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관

<스티브 잡스 사망> 잡스와 게이츠의 30년 인연

기산(箕山) 2011. 10. 7. 02:11

<스티브 잡스 사망> 잡스와 게이츠의 30년 인연

 

                                                                          연합뉴스 | 권훈 | 입력 2011.10.07 01:13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권 훈 특파원

 

6일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보여주는 사진 특집면을 꾸몄다.

사진 11장 가운데 1991년 젊은 시절 잡스와 빌 게이츠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사진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커다랗게 자리를 잡았다.

이 한장의 사진은 인류를 새로운 지평으로 이끈

1955년 동갑내기 IT 천재 두명의 30년 인연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IT 업계의 두 거인은 20대 초반부터 30년이 넘는 인연을 이어왔다.

둘 사이는 한때 협력자였고 한때는 경쟁자였다. 친구이기도 했지만 라이벌이기도 했다.

공통점도 많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기도 했다.

둘은 같은 미국 서부 해안 도시 출신이다.

게이츠는 워싱턴주 시애틀, 잡스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도중에 그만두고 IT 회사를 창업한 것도 똑같다.

하버드대를 중퇴한 게이츠가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설립했고

리드대를 뛰쳐 나온 잡스는 1976년 애플컴퓨터를 창립했다.

게이츠가 윈도라는 소프트웨어로 세상을 바꿨다면

잡스는 아이팟,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를 앞세워 모바일 혁명을 이끌었다.

둘의 인연은 친구이자 동업자로 시작됐다.

잡스가 개발한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에 깔린 소프트웨어는 게이츠의 작품이었다.

둘이 손을 잡은 매킨토시는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둘의 동반자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게이츠가 윈도를 만들어내자 매킨토시는 '주류'에서 밀려났다.

둘의 관계는 이후 치열한 경쟁자로 바뀐다.

잡스는 천재적 발상과 아이디어, 혁신에 대한 열정에서는 앞섰지만

게이츠는 마케팅과 상용화에서 늘 한걸음 앞에 있었다.

게이츠가 사내외에서 제휴와 협력을 통한 시너지를 추구한 반면

잡스는 자기만의 세계관과 영감을 고집한 결과였다.

사업에서는 게이츠가 고속도로를 달렸다면

잡스는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를 달린 꼴이었다.

이런 둘은 종종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이며 대립했다.

1985년 게이츠는

"(잡스의 고집 때문에) 애플은 다른 회사와 협력이 어렵다"며

"IT 분야에서 협업이 아주 중요한데 내가 (잡스보다) 낫다"고 꼬집었다.

애플에서 쫓겨나 넥스트스텝이라는 회사를 차린 잡스는

1989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우리의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고 게이츠를 원망하더니

1993년에는 게이츠를 '무덤 속의 부자'라고 비난했다.

잡스는 MS의 간판 상품 윈도를 '3류'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20년간 경쟁은 게이츠의 완승이었다.
하지만 둘의 경쟁 구도는 아이팟을 내놓으면서 잡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모바일 생태계 구축'이라는 천재적 발상을 앞세운 잡스의 반격은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애플은 MS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세계에서 가장 시장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올라섰다.
잡스 천하가 도래한 것이다.

반면 2008년 MS 경영권을 내놓고 은퇴한 게이츠는 IT 업계에서 존재감을 잃다시피했다.
그러나 잡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둘의 애증어린 30년 경쟁도 막을 내렸다.

게이츠는

"그와 함께 했던 세월은 미치도록 훌륭하게 명예스러운 일이었다"면서

"동료이자 경쟁자 그리고 친구로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냈다"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kh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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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맞선 도전의 삶…"늘 갈망하라, 우직하게"

 

                                                                              SBS | 남정민 | 입력 2011.10.06 21:40

 

< 8뉴스 >

< 앵커 >
잡스는 IT의 혁명가였지만 기술을 말하기 전에, 그 기술을 사용할 사람들을 먼저 바라봤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과 싸워야했던 고난의 삶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보도에 남정민 기자입니다.


< 기자 >
청바지에 검은 터틀넥 셔츠와 운동화.
잡스의 상징이 된 소박한 복장과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언변 속엔

쉽지 않던 삶의 굴곡이 배어 있습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잡스는 생후 1주일 만에 다른 집으로 입양됐습니다.
넉넉치 못한 형편 때문에 대학은 입학 6개월 만에 중퇴해야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전 애플 CEO :

(기숙사에 못 들어가) 친구의 집 마룻바닥에서 자고,

콜라병을 주워 하나에 5센트씩 팔아 끼니를 때웠습니다.]


방황하던 잡스는 1976년 21살의 나이에

자기 집 창고에서 애플이라는 성공신화를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30살이던 1985년엔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넥스트 컴퓨터로 또다시 실패했지만

애니메이션 기업 픽사를 인수해 재기하면서 애플로 금의환향했습니다.


[오늘부터 애플의 임시 CEO가 아닌 정식 CEO가 됐음을 밝힙니다.]


아이폰아이패드 등 잇단 성공작을 내놓으며 최고의 시간을 누렸지만,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으며 길고 힘든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죽음과 직면한 순간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입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두려움은 죽음 앞에서
모두 없어지고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평생 혁신을 꿈꾸며 살았던 스티브 잡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늘 치열하게 살라는 그의 메세지는 유언처럼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모두 고맙습니다.]

 

 

(영상편집 : 김경연)
남정민 jmnam@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