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주유소, 폭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

기산(箕山) 2011. 10. 2. 16:48

<주유소, 폭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연합뉴스 | 이동경 | 입력 2011.10.02 08:11 | 수정 2011.10.02 15:46

 

경쟁심화 속 폐업 궁지 끝 세금탈루 유혹 못떨쳐

최근 경기 수원과 화성 등 수도권에서 잇따라 발생한

'주유소 폭발사건'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 주유소는 과거 유사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된 사례들이 모두 있고,

유사석유를 저장한 것으로 의심되는 비밀탱크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면서 정품만 판매하는 주유소업자들은,

유사석유에서 발생한 유증기가 직접적인 폭발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번 사건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제3, 제4의 폭발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유사석유를 취급하는 주유소업주들이 과징금을 물거나 폭발 위험을 무릅쓰고도

불법 판매행위를 일삼는 이유는 세금 탈루라는 달콤한 유혹 때문이다.

현재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교통세, 교육세, 부가세 등을 합쳐 판매가의 50%가 조금 안된다.

1ℓ를 2천원에 팔면 900원가량이 세금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세금이 붙지 않는 유사석유 제품인 솔벤트나 톨루엔 등을 휘발유에 섞어서 팔면 어떨까.

2일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 적발된 한 주유소 비밀탱크의 크기는 대략 5만ℓ,

즉 250드럼을 한 번에 채울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한다.

손님이 많은 주유소는 5만ℓ의 유사석유가 열흘도 안 돼 동난다.

세금 한 푼 안 내는 돈 5천만원이 열흘 만에 주머니로 들어오는 셈이다.
이는 물론 인화점이 낮고 폭발성이 강한 유사석유를 위험을 감수하고 취급한 데 따른 대가다.

지식경제부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유사석유 제품 유통에 따른 탈루세액이

6조8천695억원이라는 내용의 용역보고서를 지난 3월 공개하기도 했다.

서울의 A주유소 사장은

"회전율이 빠른 곳은 탱크를 비우는 데 3~4일이 안 걸리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한 달간 수억 원을 탈루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유사석유를 팔다가 단속에 걸리고도 또 파는 것은 무슨 배짱일까.

현행법상 유사석유를 팔다가 연간

1차례 적발되면 3개월간 영업정지 또는 5천만원이하의 과징금,

2차례 적발되면 6개월 영업정지 또는 7천500만원 과징금을 물고,

3차례 적발되면 사업 등록이 취소된다.

주유업계에서는 유사석유 판매로 생기는 탈루 이득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다고 한다.

나쁜 줄 알면서도 한 번 손대면 끊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유사석유 취급 업소들은 처음 단속되면 3개월 영업정지를 택하느니

5천만원을 벌금으로 거리낌 없이 낸다.

벌금을 내고 또 팔면 한 달도 안 돼 그 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두 차례 단속을 당해도 '바지 사장' 등을 내세워 업주 명의를 바꿔가면서

또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사례가 많다고 석유관리원은 설명했다.

주유소업주들이 이러한 행위에 발을 담그는 것은

주유소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마진율이 3~5%에 불과한 현실을

세금 탈루로 만회해보려는 이유가 가장 크다.

하지만, 도로가 신설되면서 외곽으로 떨어져 손님이 뚝 끊긴 데다

사업을 그만두자니 주유소 폐기 비용을 엄두를 내지 못해

유사석유 판매라는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업주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B주유소 사장은

"정부가 기름값을 내린답시고 주유소만 압박하는 정책을 펼친 결과가

이러한 부작용을 낳는 것"이라면서

"일본은 주유소를 폐기하면 정부가 보조금도 대주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경부는 주유소에서 잇단 폭발사고가 터지자 유사석유 제품을 취급한 주유소는

한 차례만 적발되면 바로 폐업조치하는 제도의 도입을 추진한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또 최근 5년간 유사석유 취급으로 적발된 주유소 1천100여곳을 대상으로

비밀탱크가 있는지를 조사하고 탱크시설 안전도 점검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른바 유사석유를 취급하는 업계의 '선수'들은 이러한 단속 정보를 접하면

비밀탱크를 하루저녁에 비우고 여타 증거도 쉽게 없애버릴 수 있다고 한다.

주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품질 관리와 시설물 점검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하지 않고

숨바꼭질 단속으로 폐해를 뿌리 뽑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근본적으로 주유업계의 반발이 없는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도출해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국주유소협회 회원들은

정부의 기름값 정책에 항의하는 모임을 이달 중순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hope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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