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세대’ 20대, “MB 국정운영 방식이 촌스럽다”
시사INLive | 김은지 기자 | 입력 2010.06.12 09:20
순식간이었다. 6월2일이 지나자 20대는 '정치 천덕꾸러기'에서 '개념세대'로 바뀌었다. '승리'에 도취된 기성세대는 훈계와 비판을 멈추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가수 신해철은 "20대를 깔보았던 교만을 사죄드린다"라며 공연 무대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언론은 '20대의 반란'이라고 썼다.
"니들이 해냈다"라는 환호에 정작 20대는 담담했다. '별일이다'라는 주변의 목소리에 '별일 없이 산다'라는 반응이다. 선거 다음 날인 6월3일 저녁, 김선(23·민주당 20대 부대변인), 김성환(27·20's party 대표), 이기중(29·진보신당 서울 관악구 구의원 출마자), 전건우(26·한나라당 '한나라 캠퍼스Q' 2기 회장), 한윤형(27· <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 저자)씨가 < 시사IN > 편집국에 모여 '20대와 지방선거'에 대해 본인과 주변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들은 '안보장사하는 이명박 정부의 오버가 짜증났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촌스럽다'고 조소했다. 그래서 트위터와 아이폰으로 빠르게 움직였을 뿐이란다.
ⓒ시사IN 백승기 좌담 참석자들은 "권위적이고 냉전식 사고를 하는 이명박 정부가 싫다"라고 말했다. 위는 4월30일 열린 '대학생유권자 연대'의 대학생 정치참여 선언대회. |
사회
:20대 투표율이 높아졌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 이유가 뭘까?
ⓒ시사IN 백승기 이기중(29·진보신당 서울 관악구 구의원 출마자) |
이기중
:기본적으로는 여당심판론이 20대에게도 먹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반대하거나,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20대가 투표장으로 갔다.
김선
:이명박 정부 들어 심각하게 제한된 의사표현의 자유, 공포심이 절박감을 불렀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정서가 표심을 자극했다.
김성환
:심판론에는 북풍에 대한 역풍도 포함된다. 안보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반발이다. 예비군 훈련을 가니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하다가는 전쟁 나는 거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20대는 반값 등록금·주거권 문제 해결이 좋은 이야기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여러 번 속았던 경험이 있어서다. 오히려 당장 총을 들어야 하는 예비군에게는 '전쟁을 막자'라는 이야기가 더 와 닿는다. 전쟁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명박 정부에 거부감이 든 거다.
김선
:주변에서도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보면서, 선거용 아니냐는 말을 많이 했다. 정부 발표를 정치적인 쇼라고 보는 시각이 강했다. 한마디로 '짜증난다'는 것이다.
김성환
:'간지' 혹은 '미학'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대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시사IN 백승기 전건우(26·한나라당 '한나라 캠퍼스Q' 2기 회장) |
전건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20대의 정치의식이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분위기였다. 트위터나 연예인의 투표 인증샷 등을 통해 투표해야 한다는 바람이 불었다.
한윤형
:촛불시위 이후 인터넷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여론은 계속해서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투표율 상승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심판론이 전반적으로 퍼진 상황에서 '이래도 투표 안 하면 너네는 시민권이 없다'라는 '겁박론'이 효과를 발휘했다.
20대의 투표율을 올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실제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정책이나 이슈가 있거나, 물리적으로 투표하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거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두 가지 다 없었다. 각 정당의 20대 관련 정책은 빈약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부재자 투표소 설치에 비협조적이었다. 그래도 투표율이 높았다는 것은 담론의 힘이다.
김성환
:20대 투표 독려 담론을 꼭 '겁박'으로 보지 않는다. 20대를 바라보는 오피니언 리더층의 시각, 언론 보도 뉘앙스 등 여론이 바뀌었다. 정치적 동원 대상에서 변수로 시선이 변했다. '20대 포기론'보다는 '20대 희망론'이 떴다. 20대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한다는 여론 속에서 20대도 자신의 한 표가 소중하다고 받아들였다. 선거 당일 '투표하라'는 문자를 여러 통 받았다. 나도 500통 보냈다(웃음). 또 '커피파티'와 같은 소규모 유권자 운동을 통해 20대가 자기 이야기를 할 공간을 찾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김선
:20대 유권자 운동이 지난 총선·대선 때에 비해 활발히 일어났다. 정당을 떠나서 각 대학 총학생회나 시민단체 등의 다양한 움직임도 투표율 상승에 일조했다. 언론도 열심히 호응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20대와 기성세대 다를 바 없다"
사회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여겨지던 세대였다.
전건우
:기성세대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젊은 사람은 '잘 모른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선거 당일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대뜸 '투표는 했어요?'라고 물었다. '했다'고 하니까 자기가 분석한 정국에 대해 쭉 말하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반박했더니 뭘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
이기중
:우리 세대가 정치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고, 윗세대가 정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20대와 기성세대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구의원으로 출마해 지역을 다닐 때, 만나는 사람마다 선거전략을 전수해줬다. 100인 100색이었다(웃음). 그런데 그 방법이라는 게 대개 정책이 아니라 정치판에 관한 거다. 그게 어제 본 드라마에 대한 관전평과 뭐가 다를까. 20대가 연예인 이야기하듯 기성세대는 정치가 가십인 것이다.
한윤형
:그러면서 젊은이들을 보며 '정치를 잘 모른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 정치와 '설'을 구분해야 한다. 지금의 20대는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다기보다는 냉소한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또래들이 참여정부가 끝나면서 부동층으로 빠졌다. 그 사이에 그들이 느꼈을 좌절감이 '누가 되어도 다를 게 없다'라는 냉소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20대 전반이 보수화되었다면, 그건 한나라당을 찍어서라기보다는 냉소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시사IN 백승기 김성환(27·20's party 대표) |
김성환
:6·2 지방선거에서 참여가 늘어난 것도 냉소가 해소되어서가 아니라 정치공학이 효과를 발휘해서다. '선 대 악' '정의 대 부정의'의 이미지화가 20대에게 어필했다. 한명숙·노회찬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되어도 반값 등록금이 실현될 거라고 보는 20대는 적었다.
한윤형
:그런 점에서 20대 투표율 상승이 당장의 정치세력화로 이어진다거나 유의미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는 해석은 과하다. 여전히 투표 참여 캠페인은 '해야 하는 것'이라는 당위로 설명되었다. 20대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나 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빈곤했다. 삶과 연관되지 않은 정치 참여는 일시적일 수 있다.
사회
:20대 투표율에 관한 담론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과 후가 다르다. '선거하자'는 독려에서 '장하다, 20대'라는 칭찬으로 바뀌었다.
이기중
:여론주도층은 '386 세대'다. 그들은 과거의 추억으로 20대를 바라보며 훈계와 안타까움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 시절의 20대와 오늘날의 20대는 다르다.
한윤형
:젊은 층의 낮은 투표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2007년 대선 이후부터 20대가 집중 공격을 받았다. 민주개혁 세력은 선거 패배의 원인을 20대의 낮은 투표율에서 찾았다. 20대가 일종의 희생양이 되었다.
ⓒ시사IN 조남진 20대 유권자운동의 일환으로 5월19일 '20's party'가 실시한 경기도지사 후보 면접 장면. |
김성환
:동의한다. 20대에게 선거 결과의 책임을 묻는 의견에 되묻고 싶다. 그럼 당시에 기성세대는 무엇을 했냐고. '20대 책임론'은 쉬운 해석이다.
한윤형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20대에게 고무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또 다른 '20대 책임론'이다. 20대가 투표를 많이 해서 환호하는 여론이 일었는데, 이번 선거를 계기로 20대의 삶은 변할까? 여전히 '스펙' 쌓고 토익공부를 해야 한다.
전건우
:20대의 삶이 변하기 위해서는 20대를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20대 정책은 거의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20대가 표밭이 아니라고 본다. 조직화되어 있지 않아서다. 정치는 주고받기인데, 이해관계가 안 맞으니 관심을 안 가진다.
이기중
:1990년대 운동권이 무너진 이후부터 20대의 조직화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정당이 중요한데, 이번 선거를 보더라도 각 당의 20대 관련 움직임은 생색내기용이었다. 20대에게 비례후보 자리를 내줬다지만, 당선이 불가능한 번호대였다. 당내 공천에서도 20대 예비후보들이 대거 떨어졌다.
ⓒ시사IN 백승기 김선(23·민주당 20대 부대변인) |
김선
:민주당에서는 20대 부대변인을 만드는 등 지방선거를 맞아 20대 이슈를 띄워보려고 했지만 천안함에 가려 다 사라졌다. 20대 부대변인 첫 브리핑 날이 정부의 천안함 사고 원인 발표 날과 겹쳐 우리 이야기는 기사에 거의 안 나왔다.
전건우
:한나라당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자기 일에 반응하는 20대
한윤형
:20대 조직화를 위해서는 한국에서 정치인이 어떻게 수혈되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유럽에서는 정당에서 길러진 20대 인재가 당의 우두머리까지 된다. 반면 한국은 고시를 패스한 40~ 50대 명망가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위주다. 그러다보니 20대의 정치세력화가 쉽지 않다.
이기중
:그런 점에서 지방선거는 젊은이가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총선에서는 20대가 또래에게 표를 잘 주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지방선거는 다르다. 동네에서 자주 본 비슷한 연배의 후보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래서 20대 후보가 많이 당선되기를 바랐는데 나도 300여 표 차이로 떨어졌다(웃음).
사회
:6·2 지방선거에서 20대가 갖는 의미는 뭐였을까? 이번 결과가 유의미한 정치적 변화로 계속 이어진다고 보나.
전건우
:자세한 투표율 결과와 분석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만 놓고 보면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는 20대 유권자가 캐스팅 보트 구실을 했다. 투표에 참여한 것만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쉬운 건 20대가 특정한 자기 이해보다는 바람을 타고 움직였다는 거다. 정치권에서 이해관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담보받을 수 있도록 조직화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김선
:20대의 정치 참여가 대단한 뉴스가 아닌 시절이 빨리 와서 이런 좌담도 안했으면 좋겠다(웃음). 이번 결과를 대단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번이 출발점이다.
ⓒ시사IN 백승기 한윤형(27· <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 저자) |
한윤형
:기존 정치세력들이 다음 선거에서는 20대를 좀 더 고려해서 전략을 짤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거대 정당보다는 군소 정당이 20대에 초점을 맞춘 공약과 전술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덩치가 큰 당은 20대 유권자를 '들이는 품에 비해 결과가 적게 나오는 층'으로 본다. 20대 정책과 표심은 군소 정당이 더 공략할 수 있다.
이기중
:2004년 총선 때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노인 폄하 발언으로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젊은 유권자를 두고 '아새끼'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열받아하는 20대 유권자는 드물었다. 언론에 보도가 많이 안 된 탓도 있겠지만, 아쉬웠다. 젊은 유권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20대 스스로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김성환
:6개월간 20대 유권자 운동을 하면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투표율 잘 나온 이번 결과에 크게 고무되어 대단한 변화가 시작된 것인 양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이제 시작이다. 20대는 상황만 만들어주면 충분히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 정치를 무겁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가볍게 일상에 대해 수다 떠는 것이라고 말하며 다가가면 부담 없어한다. 유권자 운동도 크게 벌일 필요 없다. 작게 시작하면 된다. 어떤 형식으로든 작은 참여 공간부터 만들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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