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꽃' 아닌 무궁화, 20대 국회에선 공식 '국화' 될까
경향신문 박주연 기자
입력 2016.07.22. 22:00 수정 2016.07.22. 23:19
ㆍ“무궁~화, 무궁~화, 우~리 나라꽃”인 줄 알았나요?
ㆍ16~19대 이어 ‘국화 공식 지정’ 법안 발의
“부적격”
·38선 이남에 주로 피어 지역적으로 한정
·원산지가 인도인 외래 식물…자생 식물을 국화로 삼아야
·꽃 송이로는 하루살이…진딧물 많아 청결하지 못해
“무궁화는 좋은 꽃이나 굳이 다른 꽃을 국화로 삼는다면 개나리를 추천하고 싶다.”
“적격”
·캐나다에서도 피므로 이북도 불가능하지 않아
·이미 토착화된 식물로 원산지 따질 이유 없다
·100일 동안 한 나무서 수천송이 피고 지는 ‘생명력’
“오랜 세월 민족과 동고동락 반일 지식인들에 의해 우리 민족 상징하는 꽃으로 부각돼”
“무궁화는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과 깊은 연고를 가지고 있으며 애환을 함께 겪었다.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법으로 제정해 존엄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무궁화는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고 진딧물이 많아 지저분하며 봄에 피지 않는 데다
국민 선호도도 떨어진다. 이참에 어느 꽃이 나라꽃으로 적합한지 논의가 필요하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국화(國花) 인식 조사 결과를 보도한 1964년 2월12일자 경향신문.
무궁화가 국화(國花)로 적합한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됐다.
많은 사람들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알고 있지만 법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난달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이 무궁화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화로
공식 지정하자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면서 무궁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무궁화를 국화로 지정하는 법안은 16~19대 국회에서도 8건이나 제출된 바 있다.
하지만 법안의 복잡성과 예산문제 등에 막혀 별다른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 무궁화는 국화로 적격한가
무궁화 국화 논쟁은 해방 이후부터 끊임없이 불거진 해묵은 주제다.
1956년엔 신문지상을 통해 지식인들의 논쟁이 격화되기도 했다.
무궁화 부적격론을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화훼연구가 조동화씨는 1956년 2월3일자 한국일보를 통해 무궁화가 국화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무궁화는 38선 이남에 주로 피는 꽃으로 황해도 이북에서는 심을 수 없는 지역적 한정성이 있다.
둘째, 원산지가 인도이므로 외래식물이다.
셋째, 진딧물이 많아 청결하지 못하고 단명한다.
넷째, 모든 꽃들이 움트는 봄에도 피지 않고 품(品·품격)도 빈궁하며 가을꽃 중에서도 제일 먼저 시드는
실속없는 식물이다.
며칠 후인 8일자 조선일보에 식물학자 이민재씨가 조씨 의견에 적극 동조하는 글을 실었다.
그러면서 국화의 전제조건으로
△ 한국 원산종으로 민족을 상징할 수 있을 것
△ 꽃 모양과 이름이 아름다울 것
△ 민족과 더불어 역사적 애환을 함께했을 것
△ 되도록 다른 식물보다 이른 계절에 필 것 등을 제시했다.
이씨는
“어느 모로 보든지 진달래가 가장 알맞다”고 주장했다.
“진달래야말로 품격이 담담하고 청초한 느낌을 주는 것이 좋고 봄이 되면 다른 식물들이 잠자고 있는 사이
마치 선구자처럼 제일 먼저 찬바람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부지런함이 좋다”고 했다.
당대 시인이자 언론인, 정치인이었던 주요한 선생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무궁화가 대단히 좋은 꽃이지만 결점이 없는 것도 아니니 굳이 무궁화 대신 다른 꽃을 국화로 삼는다면
진달래보다 개나리를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진달래는 정열적인 대신 번뇌상(煩惱相)이 있는데 개나리는 오직 명랑하고 쾌활한 것이 좋고,
한 가지에 줄줄이 종기종기 의좋게 피어나는 것이 우리에게 합심협동의 정신을 가르쳐 주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염도의·류달영 등 서울대 농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반론도 거셌다.
염도의 교수는
“기록상으로도 1000년 이전에 이미 자생하고 있음이 드러났으며
우리나라는 근역(槿域·무궁화가 많은 땅), 근화향(槿花鄕)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또 원산지를 구분할 수 있는 옛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이미 토착화된 식물이기 때문에 원산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류달영 교수는
“캐나다와 같은 위도에서도 꽃이 훌륭하게 피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38선 이북이라고 불가능할 것도 없다.
진딧물도 초봄에 살충제로 한두 차례만 뿌려 방제해주면 흠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1964년 2월 경향신문은
교수, 역사학자, 정치가, 문인, 미술가, 음악가 등 100여명의 당대 오피니언 리더를 상대로
국기(國旗), 국가(國歌), 국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10~12일자에 연달아 공개했다.
국화에 대한 설문은
‘무궁화를 우리의 국화로 좋게 생각하는지’와 ‘좋지 않다면 달리 어떤 꽃으로 선택했으면 좋겠는지’였다.
그 결과 응답자의 54%가 국화를 새것으로 바꾸자고 했고, 42%만이 무궁화를 국화로 하자고 했다.
국화를 바꾸자는 이들 중 48%는 진달래를 새 국화로 선택했다.
그 외 선호한 꽃은 배꽃, 들국화, 도라지꽃, 동백꽃, 연꽃, 철쭉, 국화 순이었다.
무궁화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식물분류학회장인 최병희 인하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이 3500종이나 되는데 굳이 (외래종인) 무궁화를 국화로 삼아야 하는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개나리, 철쭉, 진달래 등 우리나라 자생식물로 일찍 피고 흔하며 사람들에게 친근한 꽃을
국화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 교수는
“통일이 되면 남북이 다시 논의해야 할 사안이므로 지금 당장 국화를 바꾸거나 법제화하는 것은
보류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무궁화는 국민 선호도도 낮은 편”이라면서
“기왕이면 많은 국민이 사랑하는 꽃을 국화로 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무궁화: 무궁화는 어떤 꽃인가?> 저자이기도 한 송원섭 전 산림청 임업연구관과
박형순 산림청 무궁화포럼 회장은
“무궁화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동고동락하면서 국화로 인식돼온 꽃을 굳이 다른 꽃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송원섭씨는
“무궁화는 잘 관리만 하면 100일 동안 한 나무에서 수천 송이가 피고 진다”며
“그런 생명력으로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킨 꽃”이라고 말했다.
박종욱 서울대 교수도
“역사성이 있는 것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 구한말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부각
무궁화는 아욱과에 속한다.
학명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신 히비스를 닮은 꽃’이라는 뜻이다.
뒤에 붙는 시리아쿠스는 원산지가 중동의 시리아임을 뜻한다.
하지만 지금은 동아시아 일대를 원산지로 보고 있다.
인도와 중국에는 자연 상태의 집단 자생지가 있지만 한국에선 발견되지 않아
대다수 식물학자들은 귀화식물로 본다.
무궁화는 영어로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인데,
이를 두고 일부 기독교인은 이 꽃이 예수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구약성서 ‘아가’에 “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이로다”라는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무궁화가 피는 시기는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정도.
하지만 꽃 하나하나로 치면 하루살이다.
이른 새벽에 피어나서 12~15시간 정도 지난 후 꽃잎을 다시 오므리면서 떨어진다.
대신 다음날 또 다른 꽃들이 피어난다.
이를 두고 일제 침략 등 숱한 수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속 떨쳐 일어난
우리 민족을 닮았다고 해석하는 이가 많다.
우리의 옛 문헌에는 무궁화가 주로 한자 이름인 근(槿) 또는 근화(槿花) 등으로 등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두 딸인 박근혜, 근령씨 이름에 무궁화 근(槿)자를 썼다.
무궁화라는 이름이 처음 기록된 것은 고려 후기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이다.
제14권의 고율시(古律詩)에서 문장노와 박환고가 각기 근화(槿花)의 이름을 두고 논하는데
한 사람은 “무궁화는 곧 무궁(無窮)의 뜻이니 꽃이 끝없이 피고짐을 뜻함”이라 했고,
또 한 사람은 “무궁은 곧 무궁(無宮)이니 옛날 어떤 임금이 이 꽃을 사랑하여 온 궁중이
무색해졌다는 것을 뜻함”이라 했다.
이후 조선 세종 25년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한글로 ‘무궁화’라는 명칭이 표기되기 시작했다.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인식되고 굳어진 계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구한말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반일 지식인들에 의해 무궁화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부각됐다고 전해진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할 때마다
“우리 무궁화 동산은…” 하고는 주먹을 불끈 쥐고 연단을 내려치곤 했다고 한다.
영국민요 ‘올드 랭 사인’의 곡에 맞춰 불리던 애국가의 후렴이 널리 퍼지면서 일제가 무궁화 박해를 했고,
이것이 무궁화의 가치를 드높였다는 주장도 있다.
조동화씨는
‘무궁화 국화 부적격론’을 주장한 1956년 2월3일자 한국일보 칼럼에서
“무궁화가 국화로 여겨지게 된 것은 갑오경장 이후 구미의 신문화가 이 땅에 밀려오면서
오얏꽃(李花)의 이조(李朝)왕조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었으며,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무궁화 재배를 공공연히 방해하고 ‘눈에 피꽃(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이라는
터무니없는 모함까지 하는 바람에 무궁화는 오히려 ‘국화라는 명예로운 위치’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썼다.
애국가 작사가로 유력시되고 있는 윤치호가
기독교인이어서 예수를 상징하는 꽃인 무궁화를 넣어 노랫말을 지었다는 설도 있다.
■ 보급운동에도 벚꽃나무에 밀린 무궁화
무궁화는
백단심 등 115종에 달하는 국내 품종과 블루 버드(Blue bird) 등 104종의 외국 품종이 있다.
1991년 산림청은 이 중 ‘단심을 지닌 홑꽃’이 우리나라 전통 무궁화라고 결론지었다.
즉 기본꽃잎 5장의 중심부에 단심과 우뚝 솟은 수술통을 갖춘 형태를 말한다.
그러나 꽃잎의 색에 대해서는 결론을 못 내리고
‘백단심계(흰 꽃잎)’ 또는 ‘홍단심계(분홍 꽃잎)’라고만 정했다.
정부는 1982년 ‘무궁화 보급계획’을 세우고 1983년부터 2001년까지 20년 가까이 3129만본을 심었다.
그러나 관리 소홀로 2014년 말 겨우 281만본만 생육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궁화에 대한 국민 선호도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국민의식 조사 결과 무궁화 선호도는 2006년 3위에서 2015년 8위로 떨어졌다.
지자체의 무궁화 가로수 식재비율도 계속 떨어져
2015년 말 기준으로 전국의 가로수 총 678만본 중 무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5.2%(35만6000본)에 불과하다.
정부부처가 들어선 세종시에 심은 가로수 중 무궁화는 1000본에 그쳤지만
벚나무는 그 15배인 1만5000본에 달했다.
무궁화 예찬론자들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무궁화를 국화로 공식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형순 무궁화포럼 회장은
“법제화가 되면 관리도 더 잘하고 국민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 각국의 국화·
북한의 국화는 ‘함박꽃나무’
·일본은 벚꽃과 국화
·중국은 모란서 매화로 바꿔
북한 함박꽃
북한의 국화는 함박꽃나무, 일명 ‘산목련’으로 북한에선 목란(木蘭)으로 부르고 있다.
황해북도 사리원시 경암산, 상매산, 정방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1964년 5월 김일성이 사리원의 중앙식물원을 시찰하면서 관심을 표명한 것이 계기가 돼
1991년 4월 국화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목란이라는 명칭도
꽃이 난(蘭)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김일성이 ‘나무에서 피는 난(蘭)’이라는 뜻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미국과·영국·불가리아·이라크 장미
미국과 영국, 불가리아, 이라크의 나라꽃은 ‘장미’다.
미국은 아예 장미가 국화임을 법제화했다.
영국의 경우 장미는 원래 왕실 휘장이었다.
일반 국민들도 좋아해 많이 재배하면서 국화가 됐다고 전해진다.
불가리아는 세계적인 장미의 나라다.
장미의 도시 카잔락은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장미오일 중 70~80%를 생산하고 있다.
불가리아의 국화가 장미인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이슬람에서 장미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래서 이라크 국민은 장미를 신성한 꽃으로 추앙한다.
일본 벚꽃
중국 매화
프랑스 아이리스
일본의 나라꽃은 벚꽃과 국화(菊花)다. 국화는 일본 황실 문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우표와 화폐 등에 국화가 널리 사용되면서 벚꽃과 더불어 나라꽃이 됐다.
중국은 원래 모란이 나라꽃이었으나 1929년 매화로 바꿨다.
캐나다와 프랑스의 국화는 각각 단풍나무 일종인 사탕단풍과 붓꽃의 일종인 아이리스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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