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어느집 할 것 없이 술을 담가 먹었다.
제사나 명절에는 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 일명 밀주(密酒)가 필수품이었다.
쌀밥이 그리웠던 어린이들은 술을 담그기 위해 쪄낸 쌀밥을 보면
몰래 한웅큼 집어다가 주먹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를 금지시켰다. 식량 자급자족 때문이었다.
면마다 양조장을 하나씩 두어 밀가루 막걸리만 사먹도록 했다.
세무서 단속원이 동네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세무서에서 술치러 왔다”고 소리를 질러 서로 알려주곤 했다.
단속팀은 새벽 또는 밤에 들이닥쳐 집안을 샅샅이 뒤졌고,
술독을 찾아내기 위해 긴 철장으로 온 집안 땅속까지 찔러대기도 했다.
우리의 술담그기 문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다.
고려시대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 고구려 개국시조인
동명왕(BC37~BC19)의 건국담에도 술에 대한 기록이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같은 술빚기 문화는 일제시대 때 시련을 맞았다.
1907년 7월 조선총독부는 수탈과 민족문화 말살의 일환으로 ‘주세령’을 공포했고,
1917년에는 곡물수탈을 위해 술을 담가먹지 못하도록 했다.
이때 다채롭고 화려했던 전통주의 명맥이 많이 끊겼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주세행정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고,
1965년에는 양곡관리법에 의해 쌀을 이용한 술이 전면 금지되었다.
쌀술은 1977년 12월8일부터 허용되었다.
이날은 온 나라에 술잔치가 벌어졌다.
쌀막걸리가 시판되던 날이었다.
이날만큼 술이 많이 소비된 날도 없을 것이다.
올해는 쌀농사가 대풍이라고 한다.
누렇게 변해가는 가을 들녘을 보니 쌀막걸리의 추억이 생각난다.
한서(漢書)의 ‘식화지(食貨志)’가
‘백약의 장(長)’이라 치켜세운 술.
레드와인을 즐기는 프랑스인에게만 유독 관상동맥 질환 발생률이
크게 떨어진다는 ‘프렌치 패러독스’. 적당히 즐기면 ‘약’이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는 술은 원래 잘 마시는 사람과 못 마시는 사람으로 나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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