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애증의 50년’… DJ - YS 역사적 화해

기산(箕山) 2009. 8. 11. 11:18

‘애증의 50년’… DJ - YS 역사적 화해

                                                                                                        서울신문 | 입력 2009.08.11 03:56

 

죽음의 문턱에서야 풀린 50년 애증의 한(恨).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YS는 DJ를 직접 위문하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YS를 맞은 DJ 부인 이희호 여사는
"염려해 주시고 와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오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반세기를 이어온 한국 정치사 두 거목 간의 반목은 이렇게 청산됐다.

YS는 이날
"(DJ는) 나와는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라면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라고 말했다.
또 "둘이 합쳐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목숨 걸고 싸웠다."면서 정적이자 동지인 DJ를 회고했다.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협력과 반목을 거듭하던 두 거목은
1997년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문민정부 말기 터져 나온 YS 차남 현철씨의 비리 사건이 화근이었다.
YS는 DJ가 조속히 사면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앞서 97년 DJ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수사유보를 결정하며
민주화 동지의 대선 승리에 길을 터줬다고 생각해온 YS는
DJ의 늑장(?) 사면을 '배신 행위'로 여겼다.

YS의 독설이 늘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DJ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도 "상의 가치가 떨어졌구먼…."이라며 깎아내렸다.
지난 6월 DJ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자
"그 입을 닫으라."고 했다.
DJ는 묵묵부답,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했다.

DJ는 이날 위중한 병세로 YS에 직접 화답하지는 못했다.
대리인격인 권노갑 전 의원이
"이번 일을 계기로 화해 문제가 해소됐다."며 사의를 전달했다.
YS의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아버지가 대승적으로 생각해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가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DJ의 병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9일 병세 악화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10일 일정을 전격 취소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초 이날 전남 여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여수세계박람회 D-1000일' 행사에 참석하려 했으나
청와대는 DJ의 병세에 따라 "이 대통령이 갈 수 없다."는 뜻을 여수세계박람회 측에 통보했다.

8·15 전후로 예정됐던 개각과 청와대 개편도 상당기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여야 정치권도 병문안을 위해 줄줄이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오전 10시20분쯤 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윤상현 대변인 등과 함께
이희호 여사를 위로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송영길·김민석·안희정·장상 최고위원 등은 병원에서 쾌유를 비는 예배를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 여사를 만나 DJ의 쾌차를 기원했다.

한편 병원 측은
"이날 새벽부터 혈압과 맥박 등 건강 수치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고령에 지병으로 신체 기능이 서서히 저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홍성규 김지훈 오달란기자 coo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