오끼나와인이나 혹까이도(北海道)의 '아이누'족보다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과 중국의 조선족에 가장 가까웠다고 밝혔다.
일본본토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hla유전자형태는 hla-b52-hla-dr2로,
북규슈지방(北九州地方)에서 야마가다현(山形縣)에 이르기까지 12%이상 존재했고,
몽골인에게서는 5-8% 나타났다.
반면, hla유전자는 오끼나와인에게서는 2%, '아이누'족에게서는 1%에 그쳤다.
이런 연구결과는, 7월 東京大學出版部가 出刊할 예정인 公開講座 총서에 수록될 예정이다.
한편, 돗도리대학(鳥取大學) 의학부 이노우에다까오(井上貴央) 교수 팀은
벼농사 導入과 靑銅器 傳來로 상징되는 '야요이'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dna가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연구결과룰 내놨다.
돗도리대 연구팀은
'야요이'시대 遺跡인 돗도리현 아오야가미(靑谷上) 절터(寺跡)에서 출토된 '야요이'인
遺骨 '미토콘드리아'dna 염기배열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야요이'인 유골 29점 가운데 7점으로부터 dna를 抽出하는데 성공한 뒤,
그중 4점에서 '미토콘드리아'dna 염기배열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이들이 한국의 현대인 및 혼슈-(本州)의 일본인과 동일한 그룹에 속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일본 사람들은
서기770년 무렵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기나 긴 세월에 걸쳐 '일본열도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열도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열도 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아무 血緣關係가 없는 天孫이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유전학적(遺傳學的) 증거의 浮上으로,
그들의 허무맹낭(虛無孟浪)한 주장은 더 이상 뻗칠 자리를 잃고 말았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그네들은 좋건 싫건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韓民族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게다.
하나, 따지고 보면 이런 사실은 저들이 늘 들먹이는'고사기'나 '일본서기'를 비롯한
그들의 古文書들을 先入見 없는 눈으로 읽어왔던들 진작부터 알 수 있었던 뻔한 일이었다.
우선, '고사기'와'일본서기'에 적혀있는 建國神話부터 들여다 보자.
"하늘 나라로부터 내려 온 天孫 '니니기노미꼬도' 일행은,
가고시마현(鹿兒島縣) 노마반도(野間半島) 끝에 이르러,
“가사사(笠狹崎)허구리” 앞을 바로 지난 데에 있는 이곳은,
가라국(加羅國=伽倻國)를 향해 있을 뿐 아니라, 아침해가 찬란히 쪼이고,
석양빛도 아름답게 비쳐주는 곳이니 매우 좋다고 하며,
그곳에 대궐(大闕)을 지어 정착했다."
이 기록은, 天孫 '니니기노미꼬도'와 그 일행이 부모형제를 남기고 온 故鄕,
가라(加羅=伽倻)를 그리워하는 心情을 잘 표현한 대목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이 定着한 지역에서 가장 높은 山을 가라구니다께(韓國岳)라고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皇室은, 古代로부터 궁중(宮中)에 가라가미(韓神)를 받들어 모시고,
每年 봄·가을 두차레에 걸쳐 가라가미마쯔리(韓神祭)를 지내 오고 있다.
서기927년에, 당시 國務總理격이었던 후지와라다다히라(藤原忠平)가 편찬한
연희식(延喜式)에는, 가라가미마쯔리(韓神祭)를 지낼 때 祭床에 올리는 祭物의 종류와
祭祀의 절차가 자세히 記述돼 있으며,
近年에 와서는, 가라가미마쯔리(韓神祭)를 봄에 지내는 2월21일을 建國記念日로 制定해 놓고,
皇室뿐 아니라, 온 국민이 祝祭를 지내고 있다.
天孫이라고 하는 皇室이, 가라(加羅=伽倻)에서 온 가라족(加羅族=伽倻族)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가라족(加羅族=伽倻族)이 開拓한 日本列島가, 독립하여 自治領이 되어,
스스로 '야마터(日本)'라고 일커르기 시작한 것은, 서기663년, 백제가 라당 연합군에게
멸망한 후부터다.
'야마터(日本)'는, 원래 위'魏志'에 기록돼 있는 야마국(邪馬國)을 가르키는 이름이며,
경북 고령지방을 중심으로 번영한 가라(加羅=伽倻)의 宗主國 '우가야=上伽倻'를 指稱한다.
즉 自治領이 된 日本列島에 살게 된 그들은, 저들이야말로 宗主國 '우가야=上伽倻'를
繼承하는 나라임을 내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요시다도-고(吉田東伍)가 펴 낸'大日本地名辭書'의 '國號論'과,
그리고, 明治三十三年正月에 發刊된'歷史雜誌'第十一篇一號에, 다음 같이 적혀 있다.
▲역사학자 박병식 선생 ©문일석 기자 |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韓國人들이 일찍부터 써 온 것인데,
우리나라가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국호로 정했다.(伴 信 友)
*'日本'이라는 文字는 上古로부터 씌어 온 '히노모도'라는 말에,
漢字를 충당해서 쓴 것이며, '日本'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三韓사람들이
시작한 것이다(星野 恒)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韓國人들이 쓰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국호로 더욱 적당하기 때문에 萬世不變의 呼稱이 됐다.(木村正辭)
明治時代의 뛰어난 석학(碩學)들이 입을 모아 證言하고 있듯이,
'日本'이라는 이름은 韓民族의 오래 전부터 써 왔었는 데,
백제의 속령(屬領)이었던 列島 사람들이, 獨立한 때부터, 그것으로 국호를 삼았음을 알 수 있다.
'日本'이라고 漢字로 쓴 이름은, 列島 사람들이 獨立한 때에는 '야마터'라고 읽었는데,
近世에 漢字音으로 읽게 되면서부터, 우리말로 '일본' 이라고 읽게 됐으므로,
그것을 소리바꿈한 '닙뽕'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니혼'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明治 초기에, 그것을 바로잡아 '닙뽕'이라고 고쳐 발음하도록 긴급 國語審議會를 개최하여 決議했다.
그 후, 公式文書에는 '닙뽕 nippon'이라고 쓰이지만, 일반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니혼 nihon'이 混用되고 있다.
<계속>
**필자 / 일본 천황가를 평생 연구해온 역사학자.
일본의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고, 저서로는 "일본어의 비극" "일본어의 발견" 등 20여권이 있다.
현재는 한민족문화연구원 학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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