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천사
춤이 오늘날 대중화되기까지 여러 가지 수난사들이 있습니다.
춤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성적인 욕구와 연결된 것 같다는 시각 때문입니다.
키케로는
“건전한 사람이라면 정신이 나갔다면 몰라도, 혼자 있을 때나 품위 있는 사교장에서나 결코 춤을 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춤을 춘다는 것은 무절제한 환락과 방종, 사치와 벗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어떤 춤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을지는 몰라도 그 당시에는 춤은 무희가 주로 췄을 것입니다.
무희는 연회장에서나 볼 수 있고 무희들은 고혹적인 춤을 췄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적당히 술이 올라 탐욕적인 시선으로 무희들을 바라 봤을 것이므로
거기서 절제하지 못하면 무절제한 환락과 방종, 사치로 치부했을 수 있습니다.
무희의 사회적인 지위가 높지 않을 때였으므로 춤에 대한 시각 또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커플댄스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은 프랑스라고 하는데
1200년경 프로방스 지방에서 춘 파랑돌 춤은 여럿이 줄지어 있다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추는 춤이라고 합니다.
커플댄스의 등장이야 말로 본격적인 스킨십의 문제를 낳았습니다.
중세에 궁정에서 유행했던 미뉴에트는 대표적인 점잖은 춤이었는데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왈츠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미뉴에트가 너무 따분한 춤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너무 따분한 춤은 금방 식상해 해서 계속해서 좀 더 성적으로 자극적인 춤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1700년 경 왈츠가 처음 유행할 때도 남녀가 둘이 붙잡고 추는 형태를 보고 사회적이 논란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 남녀가 유별하던 시대에는 키케로가 생각한 대로
제 정신 아닌 사람들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농촌처녀 안나 슐레자코바가 폴카를 처음 만들어 췄을 때도
‘미치광이 타타르인이 추는 지그춤의 일종’이라며 비판했지만 점차 사람들이 즐기자 일반화 되었다고 합니다.
소련 수상 흐루시쵸프도 처음 무희들이 치마를 걷어 올리며 다리를 드는 캉캉 춤을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무절제한 환락과 방종으로 치부하며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캉캉 춤은 그런 특성 덕분에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춤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춤의 변천사를 보면 처음에 춤이 만들어질 때는 어떤 한 사람, 또는 집단이 추는 춤을 보고
추종자들이 그것을 흉내 내서 퍼져 나가면 사회적으로 비판이 쏟아지고는 했습니다.
그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춤을 즐기게 되면 일반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춤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댄스스포츠는 이미 건전한 운동이자 예술이면서 여러 사람이 즐기는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Copyrights ⓒ캉캉(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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