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관

혼자 돈 벌고 애 보고 집안일까지…열받아요

기산(箕山) 2011. 6. 16. 13:20

혼자 돈 벌고 애 보고 집안일까지…열받아요

 

                                                                                            한겨레 | 입력 2011.06.16 11:20

 

   [한겨레] [3D입체 마음테라피]

요구는 정확히! 핀잔 대신 존중을
 

 

 

 

 

 

 

 

 

Q. 전문직 30대 여성입니다.

 

결혼해서 아기가 한명 있고, 남편은 회사원입니다.

제 고민은 남편이 잔업 많고 미래 보장 안 되는 회사를 다니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벌 수 있으니 좀 쉬면서 할 일을 찾아보라고 했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어요.

집안일이며 아기 돌보는 일이며 신랑이 도와주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둘째를 계획중이라 또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해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신랑이 별로 도움되지 않을 겁니다.

저보고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고 아기도 키우고 또 거기에 임신하고 출산까지 하라니요.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더구나 신랑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만 1년째면서 뭐 하나 똑부러지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다른 할 일을 찾아보거나 적극적으로 창업 거리를 찾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요.

주말에는 잠만 자거나 억지로 제가 끌고 다녀 놀러 다니는 것뿐입니다.

 

이럴 바에야 결혼할 때 좀더 심사숙고해서 전문직 남자를 만날 걸 그랬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신랑이 빨리 중심을 잡고 집안을 이끌어가는 가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화끈하게 회사를 관두고 열정이 생기는 자기 사업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거죠.

항상 수동적으로 이 일은 나한테 안 맞아 하면서 의욕이 전혀 없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싫습니다.

이 열받는 심정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상담심리학)·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장
< < font color=#C21A1A > 그건, 꼭 말로 해야 알아요→

앵그리버드님,

'화장실에 가는 걸 참으면 운전이 난폭해진다'는 말 아세요?

 

생리적 만족감이 충족되어야 심리적 만족감도 충족된다는 차원을 넘어서,

배설하고 싶은 감정들을 억지로 참다 보면 언젠가는 사고 나기 마련이라는 뜻이랍니다.

앵그리버드님, 지금 감정의 교통사고 나셨어요.


결혼해서 동반자와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건 한 배를 탔다는 뜻이죠.

항해를 하다 보면 암초도 만나고 풍랑도 겪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지금 앵그리버드님은 혼자서 방향키 잡고, 돛 내리고, 물 퍼내려고 하고 있어요.

기이한 건, 앵그리버드님 옆에 같이 배를 탄 동료가 있는데도 도와달라고 얘기하지 않는 것이죠.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봐! 그렇게 가만있지 말고 이리 와서 물 퍼내고 구멍난 곳을 막으라고!'


남녀관계에서 아니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방해요인 중 하나가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라는 생각입니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친구 종자기가 그 의도를 헤아리듯,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주길 바라는 판타지가 있죠.

'이심전심의 환상' 같은 것 말이죠.

내가 원하는 걸 말하는 것은 '구질구질하게 다 설명하는 것'이라고 은연중 생각합니다.


일단 이건 전문직 문제가 아니라 열정의 세기의 문제랍니다.

남편을 기다려 주세요.

 

계속 남편을 수동적이라고 보시는데,

어쩌면 앞날이 불안해서 머뭇거리거나 지나치게 신중한 사람일 수 있어요.

남자들 자존심은 달걀 같아서 옆에서 안달 떨면 더 안 해요.

 

회사를 관둬라 마라 할 것 없이 그냥 지금 상태에서 가장 쉬운 집안일부터 도움을 요청해보세요.

도움을 요청할 땐 '의욕을 북돋는 메커니즘'을 활용하시고요.

 

가령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안쪽으로 들어가 주세요"라고 마이크로 호소하는 것보다는

"안쪽에 빈자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다음에 하나라도 집안일을 했다면 마구 칭찬을 하는 거예요.

자신감이 생겨야 일도 찾아나서죠.


앵그리버드님의 화는 무한한 에너지입니다.

날개를 접고 가끔은 가지에 앉아 남편과 의논해 보세요.

둘째 임신 문제 하나로도 의논할 게 너무 많네요.

분노를 소통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

 

남편뿐 아니라 앵그리버드님보다 에너지 수준 달리는 불쌍한 동포들을 위해,

그대가 줄 수 있는 위대한 선물이기도 하답니다.



소기윤 정신과 전문의·미소정신과 원장
고개 숙인 남편에게 용기를→

참 답답하시겠습니다.

결혼하고 어느 날 돌아보니 온갖 일과 책임이 내게 쏠려 있는 것 같으니 말이죠.

일단 아내 입장에서만 보자면 이런 불균형은 분명히 부당해 보입니다.

맘 같아선 초강수(?)를 두어 남편을 정신차리게 하고 싶으시죠?

 

그런데 여기서 정작 이 문제를 풀어야 할 남편 상태는 어떤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전문직인 아내보다 불만족스러운 회사생활로 의욕이 많이 떨어진 듯하고요.

가정에서도 주어진 일을 피하지 않고 열심히 해온 아내에 비해

자신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네요.

 

더욱이 자신감과 열정 같은 에너지가 부인보다 남편의 마음속에서 더 약화된 상태인 듯합니다.

그러니 당장 직업을 관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화끈하게 자기 사업을 구상할 용기가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상황이라면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못났는지 아무리 맞는 말로 증명해 보인들

'나도 그렇게 생각해…'란 맥없는 답만 돌아오기 십상일 겁니다.

우리 주위의 고개 숙인 남편들만 돌아봐도,

결혼과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무책임한 가장들보다는,

가정과 직장에서 잘해나갈 자신감이 부족한 채 근근이 버티는 분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결국 싫든 좋든 당사자에게 문제해결에 필요한 동기부여와

기회를 만들어갈 힘을 불어넣어줄 필요가 있다는 거죠.

물론 남편이 자신보다 잘해내고 있는 아내에게 과거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슈퍼맘'의

역할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이를 위해선 잠시 감정의 동요를 고르고 진지한 대화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확인하고

찾아보려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상대가 현재 보여주는 결과물로 잘해보겠다는 동기마저 낮다고 평가하시기보단

오히려 부족한 동기도 결혼과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재확인하고 끌어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이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필수적인 육아·가사와 같은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목록화하고

직업과 수입의 고저를 떠나 이들을 분담해야 할 필요성과 그 방법들을 얘기해 보세요.

여기까지 가능해졌다면 이제 자신보다 열정이 부족한 상대에게 핀잔주기보다

그 열정을 나눠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으면 합니다.

그건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고 격려하는 태도에서부터,

구직이나 창업 아이디어를 같이 살펴보는 구체적인 도움까지 다양할 것입니다.



윤선현 정리 컨설턴트·베리굿 정리 컨설팅 대표
남편 스스로 선택하도록 정리해줘야→

주부들에게 "무엇을 가장 정리하고 싶냐"고 물으면 '남편'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워킹맘들은 가사를 돕지 않는 남편 탓에 큰 마음고생을 하곤 하죠.

더구나 맞벌이하면서 둘째 출산 계획까지 있다면 더욱 어렵겠죠.

이런 경우 가장 필요한 것은 남편과 아내의 명확한 역할분담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남편께 기대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기록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원하는 게 막연하다면 남편이 변한다 해도 만족스럽기 어렵겠죠?


가사의 경우는 우선 남편이 할 수 있는 한가지 정도만 부탁하는 게 어떨까요.

쓰레기 분리배출처럼 간단한 일이라도 우선 가사를 분담해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보다 한달에 한가지라도 남편이 스스로 선택해 참여해본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남편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도록 부부가 함께 노력하는 게 필요합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길 원한다면

구체적인 날짜를 정해두고 언제까지 결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고 나선 아무리 속이 터지고 답답해도 그때까진 기다려 줘야겠죠.


주말에 무엇인가 한다는 걸 매우 귀찮게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휴식습관'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엔 외부 활동을 강요해봤자 다툼만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주말에 번갈아가며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기로

약속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당장 이번주엔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해도 다음주가 있잖아요.


심리학자 매슬로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관계 속에서 가장 강렬한 욕구는 '인정 욕구'입니다.

지금 남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내에게 존중받는 것일 수 있다는 거죠.

 

남편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런 결정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것,

가정 안에서 작은 규칙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가족의 질서와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