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교실

스윙댄스의 역사와 현황

기산(箕山) 2009. 9. 12. 14:10

스윙댄스의 역사와 현황

The Roaring " 20's"

20세기를 외침의 시대(The Roaring "20's")로 불리는 이유는

역사적 처음으로 여성이 투표를 하였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여성들이 긴 땋은 머리를

짧은 단발로 잘랐으며 무허가 술집에서 찰스턴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남부 Carolina의 한 도시인 찰스턴은 현재 찰스턴이라는 춤의 이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다.

이 춤은 당시 창피하기 짝이 없고 불손한 춤으로 여겨졌습니다.
 
20년대 찰스턴
20년대는 금지의 시기로 무허가 술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암호가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이것은 찰스턴을 추는 fapper girls(1920년대에 자유를 찾아 복장, 행동 등에서 관습을 깨뜨린

젊은 여자들을 말함)를 볼 수 있었던 곳입니다.

 

가장 유명한 암호로는 23 Skidoo

(빨리 떠나다라는 의미의 슬랭으로 1차 대전 때 나타나서 1920년대에 대중화된 단어로

행운은 얻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가장 유명한 무성 영화 스타로는 Douglas Fairbanks와 Mary Pickford가 있었고

보조석을 가진 Roadster 자동차가 당시 젊은 미혼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며

찰스턴은 그것에 대한 논쟁으로 수명이 오래가지 않았고
Kick과 Hop으로 진화해갔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나란히 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Lindy Hop의 기원 "Lindbergh hopped over the Atlantic".

30년대 초반에 이르러 린드버그는 유명한 단독 비행을 마쳤고,

신문의 일면에는 ‘린드버그는 대서양을 뛰어 넘었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동안 ‘Shorty’라고 불리우던 George Snowden은 독특한 춤으로 할렘가에서 유명했고

Ragtime과 Blues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습니다.

 

기자들이 그가 추고 있었던 춤의 이름을 물었을 때,

그는 ‘The Hop’이라고 말했고 잠시 후에 그는 다시 “The Lindy Hop’ 이라고 말했으며

Lindy Hop은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뛰어 넘었다’는 신문기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당시 Dick Powell과 Joan Blondell은 가장 유명한 그 시대의 영화 배우들이었습니다.

Fred Astaire와 Ginger Rogers는 뮤지컬 ‘Top Hat’으로 매우 유명했고

30년대 가장 유명했던 Shirlye Temple(뮤직컬 배우)을 잊어 버릴 수 있었습니다.

Jitterbug과 West coast swing의 기원
40년대 전쟁이 발발했고 사람들은 애국심에 불타올랐습니다.

빅밴드 시대가 도래했고 그것은 흥분된 일이었습니다.

빅밴드에는 Glenn Miller, Benny Goodman, Tommy Dorsey와 Harry Jame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빅밴드들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바로 헐리우드 Palladium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Palladium은 춤을 추기 위한 장소로 여겼습니다.

 

40년대를 일명 ‘A-Ok’ 또는 ‘Copasthetic,’ ‘Super,’ ‘In the Groove’라고 불렀습니다.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들로는 Irene Dunn과 Robert Taylor가 있었습니다.

 

30년대의 Lindy Hop으로부터 진화한 40년대의 춤을 Jitterbug이라고 불렀고

40년대 후반에 가서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기 동안 헐리우드에서는 west coast swing이라고

알려진 춤의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영화 감독과 안무가는 Jitterbug의 원형 움직임으로 인해서 댄서들의 얼굴이 놓치는

경우가 없이 카메라 앞에서 더 많은 댄서들이 있기를 원하였고 직선적이고 정렬된 움직임

(정확하지 않음)의 춤으로 West coast swing이 태어났습니다.
 
세계 2차 대전 후
1945년 전쟁이 끝나고 The Fabulous 50년대가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시대는 일명 ‘좋은 시대’로 여겨졌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그들의 가정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2번 대통령을 역임하고 여자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길렀습니다.

 

TV는 이전보다도 더 많은 시간 동안 사람들을 집에 머물게 만들었으나 Elvis가 밤 세워 노래하는

Sock Hops로 춤을 추러 Chevy(자동차이름) 와 Ford를 몰고 가는 댄서들은 예외였습니다.

Elvis는 가장 유명했으나 그의 길들여지지 않은 성격과 유명한 엉덩이 돌리기는 불손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Slang 표현으로는 ‘Keen,’ ‘Neat,’ ‘Cool,’ ‘Boss’ 등이 있었습니다.

60년대 프리스타일 댄스
60년대는 사람들이 건드려보지 않았던 프리스타일 댄스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Swing dance에 열성가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에는 커플 댄스는 별로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70년대 디스코
70년대가 도래했을 때, John Travolta는 ‘토요일밤의 열기속으로’라는 영화속 주인공으로

커플댄스를 다시금 부활시켰습니다.

흰색의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어진 자켓은 단추가 풀어진 Shirt와 금목걸이(굵직한 것 같음)와 함께

유행이었습니다.

 

남성들은 70년대 유행이었던 마쵸맨의 얼굴표정과 함께 한쪽 팔로는 여자를 공중에 홀딩하고

다른 팔로는 항상 머리를 휘감는 존트라볼타의 유명한 자세를 원했습니다.

 

여자들은 스커트 덮개와 흘러내리는 긴 머리모양과 함께 Danskin leotard(몸에 착 붙는 옷)을 입었고

이 세대들은 Me Generation 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Slang으로는 Take it easy, Bitchen 등이 있었습니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허슬
나이트 클럽에서 라이브밴드의 연주는 DJ의 음악과 디스크 음악으로 대치되었고.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대표하는 춤을 허슬이라고 불리었습니다.

허슬은 여전히 폴리에스테르 자켓이 없이도 오늘날도 여전히 추고 있습니다.
 


80년대 중후반
80년대 중반과 80년대 후반은 반 디스코 또는 Pro free style

즉 파트너 앞에서 혼자 추는 춤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대중매체나 당시 유행이 함께 춤을 추는 것을 고수하는 진정한 댄서들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묘사하던 간에 열정적인 댄서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80년대 후반으로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Country Western Line 댄스가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90년대 커플댄스의 부활
1990년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커플댄스가 다시 활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Country western line 댄스는 Country Two step으로, 왈츠, West Coast swing,

East Coast swing, LIndy, Hustle, Salas 등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음악들에 춤을 추기 시작했고 점점 커플댄스는 대중화되었습니다.

어떤 취향의 음악을 좋아하던 간에 좋아하는 음악에 맞는 독특한 춤이 있고

나이가 젊건, 늙었건, 혼자건 결혼했건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습니다.
 
21세기 스윙댄스 현황
최근 전세계적으로 스윙댄스는 엄청난 열풍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 호주, 프랑스, 일본, 중국, 스웨덴 등이 스윙댄스를 많이 추는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특히 한국은 2000년 무렵 나혜석 선생님에 의해 처음 소개된 이후로

불과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10만 명이 넘는 아마추어 스윙댄서들이

온라인 카페 동호회를 중심으로 급성장하여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50개가 넘는 스윙댄스 동호회가 활동 중이며,

각 동호회별로 최소 수천 명 이상이 가입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부분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의 젊은 남녀로 분포되어 있으며,

일부 40대와 주한 외국인도 함께 춤을 추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만 15개의 스윙댄스 전문 스윙빠가 있습니다.

방배동의 빅애플, 신림동의 부기우기, 신사동의 스윙바, 신촌의 해피바, 건대입구의 피에스타,

구의역앞의 라틴플러스원, 서울대앞의 올댓스윙, 교대의 타임, 구로디지털단지의 스윙주 등

 

1년 365일 스윙댄스를 출 수 있는 곳이 서울에만 15군데 생겼습니다.

서울 외에도 부산, 인천, 수원, 대전, 대구, 광주, 통영, 제주 등에도 스윙댄스 동호회와 스윙빠가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우리나라 스윙댄스는 다른 춤과 달리 협회나 프로 댄서가 없이 순수 비영리 목적으로만 활동합니다.

K.L.R, 코리아스윙댄스페스티벌, 부산섬머스윙, 제주스윙캠프 등 전국의 스윙댄서들이 모여

춤과 문화를 즐기는 행사도 즐비합니다.

KBS 드라마 <경성스캔들>과 <무한지대큐>, 영화 <모던보이즈> 등에도 아마추어 스윙댄서들이

직접 출연해서 스윙댄스가 소개되며 인지도도 매우 높아진 상태입니다.

스윙댄스의 부가적인 정보
스윙은 1930 ~ 1940년 말까지 미국에서 유행하던 댄스입니다.

스윙은 여러가지 댄스들이 혼합된 것이지만 제일 큰 영향을 준 것은 찰스톤 이라는 댄스입니다.

스윙은 주로 두 가지로 나눕니다.

 

East Coast Swing 은 주로 빠른 음악을 위주로 하고있으며

West Coast Swing 은 블루스와 같은 느린 곡 위주로 춥니다.

East Coast Swing 은 한국에서 지더벅이라 하는 춤과 매우 흡사합니다.
Lindy Hop 은 이 East Coast 스윙의 최대 진보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Lindy Hop 은 기본동작이 East Coast Swing 보다 조금 더 복잡하며, 더 빠르고 화려한

동작이 많이 있읍니다.

영화 Swing Kids나 Malcolm X에 나오는 춤은 주로 East Coast Swing 과 린디합을 많이 보여줍니다.
 
Lindy Hop의 원조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920년대에 미국 뉴욕 할렘가에 있던 두개의

Club(The Savoy Ballroom 과 Cotton Club)에서 흑인들의 춤으로 시작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Jazz음악의 맞추어 추는 기본적인 댄스였으나,

춤을 추던 사람들이 서로 경쟁을 하여 더욱 멋있고 재미있는 동작들을 추구 하다가

1930년경 Frankie Manning 이라는 스윙의 전설적인 인물이 첫 에어리얼

(Aerial 하늘을 나는 동작)을 구사하였습니다.
 
Lindy Hop 의 명칭은 Savoy Ballroom 에서 춤을 추던 George "shorty" Snowden 이라는

댄서가 한 신문기자의 질문에 그 당시 혼자서 대서양을 횡단한 Charles Linybug 의 이름을 따서

Lindy Hop 이라고 얘기를 하여 그 이후부터 Lindy Hop 이라고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1930년대 중반에는 Jazz 음악이 흑인만이 아닌 백인 그리고 Hispanic 인구에게 확산되면서

Lindy Hop 에서 좀더 쉽고 접하기 쉬운 East Coast Swing(Jitterbug)으로 변형이 되었습니다.

이때 생긴 East Coast Swing이 지금 많이 추는 one Step Swing, Two Step Swing and

Three Step Swing이 생겼습니다.

 

스윙은 1950년대 Rock and Roll 이 상승하면서 서서히 없어져,

1960 년대에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1980년 초에 Rockabilly 라는 Rock and Roll 음악이 Stray Cats 과 같은

음악 그룹들이 생기면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 초반에 미국 California 와 Sweden, 그리고 영국을 중심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 시대를 주로 neoswing era 라고들 합니다.

지난 10년동안 스윙의 인기가 급상승 하였습니다.

제가 살던 Chicago 에는 거의 매일 저녁에 스윙 음악을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neoSwing 음악은 30~40 년대 빅밴드 음악 과 50 년대의 Rock and Roll, 80~90 년대의

rockabilly 와 90 년대의 SKA 음악을 혼합한 것입니다.
 
스윙음악에 체계적으로 춤을 춘 것은 화이티의 린디호퍼라는 흑인 댄스 팀이었고,

그때 댄서이며 안무가가 바로 '프랭키 매닝'이기 때문에,

린디홉을 만든 사람이 프랭키 매닝이고 결국 프랭키 매닝이 스윙댄스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프랭키 매닝은 2009년 95세 생일을 앞두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백인 스윙댄서들이 등장해서 글렌 밀러, 아티 쇼, 도르세이 형제들 등이

백인 풍 스윙 재즈를 만들었고, 이 스윙재즈는 베니 굿맨에 의해 정점에 달했다고 합니다.
 

 
철저하게 흑인 춤이었던 린디 홉과 달리 백인들도 즐기는 훨씬 간단하고 쉬운 춤이 등장하는데

이게 지터벅(Jitterbug)이고, 가공할 만큼 어려웠던 린디 홉과는 달리 지러벅은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영상 자료를 보여주는데 오리지널 린디호퍼들이 추는 린디 홉은 거의 상상을 초월하는

레벨이라서, 현재 미국 린디홉 챔피언도 그 스텝들을 완벽히 해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초기 지터벅은 현재 지루박이나 지루바(일본 지러벅)과는 좀 다른데 이게 나중에 자이브로

변해갔습니다.
 
린디홉의 인기가 사라진 후 린디호퍼들은 거의 춤을 떠났고

프랭키 매닝도 거의 30년 이상을 춤을 추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80년대 미국서는 지터벅이 자이브, 린디홉, 찰스턴 등의 스텝을 포함시키면서

동해안 스윙으로 발전했고요.

다른 지역에서는 서해안 스윙이 독립적으로 발전했는데 동해안 스윙처럼 인기는 끌지 못했죠.

찰스턴은 폭스트롯과 결합해서 퀵스텝 (원래이름은 찰스턴 리듬의 폭스트롯 퀵스텝이었다고 함)

이라는 춤을 낳았고 역시 거의 사라졌었습니다.
 
20세기 말에 와서야 린디 홉, 찰스턴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현재 린디 홈 챔피언 커플이 예전에 영화를 보다가 (Hellzapoppoin')

거기서 프랭키 매닝이 안무한 화이티의 린디호퍼들의 오리지널 린디홉을 봤답니다.

가공할 춤 실력에 놀란 이들이 뉴욕 전화번호부를 뒤져보니 딱 한 명의 프랭키 매닝이 있었답니다.

전화를 걸어서 "혹시 춤추는 분이세요?" 하니까

80대 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춤을 추기는 했었는데..."

이렇게 해서 프랭키 매닝이 다시 발견되었고, 이 커플의 요청으로

오리지널 린디 홉을 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는 어떻게 소개되었을까?
우리나라의 스윙은 1999년 12월 나혜석 선생님께서 보라매공원 체육관에서

스윙댄스 무료 공개강습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댄스스포츠와 살사 등 댄스 동호인들의 인구는 어느정도 형성되어 있었던 시기였으나

스윙댄스의 인구는 극히 미미한 상태였습니다.

보라매 공원의 강습 이후 2000년 5월 보라매 공원에서 나혜석 선생님의 강습을 듣던

몇몇을 주축으로 스윙키즈라는 첫 스윙동호회를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스위티스윙 동호회가 생김으로서 더 많은 스윙댄스 동호인들이 생겨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1월 스윙키즈에서 개설한 스윙스쿨의 무료스윙 공개강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스윙에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쓴뿌리님의 블러그에서 복사해온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