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지석(誌石)엔 어떤 내용이 새겨졌나? (전문공개)
뉴스엔 | 입력 2009.08.23 12:58
[뉴스엔 김지윤 기자]
일정이 공개된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지석(誌石) 내용이 확정됐다.
지석이란 고인의 인적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해 땅에 함께 묻는 돌을 의미한다.
김 전 대통령 지석에는 대통령의 이름과 호, 출생일과 부모, 성장과정과 정치역정,
이희호 여사와의 결혼, 일본납치사건 등 다섯번의 죽을 고비, 15대 대통령 취임과
6.15 남북정상회담, 퇴임 후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한 왕성한 활동, 저서 등이 상세히 기록됐다.
또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향년 86세로 서거한 내용과 퇴임한 국가 원수로는
이밖에 세 아들을 비롯해 손자와 손녀 등 자손의 이름도 모두 기록됐다.
지석은 이날 오후 6시께 거행될 안장식에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땅속에 묻혀진다.
다음은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지석 전문이다.
公의 성은 金氏, 본관은 金海, 휘는 大中, 호는 後廣이다.
1924년 1월 6일(양력)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 어머니 장수금 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초암서당과 하의도 보통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은 대중의 영특함을 살리기 위해 목포로 이사했고, 대중은 전학 간 목포 북교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939년 5년제 목포 상업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한 뒤 목포에 있는 해운회사에 입사했다.
사업에 성공하여 유망한 청년실업가로 명망이 높았다.
1945년 차용애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1950년 9월 목포형무소에 갇혔다가 인민군들의 무차별 학살극에서 극적으로 탈출, 살아났다.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와 부산 정치파동을 현지에서 겪으며 정치에 뜻을 두게 되었다.
1954년 목포에서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56년 장면박사 권유로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듬 해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5.16군사쿠데타로 의원의 꿈이 무산되었다.
1962년 5월 정치적 동지인 이희호와 결혼했다.
1963년 11월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0년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대통령후보로 뽑혔으나 이듬 해 치른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했다.
국회의원 선거 지원유세 중 승용차가 대형트럭에 받혔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한국정보부에 의해 납치당해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국에 끌려와 오랜 기간 가택연금을 당했다.
1980년 5월17일 신군부 세력에 잡혀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미국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구명 운동으로 감형되어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1985년 망명 생활 2년 만에 귀국을 강행, 1987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88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여 제1야당 총재가 되었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패배했다.
1994년 1월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을 설립하였다.
1995년 정계에 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1997년 다시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1998년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열었고,
2003년 2월 퇴임하여 서울 동교동 사저에 머물며 남북통일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86세를 일기로 서거하시었다.
퇴임한 국가 원수로는 처음 국장으로 모셔졌고,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묻히셨다.
자손으로는 아들 홍일, 홍업, 홍걸이 있고, 손자와 손녀는 지영, 정화, 화영, 종대, 종민, 종화,
종석이 있다.
수많은 학위를 받았고, < 옥중 일기 >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김지윤 june@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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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겁니다”
서울신문 | 입력 2009.08.24 02:21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는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조사(弔辭)를 낭독했다.
다음은 조사 요지.
우리는 오늘 나라의 큰 정치지도자이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우리는 오늘 나라의 큰 정치지도자이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쾌차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우리들은 애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대통령님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습니다.
대통령님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습니다.
대통령님의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대통령님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일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었습니다.
고인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생전에 당신 스스로를 추운 겨울에도 온갖 풍상을 참고 이겨내는 '인동초'에 비유했던 것처럼
고인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생전에 당신 스스로를 추운 겨울에도 온갖 풍상을 참고 이겨내는 '인동초'에 비유했던 것처럼
투옥과 연금, 사형선고와 망명에 이르기까지 험난했던 삶이었습니다.
민주화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님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강인한 신념과
민주화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님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강인한 신념과
불굴의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이루고자 하셨던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적 통일
대통령님이 이루고자 하셨던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적 통일
그리고 국민 통합에 대한 열망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 가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계층을 위한 대통령님의 관심과 배려도
오늘의 우리들이 한층 더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에 크나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은 생전에도 늘
대통령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에 크나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은 생전에도 늘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라지고 계층 간에 대립하고 세대 간에 갈등해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통령님의 유지를 받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통령님의 유지를 받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야말로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세대의 차이를 떠나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이제 대통령님은 생전의 그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기를 빕니다.
이제 대통령님은 생전의 그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우리 겨레의 앞길을 밝혀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온 국민과 더불어 삼가 후광(後廣)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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