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돈’ 공세에 무릎 꿇은 홍대 앞 상권
임대료 폭증, 30년 빵집 폐점… 프랜차이즈가 밀고 들어와
경향신문 백인성·곽희양·이혜인 기자 입력 2012.02.22 21:54 수정 2012.02.22 23:46
서울 홍익대 앞 30년 역사를 가진 빵집 '리치몬드 과자점'이 최근 문을 닫았다.
빵집 자리에는 롯데그룹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들어선다.
리치몬드의 폐점 이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경향신문은 22일 리치몬드 빵집이 있었던 서교동 남강빌딩의 법원 등기부등본을 떼 봤다.
롯데 측은 일찌감치 빵집이 문을 닫기 5개월 전에 임대 계약과 함께 전세권 등기를 해놓은 사실이 확인됐다.
롯데의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는 남강빌딩 건물 1층 99㎡(옛 리치몬드 점포)와 2층 165㎡를 임대하면서
건물주 황모씨에게 전세금으로 20억원을 지불하기로 계약했다.
상가 1층의 임대료가 2층의 두 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2층의 절반 넓이인 1층에는 10억원가량의 보증금을 지불한 셈이다.
이는 기존에 입주해 있던 리치몬드가 황씨에게 지불하던 보증금 5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액수다.
명물 사진관도 "이사 나갑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앞 리치몬드 과자점과 같은 건물에서 영업을 해오던 남강사진관 유리 외벽에
24일로 예정된 점포 이전 문구를 적어 놓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롯데가 이 건물에 전세권 등기를 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리치몬드는 올 1월31일까지가 계약 만료기한이다.
이례적으로 계약 만료 5개월 전에 사전 계약이 이뤄진 셈이다.
리치몬드과자점과 같은 건물에 입점해 있는 남강사진관도 비싼 임대료 탓에
인근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이 사진관은 인근 주민들에게 '제과점 옆 사진관'이란 별명이 붙었던 곳이다.
임대료 바가지에 우는 곳은 리치몬드뿐만이 아니다.
홍대 앞은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계열사 점포와 대형 프랜차이즈에 점령당했다.
지하철 홍대입구역 반경 100m 안에는 이미 스타벅스와 카페베네가 각각 4곳씩,
엔제리너스와 탐앤탐스가 각각 3곳씩 영업 중이다.
20곳이 넘는 대형 커피 체인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점들은 홍대 진출 이유에 대해
유동인구의 급증과 함께 "홍대 앞에 진출했다"는 식의 브랜드 가치를 내세운다.
실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의 2011년 12월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3만4890명에 달한다.
고승현 빌딩베스트 대표는
"이대나 신촌 상권이 죽은 지금 홍대는 안테나숍을 열면 홍보·수익효과를 동시에 거두는 상권이 돼
임대료와 매매가가 치솟고 있다"면서
"매매의 경우 보통 3.3㎡당 7000만원이 넘으며 홍익대 정문으로 통하는 9번출구 앞 건물들은
3.3㎡당 1억2000만원까지 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 프랜차이즈점의 진출은 그러나 이 일대 임대료의 상승을 초래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홍대입구역 주변 점포의 경우 지난해 100㎡를 기준으로 월세만도 500만~1000만원씩 올랐다"고 말했다.
홍대 앞에서 전통상권이 사라지는 배경에는 프랜차이즈점의 영업전략 외에
부동산 전문 컨설팅업체의 횡포도 도사리고 있다.
홍대 인근 상인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남이나 종로 쪽 부동산 컨설팅 업체들이 홍대 근처 건물을 돌며
'임대료를 더 받아줄 테니 연락하라'면서 건물주에게 명함을 돌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각종 프랜차이즈 회사들은 보통 점포관리팀을 별도로 갖고 있지만
대형 프랜차이즈가 건물주에게 직접 접촉하게 되면 가격을 크게 올려 부르는 경우가 많아
매수자를 숨기기 위한 용도로 컨설팅 회사를 쓴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점포관리팀이 전국 모두를 돌아다니기는 힘든 만큼 매물 정보를 제공하는 컨설팅 회사를
몇 곳씩 끼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롯데의 엔제리너스도 "지난해 8월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통해 이곳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컨설팅 업체들은 건물에 프랜차이즈 입점이 성사될 경우
보증금에서 1% 내외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증금과 임대료는 이 과정에서 뛴다.
개인 세입자가 들어오면 20% 정도 오르는 보증금과 임대료가
대기업 계열사 점포나 대형 프랜차이즈가 입점할 경우 배 가까이 뛰는 식이다.
일부 컨설팅 회사들은 미리 건물주와 계약하고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는 일까지 맡기도 한다.
한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월세를 1000만원씩 올리면 작은 가게들은 나갈 수밖에 없다.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면서 나가라고 하는 방식도 쓰인다"고 말했다.
< 백인성·곽희양·이혜인 기자 fxman@kyunghyang.com >
'사회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세값 폭등에 서민들 ‘가정집 셰어’ 는다 (0) | 2012.02.26 |
---|---|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거부 ‘정면 대응’에 정치권 갈등 확산 (0) | 2012.02.24 |
박원순 아들 공개 신검 MRI의혹 '사실무근' (0) | 2012.02.22 |
정부, 비판적 전문가는 빼고 4대강 특별점검 (0) | 2012.02.21 |
판사들 "현행 재임용 제도, 재판의 독립성 훼손 우려" (0) | 2012.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