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조작질에 우린 과연 당당한가
미디어오늘 입력 2015.09.25. 13:44
[미디어오늘 박상현 IT칼럼니스트]
안드로이드폰도 성능 조작…
학생들은 스펙으로 실력 조작, 이게 과연 공부인가
이번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은 독일과 전세계의 자동차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현재 미국 환경보호국(EPA)에서 생각하고 있는 벌금만 180억 달러이고,
법무부에서는 형사처벌을 고려 중이다.
미국 한 나라에서만 그렇다는 이야기고,
폭스바겐이 전세계로 수출한 차량들을 생각하면 비슷한 처벌과 벌금을 전세계 각 나라들에게서
받아야 한다.
과연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벌금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현대기아차도 얼마 전에 연비를 조작했다고 미국에서 큰 벌금을 받았지만
폭스바겐이 받게 될 금전적 타격과 브랜드 이미지의 추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폭스바겐이 결과를 조작한 과정을 살펴보면,
절대 사소한 실수라고 할 수 없는 악질적인 속임수였고,
그런 조작은 우리 주위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고, 깊숙이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폭스바겐은 왜 배출가스를 조작했는가?
잘 알려진 대로 디젤엔진은 힘과 연비가 좋지만, 유해물질이 배출가스에 섞여 나온다.
자동차 업계는 지난 수십 년간의 노력 끝에 유해물질을 저감하는 장치를 개발해냈다.
이게 소위 "클린디젤" 엔진이다.
그 장치를 작동시키면 토크 등 자동차의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 이유로 자동차 애호가들은 불법적으로 이 장치가 작동되지 않도록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폭스바겐이 운전하는 동안 매연 저감장치의 가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즉 소비자 몰래 불법을 대신 저질러주면, 폭스바겐의 차량들은 "깨끗하고 성능 좋은 차"로
둔갑할 수 있다.
▲ 독일 폭스바겐 그룹이 전세계적으로 1천100만대의 자사 디젤차량에서 배출가스 차단장치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인정함에 따라 국내 대상 차량도 수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오후 서울의 한 폭스바겐 서비스센터. ⓒ 연합뉴스
그렇다면 그런 차로 어떻게 공인기관의 "클린 디젤" 승인을 받을 수 있었는가?
배출가스는 공인기관이 수입, 판매되는 차를 무작위로 실험실에 가져와서 작동시켜 측정할 뿐만 아니라,
대학 연구소 등 독립기관들도 차를 가져다가 측정하기 때문에 일부의 차량만 속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여기에 폭스바겐의 마법, IT기술이 동원된다.
즉, 자동차가 '지금 실험실에서 테스트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배출저감장치를 작동시키고,
'일반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인식하면 저감장치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걸 알아내는 방법은 폭스바겐이 개발한 알고리듬이다.
대개의 실험실이 차를 롤러 위에 올려놓고 제자리에서 달리게 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핸들이나 브레이크의 작동여부 등을 파악해 테스트 중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일반도로 테스트와 실험실 테스트의 수치 차이를 발견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미국의 연구소와
환경보호국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1980년대 이래 자동차는 꾸준히 컴퓨터화 되어왔다.
이제는 웬만한 자동차들도 연료분사에서 바퀴의 작동까지 보이지 않는 컴퓨터가 통제한다.
하지만, 그런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1998년에 제정된 밀레니엄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어서
독립연구소나 검사기관이 열어볼 수 없게 되어있다.
따라서 환경보호국 등의 공인기관만 속이면 되는 쉬운 게임이 된다.
그런 저작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자동차 업계는 반대하고 있다.
그런 속임수는 자동차 업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바일 기기의 성능을 측정하는 회사로 유명한 아난드테크는
한국과 중국에서 제작된 안드로이드폰이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의 성능을 조작하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비판해왔다.
조작 방법은 폭스바겐과 차이가 없다.
성능을 측정하려면 측정용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켜야 하는데, 회사들은 폰에 프로그램을 심어서
그러한 애플리케이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감지하면 특정성능을 평상시와 달리 인위적으로 끌어올려서
수치가 높게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비판을 듣고도 굽히지 않던 국내 회사 일부는 작년에서야 그러한 관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과연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만 그럴까?
진짜 실력과는 상관이 없다는 걸 누구나 알면서도
학생들이 소위 "스펙"을 쌓는데 열중하는 것도 아주 엄밀하게 말하면 테스트에 대비한 속임수 아닐까?
한국은 '공부'와 '시험공부'가 동일시되는 나라다.
가령, 국어에서 시를 가르치는 이유는 시를 감상할 줄 알고, 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겠다는
교육목표에 기반한 것이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싯구 밑에 밑줄 쫙 긋고 '의미하는 바,' '심상' 따위를 가르치고, 아이들이 그걸 외우면
그것을 "학생이 시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내린다.
더 나아가 학부모와 사회는
집단적으로 그런 인위적으로 수치 올리기 노력을 '공부'라고 부르기로 조작적 정의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교과서에서 배운 시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를 보면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자기 최면적 가정 위에 설계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폭스바겐의 매연저감장치 조작사건은 단순한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갈수록 모든 것을 수치화해서 평가하려는 현대사회 전체가 들어야 할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방통심의위의 해명을 이해할 수 없는 6가지 이유 2015-09-25 14:20
'지식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이 사도를 이야기하게 만드는가? (0) | 2015.09.28 |
---|---|
피로·다툼 부르는 '차례상 차리기'.."간소해도 괜찮아요" (0) | 2015.09.27 |
거장 화풍 흉내 내는 로봇, 인공지능 예술 넘본다 (0) | 2015.09.21 |
세계 각국 '살아남기' 비상..돈 찍어내고 금리 동결하고 (0) | 2015.09.20 |
이 가을이 지나면 사법의 질서가 바뀐다 (0) | 2015.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