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일본 땅에 남은 만행의 흔적들

기산(箕山) 2010. 8. 17. 16:48

 

 

                                                                                                  입력시간 : 2010-08-16 11:14
[앵커멘트]
일제 침략과 만행의 흔적들은 한반도 뿐 아니라 일본 땅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 일본 사회가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의미를 되새겨야 할
일본 내 과거의 기억들을 소개합니다.

도쿄에서 임장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후쿠오카 시내의 작은 사찰 셋신원.
정문 옆에 서 있는 온화한 미소의 이 석상은 일제에 의해 참혹하게 숨진
명성황후를 애도하는 관음보살상입니다.

명성황후 시해 13년 후인, 1908년 세워졌는데, 제작자는 다름아닌,
황후에게 직접 칼을 휘두른 일본 자객 중 한 명입니다.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가토 요시코, 셋신원 관리자]
"황후가 숨질 때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꼭 공양하고 싶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면서 관음상을 세웠습니다."

당초 청동상으로 제작된 관음상은 1940년대 초반,
전쟁에 몰두하던 일본군이 군수물자로 징발하면서 없어졌지만,
사찰측이 죄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며 지금의 모습으로 되살렸습니다.
명성황후를 상징화한 이 관음보살상은 이후 이 지역에서
참회와 화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 소녀 300명이 끌려와 군용기 제조에 강제동원됐던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 중공업단지.
공장들 사이 비좁은 곳에 외롭게 자리한 이 위령탑은
조선 소녀 6명 등 당시 강제노역을 하다 숨진 희생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강제동원 만행의 역사를 알게 된 다카하시 씨 등 지역 주민들이
과거를 덮어둘 수 없다며, 20년 전 미쓰비시사를 끈질기게 압박한 끝에 세운 것입니다.

[인터뷰:다카하시 마코토, 강제징용 한국인 지원단체]
"우리가 발견한 일본의 가해사실을 꼭 밝혀야 한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다카하시 씨는
이후 한국인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내 이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주도하는 등
일본의 과오를 바로잡는 일에 일생을 걸었습니다.

일본 곳곳에 남아있는 강제병합 100년의 흔적들.
씻을 수 없는 아픔의 기억인 동시에 일본의 양심을 잠깨울 상징으로도 다가옵니다.

YTN 임장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