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왕계표
존칭명 : 왕, 태왕(太王), 대왕(大王), 열제(烈帝)
성(性) : 고(高) - 28대 705년(7161~7865, BC37∼서기668)
대 |
왕 명 |
즉위년도 |
연호 |
재위기간 |
약 사 |
1 |
추모(芻慕) |
7161-BC37 |
다물 |
18 |
名은 주몽(朱蒙), 추모. 해모수의 4세손. 父는 불리지. 불리지가 고주몽의 아버지, 母는 하백의 딸 유화. |
2 |
유리명(琉璃明) |
7179-BC19 |
|
37 |
名은 유리, 유류(孺留), 여율(북사). 母는 예씨부인. |
3 |
대무신(大武神) |
7215-18 |
|
26 |
대해주류왕. 名은 무휼(無恤), 막래(북사).母는 다물국 송양의 딸 송씨부인. |
4 |
민중(閔中) |
7241-44 |
|
4 |
名은 해색주(解色朱). 대무신왕의 동생. |
5 |
모본(慕本) |
7245-48 |
|
5 |
名은 해우(解憂), 해애루. 대무신왕의 원자. |
6 |
태조(太祖) |
7250-53 |
융무 |
93 |
국조왕. 名은 궁(宮). 유리왕의 2대손. 융무(隆武) |
7 |
차대(次大) |
7343-146 |
|
19 |
名은 수성(遂成). 태조왕의 동생. 명림답부에게 죽음 |
8 |
신대(新大) |
7362-165 |
|
14 |
名은 백고(伯固) , 백구(伯句). 태조왕의 막내 동생. |
9 |
고국천(故國川) |
7376-179 |
|
18 |
名은 남무(男武), 이이모(북사). 신대왕의 2자 |
10 |
산상(山上) |
7394-197 |
|
30 |
名은 연우(延憂), 위궁(位宮). 신대왕의4자(형 발기를 제끼고 왕이 되어 형 발기가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다 죽음)선황후우(형수)를 황후로 맞이함. 을파소 참전계경 |
11 |
동천(東川) |
7424-227 |
|
21 |
동양왕. 名은 우위거(憂位居). |
12 |
중천(中川) |
7445-248 |
|
22 |
중양왕. 名은 연불(然弗). |
13 |
서천(西川) |
7467-270 |
|
22 |
서양왕. 名은 약노(藥盧), 약우(若友). |
14 |
봉상(烽上) |
7489-292 |
|
8 |
치갈왕. 名은 상부(相夫), 삽시루. |
15 |
미천(美川) |
7497-300 |
|
31 |
호양왕. 名은 을불(乙弗), 우불(憂弗). |
16 |
고국원(故國原) |
7528-331 |
永和 |
40 |
국강상왕. 名은 사유(斯由), 쇠(釗). 백제 근초고왕의 공격으로 교전 중 사망. |
17 |
소수림(小獸林) |
7568-371 |
|
13 |
소해주류왕. 名은 구부(丘夫). |
18 |
고국양(故國壤) |
7581-384 |
|
8 |
名은 이련(伊連), 지지(只支) 소수림왕의 아우. |
19 |
광개토(廣開土) |
7589-392 |
영락 |
21 |
광개토경호태왕, 名은 담덕(談德). |
20 |
장수(長壽) |
7610-413 |
건흥 |
79 |
장수홍제호태열제, 名은 거련(巨連). 475년 백제 한성으로 공격하여 개로왕 주살. |
21 |
문자명(文咨明) |
7689-492 |
명치 |
27 |
문자호태열제, 名은 나운(羅雲).장수왕 2대손. 父는 조다(助多). |
22 |
안장(安藏) |
7716-519 |
|
12 |
名은 흥안(興安). |
23 |
안원(安原) |
7728-531 |
|
14 |
名은 보연(寶延). 안장왕의 아우. |
24 |
양원(陽原) |
7742-545 |
|
14 |
양강왕. 名은 평성(平成). |
25 |
7756-559 |
대덕 |
31 |
평강상호태열제. 名은 양성(陽成), 탕(북사). | |
26 |
7787-590 |
홍무 |
28 |
영양무원호태열제, 名은 원(元), 대원. 사서 <신집>5권 편찬. 수나라 양왕 광의113만 대군을 대장군 을지문덕이 물리침. | |
27 |
7815-618 |
|
24 |
名은 건무(建武), 성(成)영양왕의 이복동생. 연개소문에게 죽음 | |
28 |
7839-642 |
개화 |
26 |
名은 장(臧). 영류왕의 아들 태양왕의 아들로 연개소문에 의해 옹립. 당 이세민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연개소문의 세 아들 남생, 남건, 남산의 분란으로 7865(AD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 | |
(멸망) |
|
백제 왕계표
존칭명 : 왕(王) - 성(性) : 부여(夫餘)
32대 678년 (환기7180~7857, BC18∼서기660)
대 |
왕 명 |
즉위년도 |
재위기간 |
약 사 |
|
소서노(召西努) |
7156-BC42 |
|
고구려의 신하 연타발의 딸로,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이다.(BC31)년에 고구려에 의해 제후로 인정. |
1 |
온조(溫祚) |
7180-BC18 |
45 |
고주몽의 아들. 형은 비류(沸流). |
2 |
다루(多婁) |
7225-28 |
49 |
온조왕의 맏아들. 처음으로 논에서 쌀농사 |
3 |
기루(己婁) |
7274-77 |
51 |
다루왕의 맏아들. |
4 |
개루(蓋婁) |
7325-128 |
38 |
기루왕의 아들. 북한산성을 쌓았다. |
5 |
초고(肖古) |
7363-166 |
48 |
소고(素古).개루왕의 아들. |
6 |
구수(仇首) |
7411-214 |
20 |
귀수(貴須). 204년 위구태의 구태백제에 복속하여 온조백제는 구태백제의 후국이 됨 |
7 |
사반(沙伴) |
7435-234 |
1 |
구수왕의 아들. 사반왕이 너무 어려 정사를 볼 능력이 없어 폐하고 고이왕이 왕위에 오름 |
8 |
고이(古爾) |
7436-234 |
52 |
초고왕의 아우. |
9 |
책계(責稽) |
7483-286 |
12 |
고이왕의 아들. 청계(靑稽).AD298년 가을 9월, 한 나라가 맥인들을 이끌고 와서 침략하였다. 왕이 직접 나가서 방어하다가 전사하였다. |
10 |
분서(汾西) |
7495-298 |
6 |
책계왕의 맏아들 |
11 |
비류(比流) |
7501-304 |
40 |
구수왕의 아들. |
12 |
설(契) |
7541-344 |
2 |
분서왕의 맏아들 |
13 |
근초고(近肖古) |
7543-346 |
29 |
비류왕의 둘째아들. 고구려 평양성에 쳐들어가 고국원왕을 살해. 고흥이 서기 집필 |
휘수(諱須). | ||||
14 |
근구수(近仇首) |
7572-375 |
9 | |
15 |
침류(枕流) |
7581-384 |
1 |
근구수왕의 맏아들. |
16 |
진사(辰斯) |
7582-385 |
7 |
근구수왕의 둘째아들. |
17 |
아신(阿莘) |
7589-392 |
13 |
아방(阿芳).침류왕의 아들 |
18 |
전지(전支) |
7602-405 |
15 |
직지(直支). 혹은 여영. 아신왕의 맏아들. |
19 |
구이신(久爾辛) |
7617-420 |
7 |
전지왕의 맏아들. |
20 |
비유(毗有) |
7624-427 |
28 |
구이신왕의 맏아들. |
21 |
개로(蓋鹵) |
7652-455 |
20 |
근개루(近蓋婁). 名은 경사(慶司). 고구려 장수왕 공격으로 아차산에서 사망(475년) |
22 |
문주(文周) |
7672-475 |
2 |
개로왕의 아들. 웅진으로 도읍을 옮김. 병관좌평 해구에 의해죽었다. |
23 |
삼근(三斤) |
7674-477 |
2 |
임걸(壬乞). 문주왕의 맏아들. |
24 |
동성(東城) |
7676-479 |
22 |
名은 모대(牟大) 혹은 마모(摩牟). 문주왕의아우 곤지(昆支)의 아들. |
25 |
무령(武寧) |
7698-501 |
22 |
名은 사마(斯摩). 동성왕의 둘째 아들. 좌평 백가가 가림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키니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우두성에 가서 한솔 해명을 시켜 공격하게 하였다. 백가가 나와서 항복하자 왕이 백가의 목을 베어 백강에 던졌다. |
26 |
성(聖) |
7720-523 |
31 |
名은 명농(明농). 도읍을 사비[소부리라고도 한다.]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하였다. |
27 |
위덕(威德) |
7751-554 |
44 |
名은 창(昌). |
28 |
혜(惠) |
7795-598 |
1 |
名은 계(季). 성왕의 둘째아들. |
29 |
법(法) |
7796-599 |
1 |
名은 선(宣) 혹은 효순(孝順). |
30 |
무(武) |
7797-600 |
41 |
名은 장(璋). |
31 |
의자(義慈) |
7838-641 |
19 |
7857(AD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 |
(멸망) |
가야 왕계표
존칭명 : 왕(王) - 성(性) : 김(金)
10대 520년(환기7239~7759, 서기42 ∼ 562)
대 |
왕 명 |
즉위년도 |
재위기간 |
약 사 |
1 |
수로(首露) |
7239-42 |
157 |
|
2 |
거등(居登) |
7396-199 |
54 |
어머니는 허황후(許皇后). 기묘(己卯; 199) 3월 13일에 즉위(卽位), 치세(治世)는 39년으로 계유(癸酉; 253) 9월 17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慕貞)이며 태자(太子) 마품(麻品)을 낳음. |
3 |
마품(麻品) |
7450-253 |
38 |
신해(辛亥; 291) 1월 29일에 죽음. 왕비(王妃)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손녀(孫女) 호구(好仇)로 태자(太子) 거질미(居叱彌)를 낳음. |
4 |
거즐미(居叱彌) |
7488-291 |
55 |
금물(今勿)이라고도 하며 김씨(金氏). 영평(永平) 원년에 즉위.병오(丙午; 346) 7월 7일에 죽음. 왕비는 아궁아간(阿躬阿干)의 손녀 아지(阿志)로, 왕자(王子) 이시품(伊尸品)을 낳음. |
5 |
이시품(伊尸品) |
7543-346 |
61 |
혹은 이품(伊品). 정미(丁未; 407) 4월 10일에 죽음. 왕비는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貞信)으로, 왕자 좌지(坐知)를 낳음. |
6 |
좌지(坐知) |
7604-407 |
14 |
용녀(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의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국내가 시끄러웠다. 용녀를 내쳐서 하산도(荷山島)로 귀양 보내고, 정치를 고쳐 행하여 길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렸다. 신유(辛酉; 421) 4월 12일에 죽음. 왕비는 도령대아간(道寧大阿干)의 딸 복수(福壽)로, 아들 취희(吹希)를 낳음. |
7 |
취히(吹希) |
7618-421 |
30 |
질가(叱嘉)라고도 함. 김씨(金氏). 신묘(辛卯; 451) 2월 3일에 죽음. 왕비는 진사각간(進思角干)의 딸 인덕(仁德). 왕자(王子) 질지(질知)를 낳음. |
8 |
질지 |
7648-451 |
41 |
김질왕(金질王)이라고도 함. 이듬해에 시조(始祖)와 허황옥 왕후(許黃玉王后)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하여 처음 시조(始祖)와 만났던 자리에 절을 지어 왕후사(王后寺)라 하고 밭 10결(結)을 바쳐 비용에 쓰게 함.임신(壬申; 492) 10월 4일에 죽음. 왕비는 김상사간(金相沙干)의 딸 방원(邦媛). 왕자 겸지(鉗知)를 낳음. |
9 |
겸지(鉗知) |
7689-492 |
29 |
김겸왕(金鉗王)이라고도 함. 정광(正光) 2년 신축(辛丑; 521) 4월 7일에 죽음. 왕비는 출충각간(出忠角干)의 딸 숙(淑). 왕자 구형(仇衡)을 낳음. |
10 |
구형(仇衡) |
7718-521 |
41 |
임오(壬午; 562) 9월에 신라 진흥왕(眞興王)의 침략으로 멸망. |
(멸망) |
* 좌지왕 이후 가야연맹체의 주도권이 대가야로 넘어가게 되었다
고려 왕계표
존칭명 : 제(帝),왕(王) -성(性) : 왕(王)
34대 474년( 환기8115~8589, 서기918~1392 )
대 |
왕 명 |
즉위년도 |
재위기간 |
약 사 |
1 |
태조(太祖) |
8115-918 |
25 |
이름은 왕건(王建). 궁예의 폭정으로,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
2 |
혜종(惠宗) |
8140-943 |
2 |
휘는 무(武). 태조의 맏아들. 대광인 왕규(王規)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 |
3 |
정종(定宗) |
8125-945 |
4 |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 서경(평양)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
4 |
광종(光宗) |
8146-949 |
26 |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노비안검법을 제정하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 |
5 |
경종(景宗) |
8172-975 |
6 |
휘는 주(인宙). 자는 장민(長民). 광종의 아들. 전시과를 제정함.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 |
6 |
성종(成宗) |
8178-981 |
16 |
휘는 치(治).字는 溫古이니 載宗의 第2子이며 母는 宣義太后 柳氏이다. 팔관회를 폐지함.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 |
7 |
목종(穆宗) |
8195-997 |
12 |
휘는 송(誦). 경종의 맏아들.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康兆)에게 피살됨. |
8 |
현종(顯宗) |
8206-1009 |
22 |
휘는 순(詢).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 |
9 |
덕종(德宗) |
8228-1031 |
3 |
휘는 흠(欽).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 |
10 |
정종(靖宗) |
8231-1034 |
12 |
휘는 형(亨).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 |
11 |
문종(文宗) |
8243-1046 |
37 |
휘는 휘(徽). 자는 촉유(燭幽).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 |
12 |
순종(順宗) |
8280-1083 |
|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 |
13 |
선종(宣宗) |
8280-1083 |
11 |
휘는 운(運). 문종의 둘째 아들.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 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 |
14 |
헌종(獻宗) |
8291-1094 |
1 |
휘는 욱(昱). 즉위하자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평정하고,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
15 |
숙종(肅宗) |
8292-1095 |
10 |
문종의 셋째아들.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 |
16 |
예종(睿宗) |
8302-1105 |
17 |
휘는 우.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 |
17 |
인종(仁宗) |
8319-1122 |
24 |
휘는 해(偕).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겪었으나 선정을 베품.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 |
18 |
의종(毅宗) |
8343-1146 |
24 |
휘는 현(晛). 인종의 맏아들.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 |
19 |
명종(明宗) |
8367-1170 |
27 |
휘는 호(皓). 의종의 동생.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쫓겨남. |
20 |
신종(神宗) |
8394-1197 |
7 |
휘는 탁(晫).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
21 |
희종(熙宗) |
8401-1204 |
7 |
휘는 영. 신종의 맏아들.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쫓겨남. |
22 |
강종(康宗) |
8408-1211 |
2 |
휘는 숙(璹), 정, 오. 명종의 맏아들. 명종과 함께 쫓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 |
23 |
고종(高宗) |
8410-1213 |
46 |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 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 |
24 |
원종(元宗) |
8456-1259 |
15 |
휘는 정(禎).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 임연(林衍)의 난,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 |
25 |
충렬왕(忠烈) |
8471-1274 |
34 |
원(元)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 |
26 |
충선왕(忠宣) |
8505-1308 |
5 |
휘는 장(璋).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 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 |
27 |
충숙왕(忠肅) |
8510-1313 |
17 |
휘는 도(燾).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 만에 복위함. |
8529-1332 |
7 | |||
28 |
충혜왕(忠惠) |
8527-1330 |
2 |
휘는 정(禎).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 |
8536-1339 |
5 | |||
29 |
충목왕(忠穆) |
8540-1344 |
4 |
휘는 흔(昕).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어머니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함. |
30 |
충정왕(忠定) |
8545-1348 |
3 |
휘는 저.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尹時遇)와 배전(裵佺)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 만에 폐위됨. |
31 |
공민왕(恭愍) |
8548-1351 |
23 |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
32 |
우왕(禑) |
8571-1374 |
14 |
공민왕의 아들.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
33 |
창왕(昌) |
8585-1388 |
1 |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쫓은 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 만에 강화도로 쫓겨나 10세 때 시해됨. |
34 |
공양왕(恭讓) |
8586-1389 |
3 |
휘는 요.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
(멸망) |
조선 왕계표
존칭명 : 왕(王) - 성(性) : 이(李)
27대 518년(환기8589~9107, 서기1392~1910)
대 |
왕 명 |
즉위년도 |
재위기간 |
약 사 |
1 |
태조(太祖) |
8589-1392 |
6 |
휘는 성계(成桂). 고려 말 무신으로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우고,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92년 조선왕조를 세움. |
2 |
정종(定宗) |
8595-1398 |
2 |
휘는 방과(芳果). 사병을 삼군부에 편입시킴. 즉위 2년 만에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음. |
3 |
태종(太宗) |
8597-1400 |
18 |
휘는 방원(芳遠).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하였으며, 왕자들의 왕위 다툼(왕자의 난)에서 이겨 왕위에 오름. 여러 가지 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움. |
4 |
세종(世宗) |
8615-1418 |
32 |
휘는 도. 태종의 셋째아들.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창제케 함. 외치에도 힘을 써 북쪽에 사군과 육진, 남쪽에 삼포를 두었음. |
5 |
문종(文宗) |
8647-1450 |
2 |
휘는 향(珦). 학문에 밝고 인품이 좋았으며, 세종의 뒤를 이어 유교적 이상 정치를 베풀고 문화를 발달 시켰음. |
6 |
단종(端宗) |
8649-1452 |
3 |
12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계유사화로 수양대군에 의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함. 200년 후인 숙종 때 왕위를 다시 찾아 단종이라 하였음. |
7 |
세조(世祖) |
8652-1455 |
13 |
휘는 유. 단종을 좇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국조보감(國朝寶鑑),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을 편찬하고 관제의 개혁으로 괄목할만한 치적을 남김. |
8 |
예종(睿宗) |
8665-1468 |
1 |
휘는 광(胱). 세조의 둘째 아들. 세조 때부터 시작한 경국대전을 완성 시켰음. |
9 |
성종(成宗) |
8666-1469 |
25 |
휘는 혈. 학문을 좋아하고 숭유억불, 인재등용 등 조선초기의 문물제도를 완성함. 경국대전을 편찬함. |
10 |
연산군(燕山君) |
8691-1494 |
12 |
휘는 융. 폭군으로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임. 중종반정으로 폐위됨. |
11 |
중종(中宗) |
8703-1506 |
38 |
휘는 역. 혁신정치를 기도하였으나 훈구파의 원한으로 실패하고 1519년 기묘사화, 신사사화를 초래함. |
12 |
인종(仁宗) |
8741-1544 |
1 |
장경왕후의 소생. 기묘사화로 없어진 현량과를 부활함. |
13 |
명종(明宗) |
8742-1545 |
22 |
휘는 환. 중종의 둘째 아들. 12세에 즉위하여 을사사화, 정미사화, 을유사화, 을묘왜변을 겪음. |
14 |
선조(宣祖) |
8764-1567 |
41 |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16세에 즉위. 이이, 이황 등의 인재를 등용하여 선정에 힘썼으나 당쟁과 임진왜란으로 시련을 격음. |
15 |
광해군(光海君) |
8805-1608 |
15 |
휘는 혼. 당쟁으로 임해군, 영창대군을 역모로 죽이고(계축사화),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패륜을 많이 저질렀으며 한편 서적편찬 등 내치에 힘쓰고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양면 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함. 인조반정으로 폐위됨. |
16 |
인조(仁祖) |
8820-1623 |
26 |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나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격음. |
17 |
효종(孝宗) |
8846-1649 |
10 |
휘는 호. 인조의 둘째 아들.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8년간 잡혀 갔다 돌아와 즉위 후 이를 설욕하고자 국력을 양성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
18 |
현종(顯宗) |
8856-1659 |
15 |
휘는 연. 즉위 초부터 남인과 서인의 당쟁에 의해 많은 유신들이 희생됨. 대동법을 전라도에 실시하고, 동철제 활자 10만여 글자를 주조함. |
19 |
숙종(肅宗) |
8871-1674 |
46 |
남인, 서인의 당파싸움(기사사화)과 장희빈으로 인한 내환이 잦음.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확정함. |
20 |
경종(景宗) |
8917-1720 |
4 |
휘는 윤. 숙종의 아들로 장희빈 소생. 신임사화 등 당쟁이 절정에 이름. |
21 |
영조(英祖) |
8921-1724 |
52 |
탕평책을 써서 당쟁을 제거에 힘썼으며, 균역법 시행, 신무고 부활, 동국문헌비고 발간 등 부흥의 기틀을 만듬. 말년에 사도세자의 비극이 벌어짐. |
22 |
정조(正祖) |
8973-1776 |
24 |
휘는 성. 탕평책에 의거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서적보관 및 간행을 위한 규장각을 설치함.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 활자를 만들고 실학을 발전시키는 등 문화적 황금시대를 이룩함. |
23 |
순조(純祖) |
8997-1800 |
34 |
휘는 공. 김조순(金組淳) 등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시대. 신유사옥을 비롯한 세 차례의 천주교 대 탄압이 있었음.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남. |
24 |
헌종(憲宗) |
9031-1834 |
15 |
휘는 환(奐). 8세에 즉위하여 왕5년에 천주교를 탄압하는 기해사옥이 일어났음. |
25 |
철종(哲宗) |
9046-1849 |
14 |
휘는 변.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황후의 명으로 즉위함. 왕2년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여 안동 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됨. 진주민란 등 민란이 많았음. 병사함. |
26 |
고종(高宗) |
9060-1863 |
44 |
휘는 희(熙).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대원군과 민비의 세력다툼, 구미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에 시달림.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퇴위함. 임오군란이 일어남. |
27 |
순종(純宗) |
9104-1907 |
3 |
이름은 척(拓). 고종의 둘째 아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35년간 치욕의 일제시대를 보내게 됨. 이왕(李王)으로 불림. |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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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원래 왕족이었던 성씨의 종류와 사라지게 된 이유?
[1] 부여의 해씨[解]
북부여 해모수, 동부여 해부루의 해씨는 아마 고구려건국과 고구려의 부여 병합으로 인해
고씨[高]로 흡수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저의 생각이지만,
백제에도 백제 귀족중에 해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제 멸망과 함께 사라졌죠.
아마 현재 백제의 후손이라 자체하는 전씨[全]로 흡수된 것 같습니다.
[2] 고구려의 고씨[高]
사실, 이견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고구려의 후손인 고씨는 현재 지구상에 없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의 고씨는 제주 고씨에서 갈라진 분파입니다. 멸족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백제의 후손들이 대부분 전씨[全]로 남은 것처럼, 고구려의 후손들은 대부분 강씨[姜]로
남았습니다. 제 생각엔 강씨로 흡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두 씨족은 현재 한국에서 각각 100만을 헤아리는 거대 종족이 되었습니다.
현재 모든 全, 姜을 성으로 사용하는 한국인은 모두 백제, 고구려 후손으로 봐야 겠죠.
[3] 백제 부여씨[扶餘]
백제의 왕성인 부여씨는 백제가 망하고 부여 서씨[徐]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4] 신라의 왕성[金, 朴, 昔]
석씨는 비교적 인구가 적지만 신라계 김씨[김해 김씨가 아닌 김씨 대부분]와 박씨를
합치면 천만을 헤아릴 것입니다. 한국의 성씨중 김이박이 거의 절반의 인구를 차지한다고
하니 멸망한 나라 왕족 중에 엄청 번성한 셈이죠. 아마 경순왕 김부가 고려에 귀의하고
고려왕족대우를 받았기에 멸망한 나라의 왕족이지만 번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5] 가야의 왕성 -김해 김씨[金], 김해 허씨[許], 인주 이씨[李], 文
인주 이씨나 문씨는 김해 김씨에서 갈라져 나간 분파입니다.
김해 김씨야 말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끔찍한 초거대 종족입니다.
한 사람[김수로]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후손이 500만을 헤아리는 예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일이죠.
종교가 아니면서 500만의 후손들이 2000년전에 죽은 조상과 1500년전에 망한 나라를
기리면서 김해시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일은 그야말로 특종감이죠.
물론 TIME지같은 외국 잡지에 소개된 적도 많죠. 인류 역사이래로 가장 번성한 왕족이지요.
[6] 고려의 왕성[王]
조선시대의 박해를 피해 김(金), 전(田), 옥(玉)으로 고쳤다고들 전해지지만,
세종대왕시대에 고려왕실의 보존과 고려왕실에 대한 제사를 국가에서 주관하면서
고려왕족에 대한 대우가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때 이렇게 성을 바꾸고 피해다닌 왕씨가 본래의 성으로 환원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전(田), 옥(玉)씨는 왕씨와 무관하다고 봐야 겠죠.
전(田)씨는 중국에선 왕족의 후손입니다. 과거 전국시대 제나라(齊) 왕성이지요.
[7] 후삼국의 왕성[甄, 李]
후삼국시대 태봉국황제 궁예는 신라왕자출신이고,
그 후손들도 각각 광산이씨(光山李氏)로 남아 있습니다.
견훤의 후손으로 견씨[甄]가 있으며, 탤런트 견미리씨가 견훤의 후손이지요.
[8] 발해의 왕성[太]
발해시조 대조영의 후손으로 대씨[大]와 태씨[太]가 현재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씨는 만나본 적이 없고, 태씨는 현재 돌아가신 영화배우 태민영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어른 한병태역]가 있습니다.
[9] 서촉왕[西蜀]의 후손[明, 昇]
중국 원나라말기 중국은 그야말로 혼란의 시대가 됩니다.
흔히 무협지의 배경이 되는 강호의 시대이지요.
그때 과거 유비의 촉한(蜀漢)이 있었던 중국 쓰촨[四川]지방에 "명옥진"이란 사람이
촉나라를 세우고 천하통일을 꿈꿨으나 아들 "명승"이 임금으로 있을때, 동쪽의 영웅
주원장[명태조]에게 패하여 왕족들이 모두 고려로 귀화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이 시조 명승의 성과 이름을 따라 각각 명씨[明]와 승[昇]씨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명씨는 탤런트 명세빈, 명계남씨가 있고, 승씨도 주위에 한 사람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10] 마지막으로 조선왕의 후손
방계 전주이씨는 엄청 번성하였지만
직계 고종과 순종의 후손은 완전 왕따 당한 이상한 종족이지요.
방계로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왕이 되었고,
지금도 대한민국 제2의 종족으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직계 이은씨는 일본에서 돌아가셨고,
이강씨는 전 재산이 몰수 당하고 달동네에서 1970년 비참하게 돌아가셨고,
황손 이구씨는 현재 종묘를 관리하며 종묘제례에세 제주(祭主)의 일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석씨는 먹고살기 위해 가수활동을 하시다가 외국으로 이민가셨고,
현재 귀국하셔서 전주에서 살고 계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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