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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맛을 찾을 필요 없는 국산 맥주, 헹굼용 술 인식.. 맛나게 안 만들어"
[경향신문] 배문규 기자
입력 2019.08.26. 21:36
ㆍ술 빚는 법 20년 강의한 허원 교수, '음주 탐구생활' 출간
ㆍ우리 술의 중심 소주, 자극적 한국음식 곁들여 먹어 '무향'
ㆍ전통주, 옛 문헌 복원에 그쳐… 생산·유통 '산업화' 고민을
소주는 왜 한국 술 문화의 중심이 되었을까.
'정설'처럼 돼버린 한국 맥주가 맛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에서 전공과목으로 술 만드는 법을 20년 넘게 가르친
허원 강원대 생물공학과 교수(58)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담은 책 <지적이고 과학적인 음주 탐구생활>을
펴냈다.
허 교수는 책 표지에
'인문학'보다는 '입문학'이 어울린다며 겸양했지만,
문화부터 산업까지 술에 대한 깊고 넓은 지식을 담았다.
26일 경향신문사에서 그를 만나 방대한 술 지식에 대해 들어봤다.
독자들이 제일 궁금할 내용은 역시 우리네 술상을 지배하는
소주와 맥주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한국인의 연간 소주 소비량은 70~80병. 연간 1병꼴인 와인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많다.
일본에선 사케 외에 맥주가 첫손에 꼽히고 중국에선 와인이
3등까지 올라왔다는데, 유독 한국에서 소주가 절대강자인 이유는
무엇일까.
허 교수는 '저녁 회식 자리'를 꼽았다.
"무향 소주가 우리 술의 중심이 된 이유는 산업화와 함께 달려온
지난 반세기 동안 형성된 집단음주 문화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어울리는 한국 술 문화에서 맛이 중립적인 데다
값까지 싼 소주가 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달게도 쓰게도 느껴지는 '소주의 맛'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비밀은 앞서 먹은 음식에 있다.
우리 혀에 맛을 감지하는 세포에는 단맛과 쓴맛을 느끼는 수용체
단백질이 있는데,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에 따라 반응하는 수용체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고추냉이를 찍은 회를 먹으면 쓴맛 수용체가 마비된 상태에서
알코올이 들어가서 단맛 수용체를 자극하기 때문에 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 통각을 자극하는 매운 음식을 먹은 다음에 통각을 자극하는
알코올로 씻어내면 기분 좋은 자극을 받게 된다.
현대 한국 음식과 소주가 찰떡궁합인 셈이다.
허원 강원대 생물공학과 교수가 2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적이고 과학적인 음주탐구생활>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국산 맥주에 대해선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허 교수는
"국산 맥주는 맛이 없다기보다는 맛이 약한 맥주"라면서
"쓴맛과 몰트 향은 적지만, 청량감이 장점인 페일 라거 계열
맥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싱겁지만, '소맥'에 어울린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이러한 맥주 맛의 이유는 산업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 1위인 OB맥주는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AB인베브 소속이다.
허 교수는
"사업포트폴리오에서 한국 맥주는 안정적인 '캐시카우'이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맛을 찾을 필요가 없고,
다른 맛이 필요하다면 수입맥주로 수요를 충족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서양은 거품이 풍성한 맥주를 좋아하는데,
맥주 거품은 기름이 닿으면 사라지게 된다"면서
"한국에선 '치맥'이라는 조합에서 보듯 맥주가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내는 헹굼 술"이라고 말했다.
책에선
인류 탄생 이전부터 동물들이 마신 술이 유인원과 현생인류를 분기시키고,
오늘날 문명을 이루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알코올 의존성이 유인원을 적극적인 채집활동에 나서게 하고,
인간의 식품의 저장이나 교역에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런 술이야기로부터 시작한 책의 구성은
와인-맥주-발효주-증류주의 순서로 이어진다.
술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뒤로 갈수록 제조방법이 복잡하며 발명 시기도 늦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고급술의 대명사인 와인의 기본 제조원리는 '으깨서 발효'하는 것뿐이다.
1995년부터 강단에 선 허 교수의 실제 연구분야는 '발효공학'이었다.
24년 전 '양조공학' 과목을 처음 맡은 뒤 일본식 제조에 대한 얘기만
있는데 답답함을 느껴서 정보를 하나둘 모은 게 책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한국 전통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쓴소리를 했다.
"과거 의복을 고증해 재현해도 현대사회의 일상복이 되기 어려운"
것처럼 현재 전통주가 과거 문헌을 복원하는 단계에 그치는 데 대한
아쉬움이다.
그는
"오늘날 한복은 바느질이 아니라 미싱으로 만들지 않냐"며
"현대사회에 맞춰 생산부터 유통까지 산업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대주가'보다는 '애주가'에 가깝다.
술을 가르치는 교수지만,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라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술은
1980년대 영화 <그렘린>에 나온 작은 괴물같다고 했다.
"술과 잘 지내면 귀여운 친구이지만, 잘못하면 무서운 괴물로 변합니다.
알코올 자체는 원래 독인데 우리 몸에 해독하는 능력이 있을 뿐입니다.
술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수준으로 마시는 것이 가장 기본원칙이겠죠.
그다음에는 회식, 혼술, 파티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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