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자식들'도 춤추게 하는 건 교육뿐
머니투데이 | 이경숙 기자 | 입력 2009.06.18 09:39
[[대한민국 新카스트 시대] ⑧ 개천에서 '용' 만들기]
-"희망은 공부밖에 없잖아요"
-아이들에게 신분상승 통로를
-아이들에게 신분상승 통로를
개천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 돌다리 건너 마을 입구엔 푸른 풀이 무성하다.
골목 안 구불구불한 흙길로 들어서니 희미하게 비누냄새가 풍긴다.
골목 안 구불구불한 흙길로 들어서니 희미하게 비누냄새가 풍긴다.
희거나 울긋불긋한 빨래가 나풀거리는 건조대, 옹기종기 낮은 키의 장독들,
고추나 상추 따위가 자라는 화분과 스티로품 상자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슬레이트 판으로 만든 벽엔 벽화가 경쾌하다.
슬레이트 판으로 만든 벽엔 벽화가 경쾌하다.
벽화 속 빨간 말, 노랑 부리 오리, 푸른 나무들 사이로 '사람세상'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은 아이답게 말갛다.
1980년대 초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곳은 서울 포이동 266.
1980년대 초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곳은 서울 포이동 266.
양재천 건너 높게 솟은 타워팰리스와 대비되는 풍경과 삶으로 `양극화'의 상징이 돼버린 곳이다.
지금도 이곳엔 `투쟁'이란 글자가 쓰인 깃발이 펄럭인다.
지금도 이곳엔 `투쟁'이란 글자가 쓰인 깃발이 펄럭인다.
정부가 89년에 주민들의 원래 주소를 말소하고 불법점유자로 규정한 뒤
가구마다 5000만~8000만원에 달하는 `토지변상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1981년부터 정부의 자활근로대나 지역개발 정책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와 살고 있던 주민들은
1981년부터 정부의 자활근로대나 지역개발 정책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와 살고 있던 주민들은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어른들이 '투쟁'과 생업을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아이들은 방치된 채 있었다.
사교육은 꿈도 꿀 수 없는 이곳에서 최근 2명의 대학생이 탄생했다.
사교육은 꿈도 꿀 수 없는 이곳에서 최근 2명의 대학생이 탄생했다.
1명은 2005년 숙명여대에, 또다른 1명은 지난해 단국대에 합격했다.
숙명여대생은 미국 유학까지 갔다. 이 마을이 만들어진 지 30여년 만에 맞은 경사였다.
조철순 포이동 266번지사수대책위원장은
조철순 포이동 266번지사수대책위원장은
"포이동 부모들은 한쪽은 투쟁하느라 다른 한쪽은 재활용이나 청소일 해서 돈 버느라 경황이 없어
아이들을 돌볼 틈이 없다"며 "그런 와중에 아이들이 대학에 척척 합격하니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또 "비뚤어진 아이들이 없다는 게 제일 고맙다"며
또 "비뚤어진 아이들이 없다는 게 제일 고맙다"며
"'포이동 인연맺기학교' 선생님들이 애써주신 덕분"이라고 고마워했다.
인연맺기학교는 2005년에 만들어졌다.
인연맺기학교는 2005년에 만들어졌다.
이 학교 교사 김주혜씨(22·연세대 사회학)는 "투쟁하러 가보니 방치된 아이들이 있어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하고 10여명의 대학생이 모여 대안교육이냐, 제도권교육 보완이냐를 놓고
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하고 10여명의 대학생이 모여 대안교육이냐, 제도권교육 보완이냐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31명의 대학생 교사가 매주 3일 번갈아 이곳에 '출근'하면서 15명의 아이를 가르쳤다.
31명의 대학생 교사가 매주 3일 번갈아 이곳에 '출근'하면서 15명의 아이를 가르쳤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적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김씨는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 '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고 눈을 빛내며 공부할 것이란 기대는
김씨는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 '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고 눈을 빛내며 공부할 것이란 기대는
환상"이라며 "공부하는 습관 자체가 들여져 있지 않아 무조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너희 상황은 너희 잘못이 아니지만 그래도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요.
"지금의 너희 상황은 너희 잘못이 아니지만 그래도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요.
어쨌든 여기 아이들에게 남은 희망은 공부밖에 없잖아요"
공부하라고 모아놨더니 묘하게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공부하라고 모아놨더니 묘하게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집안에만 있던 아이들이 공부방에 나오면서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됐다.
다른 동네 친구들도 와서 놀다갔다.
심지어 어떤 강남아이는 하룻밤 자고 갔다. 근처 구룡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다.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아무 벽 없이 어울려 노는 걸 보면서 저희도 놀랐어요.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아무 벽 없이 어울려 노는 걸 보면서 저희도 놀랐어요.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크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른들의 편견과 선입견에 물들지만 않는다면요"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로 나가면 더 큰 편견이 이들을 기다린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로 나가면 더 큰 편견이 이들을 기다린다.
집안, 출신지, 출신학교 등 '신카스트'의 굴레다.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은 "몇년 전만 해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입사하는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은 "몇년 전만 해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입사하는
지방대생들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선 지방대 출신은 아예 원서도 내지 않는다"며
"원서도 내기 전에 미리 포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지방대 출신, 가난한 집안 출신은 뽑아놓으면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강해 일을 잘한다"며
또 "지방대 출신, 가난한 집안 출신은 뽑아놓으면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강해 일을 잘한다"며
"사회적약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권가의 '베스트 투자전략가'로 유명한 김 부사장은 지방대 출신이다.
전남대에서 학사를, 서강대에서 석사를 마친 후 대신경제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증권가의 '베스트 투자전략가'로 유명한 김 부사장은 지방대 출신이다.
전남대에서 학사를, 서강대에서 석사를 마친 후 대신경제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카스트는 무엇보다 정부가 정책적 의지를 갖고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정책적 해법은 뜻있는 대학생들이 포이동 아이들에게 실천하는 교육기부처럼
사회적약자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순 없으니 취약계층에게 일할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가도록 제도적 장치를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순 없으니 취약계층에게 일할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가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든 자신만의 성공신화를 쓸 수 있다는 희망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만의 성공신화를 쓸 수 있다는 희망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 카스트를 지우면 개천에서도 용을 만들 수 있다.
이경숙기자
이경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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