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관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기산(箕山) 2008. 6. 22. 00:38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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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사람 쓰는 원칙은 시세(時勢)에 따르는 것이다.
천하가 안정됐을 때 쓸 사람이 따로 있고 요동칠 때 쓸 사람이 따로 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이후 근 한 달 넘게 끌어온 국정 쇄신 인사의
첫 가닥으로 새 대통령실장에 교수 출신 대학총장을 내세운 것은 결코 적절치 못했다.
내정자 그 개인에 대한 평가가 결코 아니다.
지금 상황에 최적화된 인물의 유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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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이 안정되고 난 후에는 지금의 내정자와 같은
학자형·관리형 실장이 들어와도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학의 권위자가 필요한 때도 아니고
대학을 잘 관장해 성장시켜 온 관리자가 필요한 때도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야전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사태를
수습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실장을 해야 할 때다.
전임 실장에 이어 또다시 교수 출신을 등용한 것은
단적으로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정작 일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지도자가 사람 쓰는 것을 보면 그의 의중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여전히 스스로가 주도해 일하고
비서진과 내각은 따라오라는 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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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금의 사태가 왜 벌어졌는가.
대통령의 고백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키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그 여파와 파장에 대한 생각을 미처 못한 채 서둘렀기 때문 아닌가.
만약 당시에 민감하게 정무적 판단을 하는 실장이 있어
비서실의 의견을 모아 직언하고 간언했다면 애초에 이 지경까지 왔겠는가.
 
학자형·관리형 실장이 이끄는 비서실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 채
다 따라가기만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제2, 제3의 쇠고기 파동 못지않은
일들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을 ‘크로스 체크’할 만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
정무수석 가지고도 안 된다.
대통령실장이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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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통령실장 내정자가 울산대 총장 출신이라는 점도 적절치 못하다.
왜 하필 울산대인가.
그곳은 현대와 관련된 곳 아닌가. 게다가 정몽준 의원이 이사장 아닌가.
괜한 트집 잡고 시비를 걸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정치적 구설이 생길 소지를 애초에 없애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빌미를 남길 여지가 있는 인사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직도 대통령이 ‘자기 사람’ ‘자기 테두리 의식’을 벗어던지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식이라면 머잖아 문제를 또 마주하고 사태는 또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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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쩌란 말이냐고 대통령이 볼멘소리를 할지 모른다.
물론 정무형 인사를 찾으려고 했는데 못 찾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이거나 아직도 대통령이 변하지 않았다는 방증일 뿐이다.
 
사람을 제대로 쓰려면 자기 테두리부터 허물고 삼고초려 아니라 그 이상도 해야 한다.
 
대통령실장에는 당초 정치·행정 경력이 풍부한 정·관계 인사가
임명될 것이라는 기대와 예상이 있었고 그것이 상식이다.
그 상식을 좇아 자기 주변을 넘어 더 폭넓게 사람을 찾았어야 했다.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자기 테두리에 갇혀 구하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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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나무도 먹줄을 따라 자르면 바르게 되듯
군주가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면 사리에 밝아질 수 있다.
그래서 『정관정요』에서 이르길 성군이 되려면
일곱 명의 직언하고 간언하는 신하를 두라고 했다.
 
실제로 당 태종은
방현령·두여회·위징·이정·우세남·이적·온언박 등을 둔 덕분에
‘정관의 치’도 이룰 수 있었다.
 
이번 청와대 인사가 대통령에게 진정으로 간언하는
일곱 수석을 둔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결국 자기 그릇만큼 사람 쓴다는 옛말은 어김이 없어 보인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