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4일 (수) 15:33 한겨레
건달 마저 떠난 청계천, 노점상 한숨만
“… 어느 핏발 서린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천지인 노래, 청계천 8가 중에서)
서울시 중구 청계8가 삼일아파트 상가 앞 거리. 한때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헌옷 한 벌을 두고도 흥정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흥정하던 손님들도 사라지고 지금은 일대 상인들의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고단한 노동을 끝낸 서민들이 지친 몸을 뉘었을 옛 삼일아파트 자리엔,
롯데캐슬이라는 33층의 거대한 ‘성’이 날렵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청계천의 조망권도 조만간 입주하게 될 ‘성주’들의 몫이다.
그 옆으로 3~4평 남짓의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 상가도
이젠 서슬퍼런 재개발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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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생업을 꾸리던 자리는 ‘성주’들의 산책로가 된다.
상가마저 사라지고 나면, 한국전쟁 이후 ‘가난한 이들의 끈질긴 삶’을 상징하던
청계천변의 풍경은 ‘과거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건장한 장년들의 ‘검은색’ 침묵시위
13일 오후,
건장한 장년들의 ‘검은색’ 침묵시위
13일 오후,
이날도 뒤숭숭한 상인들 앞으로 검은색 그림자가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검은 군화에 검은 옷을 차려입고, 지팡이를 한 쪽 손에 쥔 퇴역 군인들이
마치 침묵시위를 하듯 상가 앞을 천천히 배회한다.
철거에 저항하는 세입자들과 노점상들을 상대로 자진 철거를 하라고
시위를 하는 것이란다.
며칠 전엔 이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물건을 만지작 거리며
세입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부 세입자들이 가게 안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 녹화하겠다고 벼르자,
가게 안 ‘침투’는 다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이날 오전엔 철거 용역업체에서 받은 공문 때문인지,
신경이 매우 예민해져 있었다.
“2월 말까지 철거를 완료할 계획이고, 우선적으로 상가 앞으로 펜스를 치겠다”는
통보였다.
가게 주인들은 이미 가게를 팔아 떠난 이들이 많지만,
세입자들은 제대로 된 철거일정이나 보상 논의에서 소외됐다.
비디오 가게엔 포르노 테이프를 찾는 노인들만 간간히
철거를 앞둔 세입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과거 한국 ‘음란물’의 메카였던 이곳의 한 비디오 테이프 가게를 찾았다.
비디오 가게엔 포르노 테이프를 찾는 노인들만 간간히
철거를 앞둔 세입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과거 한국 ‘음란물’의 메카였던 이곳의 한 비디오 테이프 가게를 찾았다.
잠시 뒤 허름한 옷차림에 60대쯤으로 보이는 이가 비디오 테이프를 교환하러 왔다. 닷새 전 이곳에서 1만원을 주고 포르노 테이프를 사간 손님이었다.
5천원을 내면 다본 테이프를 다른 테이프로 교환해준다.
이 가게 주인 ㄱ씨는 “젊은 사람들이야 요즘 인터넷으로 다 보고,
저렇게 나이들어 ‘없는’ 사람들만 간간히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청계천 벼룩시장이 쇠락했듯, 한시절을 풍미했던 ‘음란 테이프’
시장도 이렇게 저물고 있었다.
ㄱ씨가 이렇게 장사해서 손에 쥐는 수입은 잘해야 하루 3~4만원이다.
ㄱ씨는 지난 2002년 권리금 6500만원, 보증금 1500만원, 월세 110만원의
ㄱ씨는 지난 2002년 권리금 6500만원, 보증금 1500만원, 월세 110만원의
조건으로 이 가게에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월세를 내고 그럭저럭 먹고 살만큼 장사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곧이어 시작된 청계천 복원 공사로 2년 동안을 ‘파리 날렸다’.
서울시에서 송파구 장지동에 8평짜리 가게를 마련해 준다는 데,
8천만원을 내야 한단다.
점심값 4천원을 아끼려고 싸온 도시락을 풀던 ㄱ씨는
“월세 못내 보증금마저 날렸는데 무슨 돈으로 거길 가냐”며
“제대로 된 이주대책이나 보상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ㄱ씨 가게 앞으로 중고핸드폰 판매대를 놓고 장사를 하는
한아무개씨는 이른바 ‘전전세 세입자’다.
ㄱ씨 가게 앞으로 가판대를 놓는 조건으로 ㄱ씨에게 600만원의 보증금을 냈지만,
한씨 역시 보증금을 다 까먹었다.
노점상들은 더 막막…자릿세 뜯던 건달들마저 떠나
세입자들보다 더 막막한 건 인근 노점상들이다.
노점상들은 더 막막…자릿세 뜯던 건달들마저 떠나
세입자들보다 더 막막한 건 인근 노점상들이다.
세입자들은 앞으로 이주비용 지원이나 철거대책의 대상이지만,
노점상들은 용역업체에서도 아예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상가 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인근 상인들에게 밥을 파는 김아무개(51)씨는
상가 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인근 상인들에게 밥을 파는 김아무개(51)씨는
3급 척추 장애인이다.
이 자리에서 12년째 밥을 팔아 근근히 지내고 있지만,
몸이 아파 일을 나오지 못할 때도 많다.
천막 식당이라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역시 문을 열지 못한다.
단골들에게는 3500원, 뜨내기들에겐 4000원짜리 백반을 팔아왔는데,
요즘엔 사람들이 많이 떠나 장사가 예전같지 않다.
지난 8월까지 꼬박꼬박 자릿세로 40만원씩을 뜯어가던 ‘건달’들마저
이 동네를 떠났다.
“철거되면 어떻게 하실거냐”는 물음에 김씨는 “파출부라도 나가야 하는데,
몸이 아픈 날이 많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삼일아파트 철거민, 갈 곳 없는 노숙자로 전락해
처지가 막막한 밥장사 김씨지만,
삼일아파트 철거민, 갈 곳 없는 노숙자로 전락해
처지가 막막한 밥장사 김씨지만,
김씨는 자신보다 더 걱정되는 노점상을 가리켰다.
밥 파는 포장마차 바깥으로 한 노인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깡통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인근에서 리어커 노점상을 하는 최아무개(66)씨라고 했다.
최씨는 롯데캐슬 공사장 담벼락에 붙어 수첩을 파는 리어커를 놓고 있었지만,
사실상 노숙자 신세다.
수첩을 파는 좌판은 주변 노점 천막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장사를 사실상 접은 최씨는 그저 주변 상인들의 도움에 기대
좌판 옆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잔다.
주변 상인들은 모두 “올 겨울이 따뜻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얼어 죽었을 것”이라고들 걱정했다.
최씨는 배고픔에 지쳤는지 말을 해도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도 못했다.
이날 오후 2시까지 최씨가 먹은 건 소주 1병과 전날 포장마차에서 얻어놓은
차디찬 돼지곱창 몇 점이 전부였다.
최씨 리어카 옆의 양은 냄비에는 말라비틀어진 곱창 당면 찌꺼기가 붙어있었다.
“황학동에서 장사를 한 지 아주 오래되었다”고만 기억하고 있는 최씨도
“황학동에서 장사를 한 지 아주 오래되었다”고만 기억하고 있는 최씨도
한때는 늙은 노모와 함께 지금 롯데캐슬이 있는 자리의
삼일아파트 3층에 살았다고 했다.
7~8년 전쯤인가 어느 순간 아파트는 철거되고, 노모는 세상을 떠났다.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는 최씨에게 “이곳이 철거되고,
얼마 뒤에는 떠나야 하는 걸 아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어디로 가실 거냐”는 질문엔 기자를 빤히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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