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대화가 안 되는 한국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때

기산(箕山) 2009. 6. 1. 03:15

세대 사이에 높게 쳐진 베를린 장벽,

대화가 안 되는 한국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때

 

경험은 때론 존재를 규정하죠.

다른 역사를 겪고, 목적이 다른 교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죠.

보통 사람들 관용의 테두리는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자신을 넘어서는 경험, 타자를 품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과 다른 ‘남’은 알 수 없기에 공포입니다.

타자는 언제나 ‘에일리언’이죠.

 

문제는 자기 역시 상대방이 봤을 때 ‘타자’라는 겁니다.

서로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서 으르렁거리기 일쑤입니다.

한국이라는 같은 사회에 살고 있지만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워낙 빠르게 벌어져

세대끼리 경험이 너무 다르기에 소통이 안 됩니다.

거칠게 따져보면, 한국전이나 1950년대 배고픔을 겪은 세대와

1970~80년대 민주화에 목말라한 세대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지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면 ‘어디론가 끌려갔던’ 사람들은

당시 권력에 맞춰 자기 몸을 바꿀 수밖에 없었지요.

거기다 이승만, 박정희, 다시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40년 독재’ 속에서

알려주는 것만을 보고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지요.

몸과 머리가 ‘독재시대 국민’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민주화세대는 반발을 할 수밖에 없고,

둘은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비극이죠.

세월이 많이 흘렀건만 두 세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베를린장벽’이 쳐있고,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있죠.

‘한국전 공포’와 ‘자유에 대한 갈망’, 바탕 되는 감정이 180도 다른 두 세대는

함께 나눌만한 ‘말과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끔찍한 건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딴판의 두 갈래 가치관은 재생산되면서 젊은 사람들까지 가르고 있습니다.

 

한국, 자랑스러운 나라죠.

하지만 ‘뉴라이트’가 말하는 것처럼

일부특권층이 쿵짝쿵짝해서 지금의 한국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경제발전은 셀 수 없는 민초들이 땀 흘려서 일한 결과이고,

일제에 무릎 꿇지 않고 독재정권에 맞서면서 간신히 오늘날 ‘형식상 민주주의’를 얻어낸 겁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거저 생겨난 게 아니지요.

 

한국, 피와 눈물 그리고 땀이 어우러진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그와 함께 뒷면에는 말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단 한 가지만을 내세우는 것은 한국을 제대로 아는 게 아니지요.

따라서 늘 ‘자기 경험’을 넘어서 타자에게 향해야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소통의 가능성이 보이니까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가 안 되는 한국,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때입니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