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텃세에… 한족 '대림동 수난시대'
한국일보 | 입력 2011.10.01 02:35
한국서 뒤바뀐 입장… 갈등 빈번
영등포구 거주 한족 340명 소수자 설움
말 서툴러 소개비·합의금 빼앗기기 일쑤
서로 적대시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쩜머 빤 하오?"(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중국 산둥(山東)성 출신으로 4년 반 전에 서울에 온 한족(漢族) 리(34)씨는
서울의 중국인 밀집지역인 영등포구 대림동에 산다.
하지만 정착 초기부터 그에겐 고난이 이어졌다.
한국말이 서툰 리씨는 일자리를 구할 때 재중동포(조선족) 장모씨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그를 통해 소금공장에 취업했다.
↑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의 일명'조선족거리' .
구로구 구로동과 가리봉동,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까지 넓게 퍼져 있는 조선족 거주지역 내에서 한족은 소수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런데 한 달이 지났는데도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리씨가 회사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일을 구할 때 소개비 명목으로 장씨가 한 달치 월급을 가져갔다는 것.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리씨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리씨는 "여기는 중국이 아닌 한국이다.
괜히 경찰에 신고하거나 문제 제기했다간 조선족이 다수인 중국인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십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자는 66만명.
그 가운데 한족은 22만명 정도고 유학생, 기업체 관계자 등을 빼고
한국에 취업을 위해 찾아온 한족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중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영등포구만 해도
재중동포는 1만1,822명이지만 한족은 340명에 불과하다.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최대 민족인 한족이 한국에선 소수민족이 된 것이다.
소수자의 설움은 한둘이 아니다.
한국생활 5년차인 한족 자오(52)씨는
"공장에서 일할 때 반장이 한국어로 지시를 하면 조선족들은 자기들만 알아듣고
우리에게는 알려주지 않아 혼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림동 서울중국인교회의 최황규 목사는
"한국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20대 한족 여성과 가해자간 합의를 중재하던 조선족 여성이
합의금 일부를 가로채 달아나거나, 조선족이 통역비 명목으로 한족 여성에게 성상납을
요구하는 일도 있다"며
"한족 중국인들이 찾아와 '쩜머 빤 하오'라고 상의하면 곤혹스럽다"고 전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최 목사는 '뒤바뀐 갑을관계'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재중동포가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겪었던 차별과 설움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조선족들은 '가오리방쯔'(고려인 몽둥이)란 모욕적인 별명을 들으며
취업과 승진에서 한족에게 차별 당해 응어리를 품고 있었다"며
"문제는 한국에서 당한 한족들도 재중동포에게 '나중에 중국에서 보자'며
속으로 이를 갈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족과 재중동포 간의 갈등이 폭력으로 귀결되는 경우도 잦다.
영등포경찰서 대림지구대 관계자는
"조선족과 한족 간 다툼은 1주일에 두세 번 꼴로 발생한다"며
"흉기로 상대방을 찌르거나 유리병으로 머리를 가격하는 강력사건도 많다"고 말했다.
인근 구로구 가리봉동 '조선족거리'에선 조직폭력배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크게 번져 하나의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존심 강한 중화민족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들의 갈등을 집단적인 수준에서 해결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며
"개인 수준의 갈등을 풀어나가면서 확산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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