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월세만 남긴 채..벼랑끝 세모녀의 비극
한겨레 입력 2014.02.27 21:50 수정 2014.02.27 23:20
송파 반지하방서 동반자살
주인에 "정말 죄송"…70만원 봉투담아
30대 두딸 '신불자'…큰딸은 병까지
남편은 12년전 암으로 떠나
한달전 다쳐 식당일마저 끊겨
하얀 봉투엔 5만원짜리 14장이 들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그들은 '미안하다'고 봉투에 적었다.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은 돈봉투를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박아무개(61)씨와 큰딸 김아무개(36)씨, 작은딸(33)이 숨진 채 발견된 건 26일 저녁 8시30분께였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 딸린 반지하집이었다.
27일 오후 <한겨레> 기자가 찾아간 이들의 집은 33㎡(10평) 남짓했다.
방 2개와 주방이 전부였다.
큰방은 세 모녀가 숨을 거둔 이불 두채와 작은 침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이들에게 몸을 비볐을 작은 고양이 한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숨져 있었다.
허름한 방 한쪽 벽에 걸린 액자 속 사진은 이들의 단란한 한때를 떠올리게 했다.
12년 전 방광암으로 숨진 박씨의 남편과 세 모녀는 가족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이들은 2005년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8만원이었다.
큰딸은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렸고,
작은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불안한 일자리를 떠돌았다.
큰딸의 수첩에는 1년 전부터 당뇨 수치가 기록돼 있었다.
경찰은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고 약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롯이 박씨의 식당일로 생계를 꾸렸다.
두 딸은 신용불량자여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세 모녀의 비극은 박씨가 1월 말께 넘어져 오른팔을 다치면서 비롯됐다.
이들이 떠나버린 집엔 박씨가 썼던 '석고붕대 팔걸이'가 걸려 있었다.
박씨는 팔에 깁스를 하고 나서 식당일을 나가지 못했다.
큰방과 맞붙은 폭 1m가량의 좁은 주방에는 먹다 남은 밥이 놓여 있었다.
주전자 등 세간 살림도, 이들의 마지막 절망을 보여주듯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이들이 삶을 마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 20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에서 발견된 영수증에는 20일 600원짜리 번개탄 2개와 1500원짜리 숯,
20원짜리 편지봉투를 산 기록이 남아 있었다.
번개탄은 간이침대 밑 냄비 속에서 재가 돼버렸고
숯은 싱크대 위에 봉투도 뜯기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봉투는 70만원이 담긴 채 큰방 서랍장 위에 놓여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50만원으로 오른 이달치 방세와 가스비 12만9000원, 전기세·수도세 등을
어림한 돈이었다.
집주인 임아무개(73)씨는
"이번달 전기요금이 얼마인지 알려주려고 일주일 전부터 찾아갔지만 인기척이 없었다"고 했다.
이들의 죽음은,
임씨가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문과 창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어
경찰에 신고"하면서 발견됐다.
집주인 임씨는
"모녀가 조용한 편이라 교류가 없었고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9년 동안 한번도 없었다"고 전했다.
자매의 외삼촌은
"가끔 전화를 하면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세 모녀는 정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박씨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수급 신청을 한 기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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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랜 시간 울었을까" 세 모녀 자살 소식에 애도 물결
한겨레 입력 2014.02.28 12:00 수정 2014.02.28 14:50
자살 아닌 '사회적 타살'…약자에 관심 가져야
"나만 잘 산다고 다인가? 부끄럽다" 자성 목소리도
"이래도 복지가 포퓰리즘인가?"…정부 비판도 잇따라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생활고를 비난해 세상을 등진 세 모녀의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에서는 세 모녀를 지켜주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간 현실을 비판하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세 모녀가 비극적 선택을 한 순간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
닉네임 아****는 <한겨레> 기사에
"결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세 모녀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울었을까"라고 물으며
"가난과 병이 없는 천국에서 행복하시길 빈다"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누리꾼(닉네임 봄***)도
"얼마나 암담했으면 저 길을 갔을까. 아마 우는 상태로 엄마는 딸들을 생각하며, 딸들은 노모를 생각하며,
서로는 서로를 생각하며 그렇게 울음소리 죽여가며 울었을 것이다. 눈물이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댓글을 남겼다.
닉네임 즐***의 누리꾼은
"우리 사회가 밖에 나가면 전부 웃고 떠드는 것 같지만 정작 어려운 분들은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춥고 배고픔을 달래고 있을 것"이라며 "부디 주위를 돌아보는 따듯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세 모녀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na*****)이라며 공분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세 모녀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때까지 사회와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au*******)는 것이다.
한 누리꾼(닉네임 알****)은
"의료 민영화에 부동산 활성화, 공공요금 상승…공영방송비도 오른다며? 어짜피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나라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시기만 다를 뿐 우리의 미래 모습"이라고 탄식했다.
다른 누리꾼((@in******)도
"다수가 늘 미안함을 갖고, 잠재적 가해자처럼 살아가게 하는 사회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다"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아이디 @zz*****의 트위터리안은
"나만 잘 산다고 잘 살아지나? 내 옆에서 누군가 가난에 굶주려가고 있는데…"라며 "부끄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팔을 다친 것이 죽음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을 지적하며
"그런데 의료 민영화(라니…). ㅠㅠ"(@na*****)라는 반응들이 많았다.
누리꾼들은
"이러고도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떠들거냐?"(@bu*****)며 "더는 죽음으로 내몰지 마라"(@ki*******),
"기본적인 건 정부에서 좀 하라"(닉네임 9입******)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서울 송파구의 반지하집에서 월세와 공과금 70만원이 든 봉투에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적어 놓고
동반 자살한 사실이 27일 알려졌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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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지대의 비극.. 정부는 '부정수급 찾기'만 바빠
한겨레 입력 2014.02.28 20:20
식당일 박씨, 기초수급 신청 않고
신청했어도 안됐을 가능성 커
실직 뒤엔 긴급지원도 못 받아
"정부, 소극적 복지 벗어나
빈곤층 발굴 등 적극 나서야"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겨두고 함께 목숨을 끊은 '세 모녀의 비극'을 두고,
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긴 사각지대가 이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8일 경찰과 서울 송파구 등의 말을 종합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아무개(61)씨 모녀는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의료급여제도 등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용하는 사회보장체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저소득층에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복지제도이고,
의료급여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이다.
여러 사정을 볼 때
박씨 모녀는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보증금 500만원의 월셋방에 살았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때 적용하는 재산환산액은 0원이지만,
식당일을 전일제로 계속했을 경우 월 150만원 이상을 벌었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수급 대상자 선정 기준인 3인 가족 최저생계비(132만9118원)를 넘는다.
따라서 박씨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 정도로 가난에 치였지만,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씨의 경우 지난달 팔을 다쳐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자체가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이들에게 적용하는 긴급지원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만약 박씨가 이 제도를 알았고, 송파구가 이 제도에 따라 지원을 했다면
이번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긴급지원은 연락이 두절된 가족의 소득 등으로 인해 기초수급자 자격에서 벗어나거나
갑작스러운 실직 등으로 생활고에 빠진 취약계층을 발굴해 지원하는 복지제도이지만
송파구는 세 모녀의 존재를 몰랐다.
홍순화 송파구 복지정책과장은
"동 주민센터나 구청 상담기록이 전혀 없어 이들이 생계 곤란 처지에 놓인 것을 알 수 없었다.
지난겨울 공과금 체납 가구 조사에서 128가구에 3000만원을 지원했는데,
이분들은 체납한 적이 없어 빠졌다. 끝까지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죽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신청주의'로 수급 대상자가 신청을 하지 않으면 권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런 신청주의 탓에
소극적 권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정부가 이런 제도로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홍보를 더 적극적으로 하고,
수급자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빈곤사회연대 등은 이날 낸 성명에서
"가장 일선에서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읍·면·동의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은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 쏠림 현상으로 인해 1인당 수백명의 수급자를 담당하고 있어,
아웃리치를 통한 적극적 사각지대 발굴이나 현장 조사는 꿈꾸기 힘든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이래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을 가동하면서
'복지 사각지대 해소'보다는
'부정수급자 색출'에 치중하는 등 거꾸로 가는 복지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는 매년 줄고 부정수급 적발 건수는 늘고 있다.
2010년 155만여명이던 기초생활수급자는 지난해 135만1000여명으로 줄었고,
부정수급 적발은 2010년 2759가구에서 지난해 1만222가구로 급증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주장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부정수급자를 적발하는 것보다
사각지대의 빈곤층을 찾아내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준현 정태우 기자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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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800만명, 기초수급 140만명..최소한 삶 보장되는 제도 만들라"
한겨레 입력 2014.02.28 20:20 수정 2014.02.28 21:00
'복지 확대' 번지는 목소리
시민사회와 종교계, 정치권이 일제히 '세 모녀의 비극'을 애도하며 정부의 전면적인 '복지 확대'를 촉구했다.
전국빈민연합, 빈곤사회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28일 공동성명을 통해
"800만명의 빈곤인구 중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140만명이 채 되지 않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정 과제의 일환으로 부정수급 근절을 들고 있다.
정부는 부정수급 색출이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세 모녀는 혹여 폐가 될까 남에게 앓는 소리 한번 못 하던 이들이었다고 한다.
복지수급의 권리조차 '폐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이들을 생각하면
빈곤층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이 정부에 배신감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논평을 내어
"우리는 세계 최악의 자살률과 세계 꼴찌 수준의 출산율 앞에서
우리 국민들 모두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주요 민생대책과 관련된 공약을
줄줄이 파기하거나 후퇴시켰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3일 오후 이번 사건과 관련된 긴급 좌담회를 열기로 했다.
불교 조계종 노동위원회도 논평을 내어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는 제도를 시급히 마련하지 않으면 이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기초연금·장애인연금 현실화, 중증 환자 의료보험과 노동력 상실자의 복지 확대 등의
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야당도 '복지 확대'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날로 커지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정부는 하루빨리 저소득층에 대한 생계지원책과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진보당은
"대통령이 취임 1년 담화에서 '경제성장'만을 외칠 때,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절실했던 우리의 이웃은
조용히 죽음을 택했다"고 꼬집었다.
송호균 김효진 기자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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