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적 고기압'의 습격, 무더위의 쉼표마저 지웠다
한겨레 입력 2016.08.21. 19:16
[미래] 왜 올해가 94년보다 덥게 느껴지나
올해 살인적 무더위의 주범은
‘단골손님’ 북태평양고기압 말고도
중국에서 세를 키운 ‘열적 고기압’
1994년 폭염 기록은 ‘넘사벽’이지만
올해 더 더운 건 냉방도일 누적 때문
태풍 없는 무더위도 체감지수 높여
폭염일수도, 열대야도 1994년보다 적다.
그런데 사람들은 올해 덥다고 아우성이다.
과학적 수치와 체감도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전국 기상관측 지점 93곳에서 기록된 7월과 8월
일 최고기온 월별 극값(가장 높은 값) 1~5위 가운데
1994년에 기록이 세워진 경우는 전체 465개 중 213개에 이른다.
지금 시점으로 보면 절반 가까이가 그해에 기록이 바뀐 듯 보이지만,
현재 순위에서 94년 이전의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거의 모든 기록이 그해에 바뀐 셈이다.
전국 평균 폭염일수 31.1일, 열대야 일수 14.4일의 대기록이 그해 여름에 세워졌다.
1994년과 비교하면 올해는 무더위를 더 덥게 느끼게 될 만한 요소가 더 많았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에서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뜨거운 공기로 샌드위치 된 한반도
‘최악의 무더위’라는 올해는 어땠을까?
94년에는 훨씬 못 미쳐 지난 17일 현재 102개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데 그쳤다.
그런데 7월과 8월을 나눠보면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1994년에는 7월에 205개의 기록을 새로 쓴 반면 8월에 경신된 기록은 단 8개에 그쳤다.
올해는 8월에 86개로 월등히 많지만 7월 말께 세워진 기록도 16개에 이른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지난해,
1994년의 이른 7월 폭염과 8월 혹서가 겹친다면 ‘폭염겟돈’이 닥쳐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았다.
올해의 폭염은 재난연구원이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에 근접하는 양상을 보였다.
2016년 폭염은 지표상으로는 1994년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서울 기준으로 7월1일부터 8월20일까지
일 평균기온(1994년 28.7도 대 2016년 27.6도),
일 최고기온(32.8도 대 31.6도),
일 최저기온(25.5도 대 24.4도),
일 최고기온 최고(38.4도 대 36.6도),
일 최저기온 최고(28.8도 대 27.3도) 등 1994년에 모든 값이 더 컸다.
올해 폭염일수는 8월20일 현재 21일로 1994년 28일보다 7일이 적고,
열대야 일수도 21일 현재 29일로 94년 36일보다 7일이 적다.
폭염 지속일수는 14일 대 11일, 열대야 지속일수도 24일 대 14일로 94년의 상황이 훨씬 나빴다.
그럼에도 왜 올해가 더 덥게 느껴지는 걸까?
우선 1994년 폭염에는 북태평양고기압만 작용했지만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에 대륙의 열적 고기압이라는 두 엔진이
동시에 가동된 데서 원인이 찾아진다.
북태평양고기압은
미국 하와이 동북쪽 태평양 중위도 부근에 중심을 둔 고온다습한 해양성 열대기단(mt)이다.
적도에서 가열돼 상승한 공기가 아열대 바다지역에서 가라앉으면서 기압이 높아져 고기압이 형성된다.
여름에 세력이 확장돼 우리나라 쪽으로 접근하면 가장자리를 따라 장마전선이 형성됐다가
7월 말께 한반도를 완전히 덮으면 장마가 끝나고 찜통더위가 시작된다.
94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일찍 발달해 장마가 일찍 끝난데다
제6호 태풍 ‘바네사’가 북상해 중국 화북지방에서 소멸하면서 따뜻한 공기를 끌어올리는 효과까지 겹쳐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북태평양고기압 중심은 평년에는 북위 30~35도 부근에 머무는데
이해에는 한반도의 중심부인 북위 40도 부근에서 오랫동안 똬리를 틀었다.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다른 경로를 보였다.
7월 말께 동서로 길게 확장하면서 중국 북부지방까지 걸쳐져 정체전선이 베이징 근처에 머물며
하루 사이 연 강수량의 70~80%에 이르는 경이로운 폭우를 쏟아냈다.
이런 상황은 북태평양고기압 영향 아래 들어간 중국 동북부 지방이 일사로
평년보다 5도 높게 달궈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가열된 공기는 상승하면서 대륙의 열적 고기압(cT·대륙성 열대기단)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평상시 이 고기압은 양쯔강 유역에 머무는 작은 크기로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올해는 5㎞ 이상의 상공에 이르는 키 큰 고기압으로 자랐다.
이 뜨거운 고기압이 북상하면서 더욱 세력을 키운 상태에서 동진해
8월 초순부터 우리나라 상공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더욱이 베링해에서 캄차카반도까지 블로킹 고기압이 자리잡아
열적 고기압이 더 이상 동쪽으로 움직이지 못해 폭염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김용진 기상청 통보관은
“한반도 상층에는 이 열적 고기압이 고온건조한 공기를,
하층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고온다습한 공기를 끊임없이 공급해 ‘잠 못 이루는 밤’을
연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8월 냉방도일 94년보다 높아
냉방도일(Cooling Degree Day)도 올해 폭염이 1994년과 달리 느껴지는 차이의 단서를 제공한다.
냉방도일은 건물을 냉방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반영하기 위한 지표로,
특정 기간에 기준온도와 외부기온(일 평균기온) 사이의 온도차의 합을 말한다.
기준온도는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냉방장치를 가동할 필요가 없는 기온이다.
나라와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4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1994년과 올해 7월과 8월의 월별 냉방도일을 구해보면,
7월은 142.4도일 대 80도일로 94년이 월등히 높은 반면 8월에는 97.1도일 대 114.1도일로
올해가 높게 나온다.
특히 날짜별 냉방도일을 보면
94년에는 값이 크게 떨어지는 때가 종종 있는 반면 올해는 거의 일정한 수준이 유지되며
특히 8월 들어서는 상당히 높은 값이 지속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94년에는 7월26일부터 제7호 태풍 ‘월트’의 영향으로 폭염이 일시 종료됐고,
8월 들어서도 제11호 태풍 ‘브렌던’(7월31일께), 제13호 ‘더그’(8월9일께),
제14호 ‘엘리’(8월15일께)의 직간접 영향으로 폭염 행진이 일시적으로 끊겼다.
반면 올해는 고온건조한 대륙 열적 고기압 영향으로 폭염이 발생하면서
구름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불볕더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효자태풍’도 한번도 오지 않았다.
올해 평균습도(70.0%)가 94년(77.5%)에 비해 낮아 덜 후텁지근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신종환 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더위를 크게 느끼는 것은 온열 스트레스가 몸에 누적되기 때문이다.
올해 온열환자뿐만 아니라 기력이 떨어진 노인 환자들이 많아진 건
폭염 피로의 누적기간이 길어져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03년 1만5천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프랑스의 폭염사태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더운 날이 연속으로 계속될 경우 후반으로 갈수록 열 관련 질환자가 더욱 많아진다.
질병관리본부의 온열질환감시체계 보고를 봐도
7월 마지막 주에는 온열환자가 268명 발생했으나
8월 첫째 주에는 337명, 둘째 주 547명으로 급증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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