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6일 (월) 16:33 머니투데이
"당신은 SSSS야"… '核風'속 미국 여행기
[머니투데이 이승제기자]-북 핵실험 속 '한국인'의 미국 여행 체험담-
각오는 했지만 더욱 힘겨웠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을 여행하는 것은 극도의 인내와 조심스러움을 요구했다.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그럴수록 허탈한 느낌이었다.
일주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미국 서부와 남부 그리고 동부지역을 거치는 일정 내내 "미국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라는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굴욕과 당혹스러움을 걷어내고 차분히 미국을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외국인을 '유사 테러리스트' 취급
로스앤젤레스(LA) 공항에 입국하던 9일 공교롭게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다. 입국 데스크에서부터 '태클'이 걸렸다. 50대 후반의 입국 심사직원이 "왜 미국에 왔나. LA에서 무엇을 할 예정인가. 그다음 일정은 뭐냐. 언제 미국에 왔었나"는 질문을 연거푸 쏟아냈다. 말하는 도중 "너는 다소 의심스런 사람(suspicious man)으로 보인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후에 뉴욕에 도착해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교민에 이같은 고충을 말했더니 "그래도 이스라엘보다는 덜하다"는 반응이었다. 현대에서 일하던 시절 그는 이스라엘을 업무차 수십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입출국을 아주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설명. 심지어 입출국시 "왜 왔냐. 여행 비용은 누가 지불하냐"는 등 개인적인 물음을 깐깐하게 확인했다고 한다. 일행이 있을 경우 따로 불러 조사한 뒤 앞뒤 내용이 맞지 않으면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정밀 심문을 진행한다는 것. 비행기를 타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즉각적인 억류마저 당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이슬람 세계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쟁을 진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닮아가고 있었다. 모든 외국인을 '가상의 적'으로 규정한 뒤 엄격하게 다루는 정책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미국 CNN 방송은 연일 이번주에 미국 인구가 3억명을 돌파하는 것을 놓고 "melting-pot, meltdown?"이란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인구 확산이 다양한 신념, 생각, 문화 등이 공존하는 상황(melting-pot)으로 이어질 지, 대규모 재앙 혹은 실패(meltdown)로 귀결될 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뉘앙스였다.
미국은 '열린 시스템(open system)'을 통해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강력한 국부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이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옛 로마제국의 성공사례와 비슷하다. 능력에 따라 노예에서 해방노예, 평민을 거쳐 군인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성과에 따라 귀족이 되거나 나아가 원로원 의원이나 속주 총독까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선조가 노예 출신인 황제마저 나올 정도로 로마는 열려 있었다. 미국 역시 능력에 따른 신분상승, 이민족의 포용(이민 유도 및 확대)으로 승승장구했으나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의 '폐쇄된 시스템(colsed system)'으로 선회하는 느낌이었다.
향후 이민 정책의 초점을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라는 인상이다.
# 'SSSS'..."바쁘다 바뻐"
LA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애틀란타 공항을 거쳐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이 있는 몽고메리시로 향했다. LA 국제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하려 할 때 직원들이 내 항공 티켓에 있는 'SSSS' 표시에 연거푸 표시를 했다.
나중에 친절한 몽고메리 공항의 한 중년 여직원을 통해 알게 됐지만 이 표시는 검색(inspection) 정도를 표시하는 것으로, SSSS는 '특별 관리 대상'에 속했다. 모든 짐과 소지품을 까다롭게 봐야 하는 등급이었다.
액체(향수 등)가 담겨 있는 짐을 붙인 뒤 노트북 가방을 둘러매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과정은 늘 불쾌했다. 신발을 벗고 더러운 바닥(따로 발을 둘 깨끗한 장소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을 걸어야 하고 허리띠도 풀어야 한다.
또 그다지 친절하지 않는 검색 요원이 일일이 손으로 몸을 샅샅이 훑도록 허용해야 한다. 앨라배마 공장의 한 직원이 말했듯 이는 예외가 없었다. 얼마전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을 방문했던 건설교통부 한 국장도 이같은 곤욕을 치르며 여행했다고 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앨라배마 공장을 취재한 뒤 비행기 일정에 맞춰 서둘러 몽고메리 공항을 거쳐 애틀란타 공항으로 향했다. 두 공항에서도 계속해서 "국토안보부(Homeland Security)의 요구에 따라 모든 짐을 검색하기 때문에 출발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해해 달라"는 공항 방송이 끊이지 않았다.
애틀란타 공항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애틀란타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 표를 끊어야 하고 다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짐을 비행기가 착륙한 지 1시간이 넘어서야 수하물 찾는 곳(baggage claim)에서 짐이 나왔다. 시간을 보니 이미 뉴욕 JFK공항행 비행기 탑승시간에 다가서 있었다. 서둘러 티켓을 끊고 뛸 수밖에 없었다.
애틀란타 공항의 검색요원들은 거인국 출신처럼 보였다. 키가 180cm인 나를 어린아이처럼 느끼게 할 만큼 큰 흑인들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싸구려 취급'했다. 언뜻 2미터가 훨씬 넘는 흑인이 몸을 샅샅이 훑은 뒤 "협조해줘서 고맙다"는 말조차 덧붙이지 않았다.
짜증날 겨를도 없이 시간이 촉박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당연히 비행기 이륙은 지연되고 있었고 뛸 필요가 없었다. 모든 비행기들의 지연이 이 경우에는 도움이 됐다.
JFK공항에 도착했는데도 비행기는 꼼짝하지 않고 있다. 기장은 계속해서 "검색 등으로 지연되고 있으니 기내에서 대기해 달라"는 협조요청을 내보낸다. 무려 1시간 30분 가까이 기내에서 머물렀다.
1시간이 넘어서자 약속 등으로 초조해진 사람들이 휴대폰을 눌러댄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익숙한 모습이었다. 가까스로 11시가 넘어 예약한 호텔에 도착한 뒤 주변에서 이날 첫 식사를 때우면서 느낀 감정은 허탈감이었다.
물류 시스템과 능력은 그 국가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잣대 중 하나다. 비행기를 타는 이유는 빠르기 때문. 하지만 미국은 안보를 위해 지금 이것을 희생하고 있다. 시간과 돈 그리고 무엇보다 의욕을 꺽고 있는 것 같았다.
#정체없는 공포...통제냐 생존이냐
미국의 저명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마이클 무어는 2002년 기념비적인 작품인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에서 미국인들의 허상을 낱낱이 짚어냈다. 서부개척시대를 상징되듯 미국인 사이에 자부심으로 되고 있는 개척정신이 사라지고 그 빈 자리에 공허하고 이유없는 폭력, 그리고 그 폭력에 대한 끝모를 두려움이 미국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적시했다.
9.11 테러는 무어 감독이 지적한 바로 그 약점을 극대화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다. 극단적인 폭력에 대한 지향과 이의 반대급부로 가질 수밖에 없는 '극도의 가상 공포'… 9.11 테러는 미국 본토를 향해, 그것도 자본시장의 핵심인 뉴욕 맨하탄에 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일시에 무너뜨렸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 자존심의 훼손 그 이상인 듯 했다. 실제 생활 곳곳에서 끊임없이 공포를 느끼는 기폭제가 됐다고 할까.
하지만 어이없게도 뉴욕에 도착했을 때 뉴욕 양키즈 소속 투수가 탄 경비행기가 아무런 제재없이 저공비행을 하다 맨하탄의 한 빌딩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그 상징성 때문에 CNN 방송에서 북핵 사건을 제치고 하루동안 톱 뉴스에 올랐다.
비행기 충돌 후 일어나는 화염은 비록 그 규모는 작았지만 미국인들에 9.11 공포를 떠올리게 한 듯 했다. 하지만 다시금 궁금했다. "아직도 그렇게 방공망이 허술한가"라는 의문이었다. CNN은 끝내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고 사고 원인 규명과 테러 공포 확산에만 연연했다.
북핵 실험에 대한 뉴욕 시민들의 반응은 입장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이스라엘 출신의 한 택시기사(이 기사는 자랑스럽게 이스라엘 국기를 운전석 옆에 걸어놓고 있었다)는 "북한은 미친 집단이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이집트 출신의 택시기사는 "북한과 남한이 통일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북한이 미국에 '슈융' 한방 날렸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상했지만 출국은 간단했다. 자국을 빠져나가는 사람에 대한 검색절차는 손쉬웠다. 검색요원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대충 "어서 가라"는 눈치다. LA에 도착해 열어본 짐가방은 철저한 해부를 연상케 할 만큼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 도착해 가방을 열어보니 아무런 흔적없이 원래 모습 그대로다. "뭐 이런 이기주의가 있나"는 느낌이 스쳐갔다. 그래도 LA에 도착한 가방은 원래 내용물을 담고 있긴 했었다. 몽고메리에서 뉴욕으로 오는 도중에 내 옷가지 중 하나가 사라졌다.
가격이 비싸지 않은 민소매 옷이었는데, 아마도 철저한 검색 도중 누군가의 손에서 사라진 모양이다. 사라진 내 민소매 옷은 미국 어딘가에서 누구의 몸을 보호하고 있을까.
이승제기자 openeye@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각오는 했지만 더욱 힘겨웠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을 여행하는 것은 극도의 인내와 조심스러움을 요구했다.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그럴수록 허탈한 느낌이었다.
일주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미국 서부와 남부 그리고 동부지역을 거치는 일정 내내 "미국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라는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굴욕과 당혹스러움을 걷어내고 차분히 미국을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외국인을 '유사 테러리스트' 취급
로스앤젤레스(LA) 공항에 입국하던 9일 공교롭게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다. 입국 데스크에서부터 '태클'이 걸렸다. 50대 후반의 입국 심사직원이 "왜 미국에 왔나. LA에서 무엇을 할 예정인가. 그다음 일정은 뭐냐. 언제 미국에 왔었나"는 질문을 연거푸 쏟아냈다. 말하는 도중 "너는 다소 의심스런 사람(suspicious man)으로 보인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후에 뉴욕에 도착해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교민에 이같은 고충을 말했더니 "그래도 이스라엘보다는 덜하다"는 반응이었다. 현대에서 일하던 시절 그는 이스라엘을 업무차 수십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입출국을 아주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설명. 심지어 입출국시 "왜 왔냐. 여행 비용은 누가 지불하냐"는 등 개인적인 물음을 깐깐하게 확인했다고 한다. 일행이 있을 경우 따로 불러 조사한 뒤 앞뒤 내용이 맞지 않으면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정밀 심문을 진행한다는 것. 비행기를 타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즉각적인 억류마저 당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이슬람 세계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쟁을 진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닮아가고 있었다. 모든 외국인을 '가상의 적'으로 규정한 뒤 엄격하게 다루는 정책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미국 CNN 방송은 연일 이번주에 미국 인구가 3억명을 돌파하는 것을 놓고 "melting-pot, meltdown?"이란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인구 확산이 다양한 신념, 생각, 문화 등이 공존하는 상황(melting-pot)으로 이어질 지, 대규모 재앙 혹은 실패(meltdown)로 귀결될 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뉘앙스였다.
미국은 '열린 시스템(open system)'을 통해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강력한 국부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이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옛 로마제국의 성공사례와 비슷하다. 능력에 따라 노예에서 해방노예, 평민을 거쳐 군인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성과에 따라 귀족이 되거나 나아가 원로원 의원이나 속주 총독까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선조가 노예 출신인 황제마저 나올 정도로 로마는 열려 있었다. 미국 역시 능력에 따른 신분상승, 이민족의 포용(이민 유도 및 확대)으로 승승장구했으나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의 '폐쇄된 시스템(colsed system)'으로 선회하는 느낌이었다.
향후 이민 정책의 초점을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라는 인상이다.
# 'SSSS'..."바쁘다 바뻐"
LA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애틀란타 공항을 거쳐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이 있는 몽고메리시로 향했다. LA 국제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하려 할 때 직원들이 내 항공 티켓에 있는 'SSSS' 표시에 연거푸 표시를 했다.
나중에 친절한 몽고메리 공항의 한 중년 여직원을 통해 알게 됐지만 이 표시는 검색(inspection) 정도를 표시하는 것으로, SSSS는 '특별 관리 대상'에 속했다. 모든 짐과 소지품을 까다롭게 봐야 하는 등급이었다.
액체(향수 등)가 담겨 있는 짐을 붙인 뒤 노트북 가방을 둘러매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과정은 늘 불쾌했다. 신발을 벗고 더러운 바닥(따로 발을 둘 깨끗한 장소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을 걸어야 하고 허리띠도 풀어야 한다.
또 그다지 친절하지 않는 검색 요원이 일일이 손으로 몸을 샅샅이 훑도록 허용해야 한다. 앨라배마 공장의 한 직원이 말했듯 이는 예외가 없었다. 얼마전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을 방문했던 건설교통부 한 국장도 이같은 곤욕을 치르며 여행했다고 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앨라배마 공장을 취재한 뒤 비행기 일정에 맞춰 서둘러 몽고메리 공항을 거쳐 애틀란타 공항으로 향했다. 두 공항에서도 계속해서 "국토안보부(Homeland Security)의 요구에 따라 모든 짐을 검색하기 때문에 출발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해해 달라"는 공항 방송이 끊이지 않았다.
애틀란타 공항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애틀란타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 표를 끊어야 하고 다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짐을 비행기가 착륙한 지 1시간이 넘어서야 수하물 찾는 곳(baggage claim)에서 짐이 나왔다. 시간을 보니 이미 뉴욕 JFK공항행 비행기 탑승시간에 다가서 있었다. 서둘러 티켓을 끊고 뛸 수밖에 없었다.
애틀란타 공항의 검색요원들은 거인국 출신처럼 보였다. 키가 180cm인 나를 어린아이처럼 느끼게 할 만큼 큰 흑인들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싸구려 취급'했다. 언뜻 2미터가 훨씬 넘는 흑인이 몸을 샅샅이 훑은 뒤 "협조해줘서 고맙다"는 말조차 덧붙이지 않았다.
짜증날 겨를도 없이 시간이 촉박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당연히 비행기 이륙은 지연되고 있었고 뛸 필요가 없었다. 모든 비행기들의 지연이 이 경우에는 도움이 됐다.
JFK공항에 도착했는데도 비행기는 꼼짝하지 않고 있다. 기장은 계속해서 "검색 등으로 지연되고 있으니 기내에서 대기해 달라"는 협조요청을 내보낸다. 무려 1시간 30분 가까이 기내에서 머물렀다.
1시간이 넘어서자 약속 등으로 초조해진 사람들이 휴대폰을 눌러댄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익숙한 모습이었다. 가까스로 11시가 넘어 예약한 호텔에 도착한 뒤 주변에서 이날 첫 식사를 때우면서 느낀 감정은 허탈감이었다.
물류 시스템과 능력은 그 국가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잣대 중 하나다. 비행기를 타는 이유는 빠르기 때문. 하지만 미국은 안보를 위해 지금 이것을 희생하고 있다. 시간과 돈 그리고 무엇보다 의욕을 꺽고 있는 것 같았다.
#정체없는 공포...통제냐 생존이냐
미국의 저명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마이클 무어는 2002년 기념비적인 작품인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에서 미국인들의 허상을 낱낱이 짚어냈다. 서부개척시대를 상징되듯 미국인 사이에 자부심으로 되고 있는 개척정신이 사라지고 그 빈 자리에 공허하고 이유없는 폭력, 그리고 그 폭력에 대한 끝모를 두려움이 미국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적시했다.
9.11 테러는 무어 감독이 지적한 바로 그 약점을 극대화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다. 극단적인 폭력에 대한 지향과 이의 반대급부로 가질 수밖에 없는 '극도의 가상 공포'… 9.11 테러는 미국 본토를 향해, 그것도 자본시장의 핵심인 뉴욕 맨하탄에 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일시에 무너뜨렸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 자존심의 훼손 그 이상인 듯 했다. 실제 생활 곳곳에서 끊임없이 공포를 느끼는 기폭제가 됐다고 할까.
하지만 어이없게도 뉴욕에 도착했을 때 뉴욕 양키즈 소속 투수가 탄 경비행기가 아무런 제재없이 저공비행을 하다 맨하탄의 한 빌딩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그 상징성 때문에 CNN 방송에서 북핵 사건을 제치고 하루동안 톱 뉴스에 올랐다.
비행기 충돌 후 일어나는 화염은 비록 그 규모는 작았지만 미국인들에 9.11 공포를 떠올리게 한 듯 했다. 하지만 다시금 궁금했다. "아직도 그렇게 방공망이 허술한가"라는 의문이었다. CNN은 끝내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고 사고 원인 규명과 테러 공포 확산에만 연연했다.
북핵 실험에 대한 뉴욕 시민들의 반응은 입장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이스라엘 출신의 한 택시기사(이 기사는 자랑스럽게 이스라엘 국기를 운전석 옆에 걸어놓고 있었다)는 "북한은 미친 집단이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이집트 출신의 택시기사는 "북한과 남한이 통일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북한이 미국에 '슈융' 한방 날렸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상했지만 출국은 간단했다. 자국을 빠져나가는 사람에 대한 검색절차는 손쉬웠다. 검색요원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대충 "어서 가라"는 눈치다. LA에 도착해 열어본 짐가방은 철저한 해부를 연상케 할 만큼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 도착해 가방을 열어보니 아무런 흔적없이 원래 모습 그대로다. "뭐 이런 이기주의가 있나"는 느낌이 스쳐갔다. 그래도 LA에 도착한 가방은 원래 내용물을 담고 있긴 했었다. 몽고메리에서 뉴욕으로 오는 도중에 내 옷가지 중 하나가 사라졌다.
가격이 비싸지 않은 민소매 옷이었는데, 아마도 철저한 검색 도중 누군가의 손에서 사라진 모양이다. 사라진 내 민소매 옷은 미국 어딘가에서 누구의 몸을 보호하고 있을까.
이승제기자 openeye@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시사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성공단 외.. (0) | 2006.10.18 |
---|---|
금강산 관광 ? (0) | 2006.10.18 |
<안보리결의> 北은... (0) | 2006.10.15 |
대북제재 '사치품 금수' (0) | 2006.10.15 |
북핵, 초라한 성공? (0) | 2006.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