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관

노트 30권 분량 회고록에 실리지 않은 노태우의 인생사 & 가족사

기산(箕山) 2011. 9. 12. 17:06

 

노트 30권 분량 회고록에 실리지 않은
노태우의 인생사 & 가족사

                                                           [여성중앙] 입력 2011.09.12 00:05 / 수정 2011.09.12 03:17

 


회고록에는 1980년대 정치권의 주요 이슈와 외교가 뒷얘기가 주를 이룬다.
책에 담기지 않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근황과 가족 스토리를 따라가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그가 요즘 “말을 못 하고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소뇌위축증’이라는 희소병을 앓고 있다.

소뇌가 조금씩 작아지는 병으로 현재로서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가족들도 더 이상 상태가 나빠지지 않기만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그의 와병설이 제기되며 한때 상태가 심각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돌았지만

현재 병세가 당장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거동조차 불편한데 어떻게 회고록 썼나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병원 출입이 잦았다.

지난 2002년 전립샘암 수술을 받은 다음 꾸준히 암 치료를 받았고

2008년과 2009년 사이에는 폐렴을 치료하느라 여러 번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건강 상태가 비교적 자세히 알려진 것은 올해 4월이다.

호흡 곤란 증세로 서울대학교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기관지에 길이가 7cm쯤 되는 한방 침이 박혀 있는 상태여서 화제가 됐다.

 

평소 가끔 침을 맞았지만 어쩌다 몸속에침이 들어가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그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운동 기능이 떨어져 근육을 자극하는 데 좋다는 침을 맞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서울대 병원에서 침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의 건강 상태에 관해 여러 추측이 일자 병원에서는 가족들과 협의해 병세를 공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10여 년 전 수술을 받으면서 기관 절개를 하고 의료용 튜브를 통해

호흡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병세가 위중한 상황은 아니고,

지인들이 찾아가면 전부 알아보고 반가워할 정도다. 듣는 데도 문제가 없다.

다만 말을 하지 못해 부인 김옥숙 여사나 최측근 비서관들만 눈빛을 통해

대강의 의사를 파악하는 정도다.

 

회고록 출간을 둘러싸고 그의 건강 문제가 새삼 화제에 올랐다.

회고록에는 대통령 재임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대선 후보)에게

선거 자금 3000억원을 줬다는 주장이 실렸다.

 

YS 측은 이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론하면서, “거동조차 불편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회고록을 집필했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지난 1996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구치소에서 육필로 메모를 시작했고

2000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구술 및 정리 작업을 거쳐 회고록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6공화국 시절 그의 핵심 참모이자 김옥숙 여사의 사촌동생인 박철언 전 체육부장관은

“본격적으로 매달린 게 벌써 10여 년 전이고 초고를 5년 전에 봤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전·현직 대통령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발간을 미루다 올해 팔순(8월 15일)에 맞춰 책을 출간했다.

"희소병 투병 중, 영부인과 눈빛만으로 대화
수감 시절 옥중에서 가족에게 펴낸 편지에는"


회고록은 주로 1980년대 주요 정치 이슈와 국제 정세, 외교가의 상황 등을 위주로 구성됐다.

가족사나 일상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고, 어린 시절 스토리와 청와대 안에서

영부인 김옥숙 여사와의 일화 정도다.

회고록에 적힌 아내와의 일상을 보면,

노 전 대통령 내외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나란히 거실에서 TV 뉴스를 보고

6시 40분부터 함께 운동을 했다.

8시에 아침을 먹고 9시에 집무실로 들어가면 아내는 관저로 돌아가 개인 시간을 가졌다.

 

김 여사는 평소 대통령에게 ‘직언’을 잘해서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노 전 대통령은 아내의 직언에

“이미 보고도 받고 신문에서도 봤으니 집에서는 좋은 얘기로 좀 위로해 달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가족들에게 쓴 좀 더 진솔한 글이 있다.

정치 자금 문제로 구치소에 수감된 뒤 감옥에서 쓴 편지들이다.

옥중에서 노트에 회고록을 쓰면서, 가족들에 대한 심경은 회고록 원고 대신 편지에 적어 보냈다.

최근『월간조선』9월호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아내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일부를 공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단장과 보안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의 부대가를 직접 작사, 작곡할 만큼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편지에서도 그런 성향이 제법 잘 드러난다.

 

김옥숙 여사에게 보낸 글을 보면

“한가위 둥근 달 그 빛이 황홀하되 따스함이 없음이여, 그대는 따스함이 담긴 햇빛,

차디찬 집안 따듯하게 비치우리”라고 적혀 있다.

 

아들 노재헌 변호사에게는

“너의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새롭게 하라. 탁월한 명성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이는 평범한 새로움에 밀려난다. 너의 재주와 용기, 모든 것을 새롭게 살려라.

태양처럼 다시 떠오른다는 신념을 가져라”라는 편지를 썼다.

노 전 대통령이 비교적 감수성이 풍부했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증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60년대부터 인기를 끌며 ‘민요의 여왕’으로 불렸던 가수 김세레나는

“파티 때마다 ‘베사메무초’를 열창하고 플루트를 즐겨 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평소 김 여사에 대해

“유난히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 앞에 절대로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당시 이순자 여사가 화제를 많이 몰고 다녔던 것과는 반대의 느낌이다.

 

하지만 김 여사의 그런 이미지는 대선을 앞두고 홍보 전략팀 스태프들이 만들었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의 퍼스트레이디』의 저자이자 ‘대통령배우자연구소’ 소장을 지냈던 언론인 조은희씨는

『여성신문』기고문에서

“전임 이순자 여사의 적극적인 활동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반면교사 삼아

‘퍼스트레이디 감추기 작전’을 폈다”고 썼다.

당시 보좌진의 중요한 임무가 영부인의 활동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김옥숙 여사는 ‘그림자 내조’로 일관한 조용한 영부인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주요 인사들과 일대일로 비공개 면담을 하거나

여성의원들을 설득해 막후에서 남편에게 힘을 보태기도 했다.

노태우와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수감 생활은

“자네 구치소에서는 달걀프라이 주나?”
두 전직 대통령은 12·12 사태 등으로 구속된 후 서로 다른 구치소에 수감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 전 전 대통령은 안양구치소였다.

 

두 사람이 법정에서 만나 처음 나눈 대화는 뭐였을까.

『월간조선』9월호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자네 구치소에서는 달걀프라이 주나?, 아니, 안 준다" 하는 문답이었다.

회고록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구치소 노트에는 그곳에서의 일과가 조금씩 소개됐다

“말복이 지난 지 3일이나 되었는데 찜통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몸이 천근처럼 무겁다”라고 쓴 글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무리하게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세상에 대한 관심도 여전했다.

어떤 메모에는 “YS-조순 극비 회담, 북한 경수로 신포 착공식”이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회고록에서 화제, YS 비자금 진실 게임

노태우 :

“대선 자금 3000억 줬고 금고에 100억을 남겨뒀다”


노태우 회고록에서 가장 이슈가 된 부분은 ‘돈’에 관한 얘기,

그 중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고 주장하는 3000억원에 대한 내용이다.

회고록에는 이 내용이 약 20페이지 분량에 걸쳐 자세히 적혀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에는 돈이 필요하다.

내가 재임할 때까지 여당 정치 자금의 대부분은 대기업들로부터 충당하는 분위기였다.

기업들은 정부 국책 사업에 참여해서 얻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정치 자금으로 내놨다.

대통령은 여당 총재를 겸하면서 매달 당에 운영비를 보내줬다.

3당 합당 이후 나는 당 운영비 외에 김영삼 김종필 박태준 최고위원에게 매달 적지 않은 돈을 보냈다.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에게는 다른 두 분보다 많은 액수가 건네졌다.

김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후부터는 대선 자금이 필요했다.

내가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적어도 4000억~5000억원은 들지 않겠습니까’ 했다.

나는 경제 상황과 기업 사정을 잘 아는 금진호 장관과 이원조 의원을 불러

김 총재를 도와 대선을 치르라고 지시했다.

두 사람이 각각 1000억원 정도의 기금을 조성해 줬다고 들었다.

대선 막바지에 김 총재와 참모들로부터 자금이 모자란다는 SOS를 받았다.

나는 한몫에 1000억원을 보내주었다.

김 총재는 한밤중에 내게 전화를 걸어 ‘이제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

퇴임할 때는 청와대 금고에 100억원을 남겨뒀다.”



김영삼 :

"말이 안 되는 얘기다"


회고록에 적혀 있는 주장에 대해 YS 측은 적극적인 대응 대신 ‘무시’로 일관하는 중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3000억원 관련 주장은 사실 관계가 다르며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선 자금은 당을 통했을 뿐 후보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며,

청와대 금고에 돈을 넣어두고 갔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는

“20년도 더 된 일을 왜 이제 와서 다시 꺼내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취재_이한 기자 사진_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