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5월 15일은 대한민국의 제3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로서
국민이 직접 뽑아 후보자 중 최다 득표를 하는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는
직선제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후보자는 2선대통령인 자유당의 이승만(李承晩)과
민주당의 신익희(申翼熙)무소속의 조봉암(曺奉岩)등 3명이었다.
여론으로 볼 때 조봉암은 당선권에서 멀어 졌고
이승만과 신익희 두사람의 싸움이었다.
신익희는 1956년 5월2일 선거를13일 앞두고
지금의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 백사장 유세에서
그 유명한 슬로건<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들고나와
담박에 국민들의 가슴속을 파고 들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인구 150만명에 총 유권자수는 70만명이었는데
30만명이 한강 유세에 운집했다.
사실 이때 까지만 해도
영(嶺).호(湖)남 지역의 지역감정이란 말 자체도 없었거니와
<라도>니<보리문둥이>따위의 속어들은 찾아 볼 수 없다.
여기서
<보리문둥이>라고 하는것은 우리 안동지방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전라도 사람들의 경상도인을 부르는 속어이고
<라도>라함은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을 부르는 속어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중
보수층에 있는 사람은 이승만을
개혁적인 사람들은 신익희를 지지 했다.
그야말로 지역과는 관계없이 후보자의 성향에 따라 지지하는
추세로 가고 있었다.
당시 국민들로 부터 외면 받아온 이승만 정권은
신익희의 파죽지세 등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현대사에서 <박정희><김대중><김영삼><전두환>의 이름은
희미해 졌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뜻데로 되지 않는 게 역사이고
천력(天力)에 따라 흘려가는게 역사이다.
신익희는 1956년 5월 5일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두고
호남지방 유세를 하러 호남선 기차를 타고 가던중 강경 근방에서
열차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심장마비로 서거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던 구호는
이승만의 승리로 꼬리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때마침 1956년 발표된 <비내리는 호남선>이라는 노래는
충격에 빠진 국민들이 마치 추도곡처럼 애창했다.
그 바람에 이 노래를 부른 손인호(본명 손효찬)는
한낱 영화녹음기사에서 이 노래 한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비내리는 호남선 / 하춘화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다시못올 그날자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내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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