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뉴스]
우리가 몰랐던 설 풍속도 이모저모
노컷뉴스 | 입력 2011.02.03 15:15
[CBS정치부 김주명 기자]
▶설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지만 한때 음력 설을 쇠지 못하게 하던 때도 있었죠?
= 그렇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설 명절이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서구화하는 것이 선진화로 인식됐고
이에 따라 정부는 설 명절을 낡은 전통처럼 여겨 양력 1월 1일을 명절로 대체하려 했다.
특히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음력 설을 폐지하고 양력 설을 쇠는데
이같은 일본의 영향으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양력 설을 공식 설로 인정한 반면
전통적인 설은 민간에서 지내는 사적인 설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래서 양력설과 음력설을 이중으로 쇠는 기형적 형태로 이어져오다
1985년 지금처럼 음력 1월1일을 민속의 날로 지정했고
1989년 2월 설날 공휴일을 현재와 같이 변경했다.
그리고 1998년 12월에는 IMF 이후의 경제난 타개와 설을 이중으로 쇠는 낭비를 막기 위해
양력 1월 1일 연휴를 하루로 축소했다.
전통문화와 세시풍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민들의 노력으로
설은 추석과 함께 민족최대의 명절로 정착될 수 있었다.
▶귀향길에 설 선물 꾸러미를 들고 부모님을 찾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인기있는 설 선물은 시대에 따라 크게 바뀌었죠?
= 명절을 맞아 따스한 정을 주고받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세월따라 명절선물은 크게 바뀌었다.
명절선물에는 주고받는 사람들의 정 뿐 아니라 당시 시대상이 반영돼 있다.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 대 이전까지만 해도 설 선물이 상품으로 나오지 않았고
기껏해야 짚으로 만든 꾸러미 속에 담긴 계란이나직접 기른 닭을 보내는 것이 주요한 선물이었다.
산업화가 진행된 1960년대부터 설 선물이 본격적으로상품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에는 설탕 밀가루 등이 귀한 설 선물로 등장했다.
이어 70년대에는
소비재 산업이 발달하면서 조미료와 식용유 비누 치약 등이 가장 인기있는 선물로 등장했고
빨간 내복 등도 인기 품목이었다.
이 때 어린이들에게는 과자세트나 탄산음료 세트가 큰 인기를 끈 선물이었다.
80년대 들어서
갈비나 굴미 과일, 참치 통조림 세트 등과 가죽 벨트 양말 등의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백화점 상품권이 등장한 90년대 이후에는
상품권이나 고급 한우세트 영광굴비 그리고 수입양주 등 선물에도 고급화가 본격화됐다.
그리고 2천년대 들어서는 전자제품이 명절 선물로 본격 등장하고
웰빙바람 등을 타고 각종 웰빙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설 선물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가 신묘년, 토끼해인데 토끼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죠.
우리에게는 토끼와 거북이 얘기 때문에 많이 친숙한 이미지이고
또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 아닙니까?
= 그렇다.
우리 전통문화속에서 토끼는 지혜와 평화 번창, 풍요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토끼전의 근원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의 구토설화에서 나왔다.
김춘추가 백제에 복수하려고 고구려로 군사지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오히려 고구려 옛 땅을 반환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붙잡히는 신세가 됐다.
그때 김춘추는 고구려를 탈출하기 위해 고구려 신하 선도해에게 대접을 해줬는데
술 취한 선도해가 김춘추에게 들려준 구토설화가 < 토끼와 거북이 > 이야기였다.
김춘추는 거기서 토끼의 지혜를 얻어 고구려를 탈출해 나왔다는 얘기인데
이후 '토끼전', '별주부전'등으로 널리 퍼졌고 나중에 판소리 수궁가로 태어났다.
▶달에는 방아를 든 토끼가 살고있다는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유래는 어떻게 됩니까?
= 우리의 전통 민속화에서 해는 발이 셋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로 표현되고, 달은 토끼로 표현된다.
어릴 때 부르던 반달이라는 동요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이런 가사가 나오는 데 달에 토끼가 살고있다는 얘기를 동요로 표현한 것이다.
중국의 고전인 < 회남자(淮南子) > 남명편(覽冥篇)에 이 설화의 기원이 전해진다.
중국 요임금 시절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떠오르고 많은 괴물이 출현해 백성을 괴롭히자
임금의 명을 받은 하늘신 예가 9개의 태양을 화살로 쏘아 떨어뜨리고 모든 괴물을 없앴는데
하늘 천제(天帝)는 자신 아들인 아홉 태양을 죽인 예와 그의 아내 항아(嫦娥)에게 벌을 줘
인간으로 내려보냈고 하나라 백성들은 예(羿)를 왕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후 예는 다시 신이 되기 위해 서왕모(西王母)에게서 불사약을 훔쳤는데
예가 구한 2알의 불사약 중 하나를 훔쳐 먹은 항아는 하늘에 올라 달[月]의 신이 되었다.
그리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를 시켜 또하나의 불사약을 방아에 찧어 곱게 가루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계수나무 아래 토끼는 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방아를 찧는 모습으로 묘사된 것이다.
중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나 우주선 이름이 창어인데 이는 상아의 중국식 발음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처럼 음력 1월 1일을 최대 명절로 지내는 나라들이 많죠?
=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몽골 싱가포르 등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명칭은 다르지만
설을 최대 민속 명절로 지내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회교 문화가 강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나
불교문화가 강한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등은 별도의 명절을 보낸다.
다만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에서 화교들을 중심으로 설 축제가 진행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는 양력 설을 지내고 있고 필리핀도 오랜 식민지 역사의 영향으로전통설은 사라졌다.
▶중국에서는 전쟁이 터진 것처럼이나 요란한폭죽놀이가 전국적으로 벌어진다죠?
= 그렇다.
중국은 설을 춘제(춘절)라고 부르는데이날은 전 중국인이 폭죽을 터뜨린다.
폭죽문화는 화약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대나무를 태우는 풍습에서 비롯됐다.
전설에 따르면 녠이라는 괴물이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대나무가 타면서 내는 탁탁 소리에 놀라 도망갔다고 해서 대나무를 태우는 전통이 생겼다는 것이다.
중국의 폭죽놀이는 섣달 그믐날 밤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계속되는데
특히 그믐부터 설날 아침까지는 마치 전 중국이 공급을 받은 것처럼 엄청난 폭죽 놀이가 이뤄진다.
특히 서너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폭죽을 사서온 가족이 함께 터뜨릴 정도로 중국인의 폭죽 사랑은 각별하다.
▶설 명절에는 어떤 음식을 먹나요?
= 중국인들의 춘제 전날 온 가족이 모여 밤새 식사를 하는데 이를 '녠예판'이라 부른다.
과거에는 집에서 식사를 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식당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 꼭 먹는 것이 교자라는 우리로 말하면 만두인데
중국의 만두는 속이 없이 밀가루 덩어리이고 우리의 만두가 교자에 해당한다.
교자는 쟈오즈라고 부르는데 쟈오라는 글자가 교대한다는 교와 발음이 같아서
묵은해와 새해가 교대한다는 의미에서 교자를 먹는다.
또 하나 풍속은 '복'자를 거꾸로 붙이는 것인데
복자가 거꾸로 붙어있다는 것이 중국 발음으로는 '다오푸' 인데
이게 복이 도착했다는 것과 같은 발음이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도 음력 1월 1일이 가장 큰 명절로 꼽히고 있죠?
= 베트남에선 설을 '뗏'이라고 한다.
역시 설날이 큰 명절이기 때문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설을 쇤다.
이날 길거리에 나가보면 붉은색으로 장식된 각종 봉투들이 나부끼는 데
중국처럼 베트남도 붉은색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뗏에는 어떤 풍속이 있습니까?
= 대표적인 베트남의 설 음식은 '반쯩'을 먹는데 이것은 찹쌀을 굳혀서 떡처럼 썰어 먹는 밥이다.
루어이깐 이라는 술을 항아리에 담고 긴 대롱을 꽂아 여럿이서 빨아먹는 습관도 있다.
세뱃돈은 중국처럼 붉은 봉투에 넣어 주고 또 수박을 잘라서 한해의 운세를 점치는데
자기가 자른 수박이 발갛게 잘 익었으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믿는다.
또 설날부터 사흘 동안은 집안 청소를 하더라도 쓰레기를 밖으로 내다버리지 않는데
복도 함께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몽골로 가보죠. 몽골에서는 설을 뭐라고 부르죠?
= 차강사르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하얀 달'이라는 뜻인데 몽골 사람들은 흰색을 매우 좋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대신 설날 해가 뜨기 전에 산에 올라가 돌탑을 돌면서 한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한다.
몽골의 돌탑을 '어워'라고 하는데 이 앞에다 향을 피워놓고 이 어워를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 돌면서
한해의 풍요와 축복을 기원하는 주문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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