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수호신 미륵불 돌려주세요"..서산주민들의 기도
연합뉴스 입력 2015.07.10. 10:16
(서산=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1980년 밀매 뒤 "호암미술관에 있다" 주장에 본격 회수운동
충청남도 서산 해미읍성의 동서남북 사방비보(四方裨補) 가운데 하나로,
주민들 몰래 팔려나간 산수리 돌미륵(돌장승)이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내 호암미술관 정원에 서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주민들이 이 돌장승을 돌려받기 위해 너나없이 나서고 있다.
미륵불을 되찾아 와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호암미술관에 있는 미륵불 사진을 들고 다니며 주민들의 흐려진 기억을 되살려 증언을 채집하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타지로 떠난 옛 동료를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술관에 차를 타고 갈 때 옛날 기억을 떠올리면서 '미륵 등이 불룩 튀어나와 있다'는 말을 했는데,
가서 보니까 실제 그랬지.
미륵 얼굴은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등 쪽은 맞는 것 같아."(산수리 전 이장 김기돈 씨)
"그 돌미륵 주변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았고, 그 돌미륵에서 가까운 부락에서 47년을 살았어.
사진을 보니까 어릴 적 미륵이 거의 틀림없어."(산수리 주민 강현상 씨)
"어릴 적 황락리 친구들은 자기네 부락 미륵이 더 잘생겼다고 했고, 우리는 산수리 미륵이 더 잘 생겼다며 서로 다퉜지.
지금 생각해도 앞턱이 너부죽한 산수리 미륵이 더 잘생겼어. 사진 속 미륵이 거의 일치해."(인지면 주민 이천희 씨)
주민들이 이런 증언을 수집하는 것은, 이들 증언이 호암미술관에 있는 미륵불이 산수리에서 밀매된 미륵불이라는
'증거'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강현묵 산수리 이장은 10일
"지난 5월 서산시청 문화재 관계자와 함께 호암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미술관 측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돌미륵이 산수리에서 몰래 팔려간 돌미륵이라는 증거로
돌미륵 전면 사진과 사진 속 인물이 생존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며
"사진을 찾기가 어려워 증언과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증언과 서명을 받기도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동의 없이 돌미륵을 팔아먹은 이들도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에게만 기억을 떠올리라고 닦달할 것이 아니라, 호암미술관 측이
문제의 미륵불을 매입한 경위를 명명백백히 밝히면 될 일이라고 말한다.
당시 일을 기억하는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채두석 옹(81)은
"호암미술관 측을 상대로 미륵불을 입수한 경로를 조사하면 좋겠다"며
"그쪽도 입수 경위를 밝힐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진을 찾는다는 말에 그는
"당시 마을에 사진기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524년 전 해미읍성 축조 당시(성종 22년, 1491년) 세워졌던 문제의 돌미륵은
1960년대 시작된 저수지 공사가 완공될 즈음 침수됐고, 이를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해 끌어올려
'아리랑 고개'에 세워뒀으나 1980년께 갑자기 사라졌다.
이장 등 '개발위원회' 위원 15명이 모의해 이 미륵불을 팔아먹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경찰 조사를 받았고,
마을 주민들 몰래 미륵불을 판 개발위원들은 새 미륵불을 세우는 조건으로 처벌을 면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미륵불이 일본으로 팔려갔다는 말까지 나돌았고, 20만원을 받고 팔았다는 설도 있었다.
현재 산수리 길목 옆 들판에 세워져 있는 돌미륵은
팔려간 산수리 미륵과 흡사한 황락리 미륵불을 본 떠 새로 만든 것으로,
주민들은 산수리 미륵불이 없어진 해나 이듬해 또는 1984년 세워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증언을 들을 때 갖고 다니는 호암미술관 미륵불 사진은
장승 전문가인 황준구 씨가 찍어 보내온 것이다.
황 씨는 5년 전 호암미술관 돌미륵을 목격하고 이 돌미륵이 산수리에서 없어진 것이라고 확신하고,
지난 5년간 서산시청에 매년 제보해 왔다.
그는
"관계기관이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이제라도 당시 미륵불 밀매 사건 관련자들의 증언을 청취해
증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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