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관

소(牛) ???

기산(箕山) 2008. 6. 11. 02:01
고기와 우유를 얻거나 사역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축화된
소과(─科 Bovidae) 동물.
 
개요
/한우,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
 
성별과 나이에 따라 송아지·황소·암소 등으로 부른다.
무게는 품종에 따라 다른데 성숙한 황소는 450~1,800㎏ 정도, 암소는 360~1,100㎏가량 나간다.
소는 일반적으로 용도에 따라 고기소·일소·젖소 등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경우에 따라 겸용이
될 수도 있다.
형태를 비교해보면 젖소의 경우 전구(前軀)에 비해 중구(中軀)와 후구(後軀)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전구에는 호흡기와 순환기가 있고 중구에는 소화기, 후구에는 생식기와 비유기 및 큰 유방이 있다.
반면 일소와 고기소는 쐐기 모양인 젖소의 체형에 비해 가슴쪽이 크고 후구가 작아서 경쾌한
모양을 하고 있다.
 
목장이나 방목지에서 고기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기를 경우, 일소보다 온순하게 만들기 위해
수컷은 보통 거세(去勢)한다.
일소로 쓰기 위한 수컷일 경우에도 일할 때 다루기 쉽도록 거세한다.
 
현재 모든 축우는 쇼트혼과 저지 같은 유럽 품종이 속하는 보스 타우루스(Bos taurus)나
브라만 같은 제부 품종이 속하는 보스 인디쿠스(Bos indicus), 또한 두 품종 사이의 잡종인
산타거트루디스에 속하는 것이며 변종들은 최근에 생겨난 것이다.
 
품종이란 말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정의 내리기가 어렵고 애매하다.
이 말은 흔히 독특한 색깔이나 크기·형태·기능을 갖도록 오랫동안 선발육종한 동물들을 가리키며,
이같은 특징들은 후대에도 계속 전해진다. (표 참조).
 
도표 (소)

한국의 소
BC 200~100년경부터 한반도에서 사육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고유의 소인 한우
농경 및 수송 등에 사용되어온 일소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 전파경로
고대 문명국은 일찍부터 소를 이용했는데 중국의 경우는 BC 2200년, 인도는 BC 2500년,
메소포타미아는 BC 4000~3500년이며 한국에는 1,800~2,000년 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전파경로에 대한 학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원산지인 중앙 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한국에 도달했다는 슈테그만의 설,
시베리아 가우를 순수한 원우로 보는 오크리치의 설,
중국·일본·한국의 소를 남아시아 계통의 소로 보는 켈레르의 설 등 다양하다.
여러 역사적 기록에도 나타나 있듯이 부여나 삼한시대에도 소를 사육했으며
이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전파되어 내려온 것 같다.
 
김해의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소의 이빨은 사육연대를 BC 200~100년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유입된 경로는 확실지 않다.
또 한우는 고고학적·문헌적 여러 자료를 기초로 할 때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때 소뿐만 아니라 가죽다루기, 우유 이용 등 소의 생산물 이용에 대한 방법도 전해졌다.
 
■ 이용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농경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소는 주로 농사를 짓는 데 이용되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고대에는 제사에서 희생용 또는 점술용으로 사용되었지만
지리적으로 한문화(漢文化)의 영향을 덜 받은 남쪽지방에서는 목축과 어로업보다는
미약하게나마 농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신라시대 502년(지증왕 3)에는 소를 이용한
우경(牛耕)을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경의 발달은 소와 관련된 농기구의 발달을 가져왔는데
〈삼국사기〉를 보면 백성들이 우차법을 이용하여 수레를 끌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소에 매달았던 쟁기 등 우경의 부수품 또한 발달하게 되었고
우경을 하면서부터 농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력 경작농구에 의존하던 농업이 소를 이용함으로써 보다 넓은 면적의 농지를 경작하고
인간이 하지 못했던 효율적인 밭갈이를 하여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러한 소의 이용이 동력기계의 발달로 점점 줄어들게 되었으며
식생활의 변화로 육용을 목적으로 한 소의 소비가 증가되어 일소에서
고기소로의 개량과 더많은 수의 소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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