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맥아더의 오판, 한국전 비극 키웠다
한승동 기자 |
<콜디스트 윈터>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이은진·정윤미 옮김/살림·4만8000원
뉴저널리즘 창시 지은이 생존자 증언 토대 심층묘사
“맥아더, 한국상황 무지 일본방어진지로만 이해”
“맥아더가 원한 것은 중국 공산당 정부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는 거였다.
그 어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의향이 없었다. … 마지못해 정부 방침을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중국과 전쟁을 벌일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뉴욕 타임스> 재직 때 베트남전 보도로 1964년 퓰리처상을 받은 ‘뉴저널리즘’의 기수 데이비드
핼버스탬(1934~2007)의 마지막 야심작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 America and the Korean War)는 1950년 12월 전임 월튼 워커의 사고사로 주한 미8군 사령관직을 물려받은 매슈 리지웨이 장군의 육성을 그렇게 전한다.
그해 9월15일 ‘맥아더 유일의 성공작’ 인천상륙작전 뒤 파죽지세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미군은 중국군한테 궤멸적 타격을 받고 패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패배를 몰랐던 미군은 그해 겨울 운산을 비롯한 한반도 북부에서 역사상 가장 춥고 비참한 겨울(콜디스트 윈터)을 만났다.
그 2개월 전인 10월3일 새벽 베이징 주재 인도대사 파니카르에게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는
“미군이 38선을 넘어오면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38선을 넘은 부대가 남한군이라면 문제가 될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하려 들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개입하면 공군과 해군, 그리고 핵폭탄으로 저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불과 얼마 뒤 그게 치명적인 오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이 독불장군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전쟁 발발 5개월 전인 1950년 1월12일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다”는
기묘한 발언으로 북의 남침을 유발했던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 역시
중국이 미국·유엔에 맞서 싸우는 건 “완전히 정신나간 짓”이라며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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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는 중국군과 북의 인민군을 얕잡아보고 있었다.
도쿄 점령군사령부(GHQ)에서 북의 남침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그는
“워싱턴에서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등 뒤에 한 손을 묶은 채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필리핀을 식민지배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식민지 총독, 극동지역의 황제가 되고 싶어 한”(트루먼)
오만한 맥아더의 지독한 인종차별은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미 공군을 제압한 일본 전투기 조종사들이 백인임이 분명하다고 확신했을 정도였다.
‘워싱턴 간섭’이란 그의 독선과 과대망상에 제동을 걸려 했던 해리 트루먼 민주당 정권의 간섭이었다. 그는 전임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뉴딜정책을 증오한 꼴보수였으며 20년 가까이 정권에서 소외당한 채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공화당 우파들에겐 집권을 위한 대안카드로 떠받들어졌다.
<타임> 등을 발행한 대표적 우파 언론인 헨리 루스 등 ‘차이나 로비’ 세력은 한반도를
“위험한 장소나 곤경에 빠진 곳으로 보지 않고 중국을 자유화하는 데 꼭 필요한 전투지”로만
생각했으며, “훨씬 더 큰 전쟁”, 즉 중국과의 전면전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전쟁은 대만으로 쫓겨간 장제스의 국민당 친미세력이 다시 중국대륙을 ‘탈환’할 수 있게 만들어줄 절호의 찬스였다.
맥아더에게 한반도는 애초에 일본의 방어진지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는 한국 상황에 무지했고 한국인을 깔봤던 점령군 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모든 걸 맡겨놓고
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 잠시 서울을 방문한 것을 빼면
그때까지 단 한 차례도 한국을 찾지 않았다.
소련 봉쇄정책으로 냉전의 틀을 짰으나 맥아더의 광기에 반대했던 조지 케넌조차 오로지
“일본이 지닌 중요성”, 일본 방위를 위한 필요성 때문에 미군의 한국전쟁 개입에 찬성했다.
1947년 터키와 그리스 방위를 선언(‘트루먼 독트린’)함으로써 냉전의 깃발을 올린 트루먼도
한국은 “극동의 그리스”였고 한국전쟁은 일본, 이란과 중동, 유럽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더 큰 전쟁의 전초전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들이 그나마 한반도에 관심을 쏟았던 건 그 지정학적 전략가치였을 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맥아더와 트루먼의 차이는 이것이었다.
즉 국내의 정치적 분열과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던 트루먼은 중국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협상을 통한 조속한 한반도 현상고착을 원하고 있었던 데 비해,
맥아더는 전면전을 통한 동아시아 제패와 국내 권력투쟁에서의 승리를 노리고 있었다.
결국 맥아더는 해임당했고, 전쟁은 300만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채 발발 이전으로 돌아갔다.
철저한 현장취재와 주관을 가미한 심층보도를 지향하는 뉴저널리즘 창시자의 작품답게
집필에만 10여년을 공들였다는 책의 묘사는 풍부하고 생기가 있다.
맥아더의 군사적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미국내 정치배경 및 미국의 전후 대외정책 등과 얽힌
그의 독선적 군사·정치적 행보와 집안 내력을 매우 비판적·종합적으로 헤집는 솜씨가 돋보인다.
그 밖의 전쟁 주역들과 생생한 주요 전투 현장들 묘사도 줄기찬 생존자들 인터뷰에 토대를 둔
개개인 체험담을 통해 살아 있는 얘기로 다가온다.
2007년 지은이가 교통사고로 숨지기 직전에 완성된 1천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은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 자체의 정당성 등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진 않는다.
말하자면 주류 시각을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풍성한 정보와 개성적인 평가를 담아
‘잊혀진 전쟁’을 망각에서 끄집어내는 최신 보고서다.
한국전쟁의 전모를 이렇게도 재구성할 수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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