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의 대명사에서 "셀 위 댄스[Shall we Dance]" 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 유럽 문명의 양대 원류를
흔히 "헬레니즘" 과 "헤브라이즘" 으로 설명하곤 한다.
헬레니즘은 인간성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적 사조가 특징인 반면
헤브라이즘은 신성을 강조하는 신 중심의 사조다.
유럽 문명의 형성 과정은 바로 이 헬레니즘(Hellenism; 개방적, 합리적)과
헤브라이즘(Hebraism; 내성적, 신앙적)이 공존하면서도
상호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은, 신성과 인간성의 투쟁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쾌락도 헬레니즘 시대엔 선이지만 헤브라이즘 시대엔 악" 이 된다.
춤도 마찬가지다.
춤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사회가 두 얼굴을 가지고 변하기에 춤은 대중에게
두 가지 얼굴로 다가왔다.
전통, 권위, 반공과 같은 주의 · 주장이 신성불가침의 가치로 인간성을 억압했던
"일제 · 군사정권 시대엔 춤은 악이자 부정의 대상" 이었다.
반면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개인주의가 강조되는 다양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춤은 "삶의 활력소 이자 긍정적인 대상" 으로 떠오른다.
사교춤… 탄압과 금기로 점철된 "암흑기"
광복과 한국전쟁후 유입된 서구 자유주의 물결은 기존의 전통주의 사조(思潮)와 갈등을 초래한다.
이런 와중에 나온 "정비석의 장편소설 자유부인" 은 격렬한 "춤바람"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54년 서울신문의 연재소설 "정비석의 자유부인" 에서 대학교수의 부인이자 선량한 주부인
오선영이 우연히 만난 남편의 제자와 춤바람이 나고, 유부남과 깊은 관계에 빠져
가정 파탄의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에 우리 사회가 경악한 것이다.
1955년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 는 판결(1심)로
유명한 "박인수 사건" 이 일어나자, 우리 사회는 "춤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을 일으킨다.
훤칠한 외모의 박인수가 고위층 인사의 딸, 유명 여대생 등 70여명의 정조를 유린한 죄로
법정에 섰는데,
그가 여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건 뛰어난 춤 솜씨 때문이었다는 게 알려져서다.
당시 목숨처럼 강조되던 여성의 정조나 사회적인 체면에도 아랑곳없이
"박인수의 현란한 사교춤 솜씨에 빠져들었던 여인들" 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7,000여명의
인파로 재판이 연기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고, 이는 "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 시키는
계기가 됐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후 국민의 군기를 잡는 데 골몰했던
역대 "권위주의 정권은 '사회를 정화' 한다는 명분 아래 시도때도 없이
카바레,
사설 춤강습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 을 펴는 등 "춤을 사회의 악으로 규정" 했다.
1970년대엔 "제비족" 이 모습을 드러냈고,
중동에 진출한 해외 근로자들이 넘쳐나던 1980년대 초에는 커다란 사회 문제로 떠오른다.
제비족에게 전 재산을 털리고 가정이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자,
"중동 근로자들은 '제비족에게서 내 가정 지켜달라'는 눈물의 연판장"을 정부와 언론사에 보냈고,
성남시에선 "중동 근로자의 아내 1,500여명을 대상으로 정절교육"을 실시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인생의 의미 되찾는 삶의 활력소로 "사면 · 복권"
제비족으로 상징되던 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서서히 바뀌는 시기는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다.
제니퍼 그레이와 패트릭 스웨이지의 "환상적 춤이 돋보인 '더티 댄싱(Dirty Dancing)' 이
한국에서 개봉" 한 것도 1987년이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비족" 이라는 용어가 언론에서 차츰 사라지고,
"춤바람의 부작용은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 됐다.
사교춤이 "스포츠 댄스" 로 각광 받으면서 춤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당당해진 것도
이때 쯤이다.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1993년 개봉한 알 파치노 주연의 "여인의 향기" 라고도 할 수 있다.
앞 못 보는 중년 신사인 "알파치노가 탱고 음악에 맞춰 미모의 여배우 게이브리엘 앤워를
끌어안고 춤을 추는 아름다운 모습은 춤을 음지에서 양지" 로 끌어냈다.
2000년 중년 남성의 "아름다운 일탈" 을 그린
"일본 영화 '셀 위 댄스(Shall we Dance)' 는 춤이 그들만의 예술에서 일상의 활력소로
대중에게 한발짝 다가서는 데 한몫" 을 한다.
42세까지 모범적인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스기야마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아내 몰래 춤교습학원을 기웃거리고, 춤의 재미와 부끄러움 사이에 쩔쩔매는
보통사람의 모습에 권태로운 삶에 지친 대중은 적잖이 공감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쉘 위 댄스(춤 한번 추실래요) 열풍" 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춤이 인생의 새로운 활력소로서 당당히 사면 · 복권받는 계기" 가 됐다.
"대학가와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댄스 스포츠' '사교 댄스' 강좌가 급증" 했고,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한번쯤 배워볼 만한 여가생활로 인기" 를 끌게 되었다.
[세계일보 김청중기자/andyc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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