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관

이미자 論

기산(箕山) 2014. 2. 12. 21:17

이미자 論

 

가요계에 40년 넘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가수는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수들이 흐르는 세월따라 목소리도 늙고 낡고 변하게 마련인데,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가 있다.

 

「국민가수」, 「엘 레지의 여왕」, 「백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 등

이름 앞에 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어,  살아 있으면서도  이미 기념비가 되어버린

가수 李美子(이미자)가 그 경우이다.


[1941년10월30일생 서울출생 문성여고졸 1959년 라화랑씨의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

 

그 나이 그 경력쯤 되면, 복고 취향의 사람들에게 흘러간 노래나 불러 시 름을 달래주는 것이 제대로 된 역할인데,

李美子는 아직도 현역을 고집한다.

 

무대 뒷전에서 기다리다가 양념으로 불려나오기를 거부한다.

그의 목소리 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고, 그의 노래는 여전히 절절하게 심금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그 노래의 생명력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래의 생명력은 당연히 목소리에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얼굴만큼 이나 모두 다르다.

색깔이 다르고 맛이 다르고 깊이와 폭이 다르다.

부모로 부터 타고난 자원이 7할이라면 나머지 3할쯤은 스스로 갈고 닦아서 맛과 빛 깔을 내야 하는 부분이다.

 

李美子의 노래가 비정한 세월의 부대낌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것은 필시 그 목소리에 비밀이 있을 것이다.

李美子의 목소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李美子를 아는 사람, 예컨대 작곡가나 음악평론가 등이 「李美子의 목소리 」라는 말머리를 꺼냄과 함께

제일 먼저 나오는 대답은 「타고난 목소리」 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의 신비를 푸는 키워드였다.

 

작곡가 鄭豊松(정풍송·61)씨는 「듣기에 편하다」는 표현을 골랐다.

 

『사람의 목소리는 저음에서  고음까지 일정한 한계가 있어 이를 音域(음역)이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높은 음은 잘 내나 낮은 음의 영역에 가면 힘들어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낮은 음은 잘 내지만 높은 음은 잘 내지 못해요.

 

예를 들면 남일해는 低音이 매력인데 이는 그가 낮은 음을 잘 내기 때문입니다.

낮은 음을 잘 내는 사람이 높은 음을 내려면 목소리가 변하여 빽빽거리게 됩니다.

그러면 아주 듣기 싫은 소리가 나오고, 듣는 사람이 괴롭거나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李美子씨의 목소리는 보통 사람들보다 음역이 아주 넓어요.

웬만한 低音이나 高音은 모두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음역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李美子씨가 아주 낮은 음을 내거나 반대로 높은 음을 내더라도 사람들의 귀에는 그게 자연스럽게 들리는 겁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억지로 짜내지 않았다는 것인데 억지로 짜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귀에는 李씨의 노래가

편하게 들리는 겁니다.

듣기에 편한 노래, 이게 李美子 노래의 생명력입니다』

 

鄭씨의 말대로 하면

「듣기에 편한 노래」는 「자연스러운 발성의 노래」이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억지로 짜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흔히 고운 목소리를 말할 때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고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한두 번 들을 때는 좋지만  여러 번을 들으면 싫증이 난다.

 

李美子의 목소리는 40년을 들어왔지만 싫증이 나지 않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李美子의 노래는 듣기에 편하다.

 

그 이유는 假聲(가성)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즉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꾸미지 않고도 듣기 편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 이것이 李美子 노래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鄭씨의 증언에 따르면 李美子가 지닌 그 모든 능력의 비밀은 역시 「타고났다」는 한 마디로 압축된다.

 

음악대학의 교수로서는 처음으로 대중음악 가수인 李美子를 놓고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한

박종문 교수(효성가톨릭대학 작곡과)는 그의 논문 「대중가 수 李美子를 생각한다」에서

「음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이라는 방법으로 李美子 목소리의 비밀을 캐려고 시도한다.

 

박교수의 현상학적 기술이라는 것은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대로 느낌과 인상을 그려보는 방법이다.

李美子뿐만 아니라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들의 목소리에 대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좋다』 『아름답다』고 찬탄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서는 변 별력이 없다.

작곡가 박종문 교수의 귀에 들린 李美子 목소리는 좀더 구체적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선 가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 가늘음은 날카로움이나 뾰족함이나 폭이 좁음으로 연결되는

가늘음이 아니라 부드러움과 끈끈함과 윤기 있는 폭넓음으로 이어지는 가늘음이다.

李美子의 목소리는 그러한 가늘음의 이미지를 통하여 음으로 양으로 수난당하고 짓밟히는 전통사회속 여성의 처지를

매우 뚜렷하게 상징적으로 그려보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박종문 교수의 논문 「대중가수 李美子를 생각한다」에서)

 

『만일 李美子의 목소리가 패티김의 그것처럼 풍부하고 넓으며 강력한 것이었거나 한국의 티나 터너,

영혼의 리듬 앤 블루스 가수인 한영애의 소리처럼 탐미적이고 자극적이며 도전적이었다면 李美子는

이미 李美子이기를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李美子 목소리의 특징을 「가늘다」는 것만으로 한정하기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 때문에 朴교수도 부연한다.

 

『李美子의 목소리는 단순히 가늘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가늘기는 하되 비단같이 고운 소릿결을 지니고 있다.

물레에서 실이 뽑혀져 나오듯이 곱게곱게 이어져 나오는 소리, 李美子의 이런 소리를 두고 평론가들은 말했다.

일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美聲(미성)이라고.

 

벨칸토(18세기 확립된 이탈리아 가창기법) 소프라노만 성악인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말에 피식 웃고

고개를 돌릴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왜냐하면 나도 바로 몇 년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니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자랑같지만 마리아 칼라스와 김소희 여사와 李美子 여사의 노래에 똑같이 감동받고 있다』

 

그래도 역시 의문은 남는다.

「비단결 같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사람들이 40년간 한결같이 그 목소리를 사랑해 왔고,

앞으로도 사랑하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李美子 목소리보다 더 비단결 같은 목소리는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곧 싫증이 난다.

李美子 목소리는 싫증이 나지 않는 어떤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朴교수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李美子씨의 목소리는 결코 굵고 화려하고 강력하고 풍성한 종류의 소리가 아닌 것은 분명해요.

강력하고 풍부한 소리는 승자와 지배자의 이미지를 수반합니다.

이런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시원하고 화려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에요.

벨칸토 테너 가수의 화려한 이탈리아 민요를 들어보세요.

그 노래를 듣고 있을 때는 정말이지 상쾌하고 밝고 시원하며 신나는 느낌이 들지만 노래가 끝난 뒤에는 그야말로 끝입니다.

그 끝의 느 낌이란 허탈하기조차 합니다. 그런 노래는 마치 정리되고 평정된 듯한 느낌이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정리되고 평정된 듯한 느낌」의 노래는 듣는 사람의 정서를 압도하기 때문에 가슴에 남는 여운이 없다.

李美子의 노래는 반대다. 여운이 있다. 그것도 아주 질기고 섬세하게.

박교수는 그 여운의 정체를 이렇게 설명했다.

 

『李美子씨의 노래는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잔잔한 물결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결은 어떤 깊이와 호흡을 가지고 신중하게 찬찬히 일구어진 물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결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그 때문에 李美子씨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애잔한 느낌으로 남는 거지요』

 

애잔한 느낌,

그것은 우리 대중가요의 주류를 이루었던 트로트 가요의 내용이 대부분 슬픈 내용이었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이별, 그리움, 외로움, 방황 등 전반적으로 슬픔을 용해, 표출하고 있는 트로트 가요의 내용을 가장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목소리는 강하고 웅장한 색깔과 울림을 지닌 목소리가 아니라 애잔하고 가늘고 긴 여운을 지닌

목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李美子의 목소리는 타고난 것이었고, 그 타고난 목소리가 트로트라는 양식과 만나

絶唱(절창)을 만들어 냈다고 보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평가다.

 

李美子의 목소리가 「타고난 목소리」라는 증언은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먼저 李美子씨 본인의 회고다.

 

『어릴 때 아버지의 친구분들이나 동네 어른들이 저에게 노래를 시켜놓고 「너무 잘 부른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어른들의 노래를 어른들 보다 더 구성지게 불러 감동을 준 모양이에요. 타고났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러나 당시 어른들 중 누구도 그 아이가 「엘레지의 여왕」으로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가수가 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본인도 막연하게나마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꿈은 꾸었겠지만, 

자신이 「백년에 한 사람 태어날까 말까 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여고 2학년 시절, 李美子는 한 방송사가 주관하는 가요 콩쿠르에 나가 가수로서의 삶에 첫발을 내딛는다.

이때 심사위원석에서 李美子 목소리의 「천재성」에 놀라 그녀를 가수의 길로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작곡가 겸 음악평론가로 활약해 온 가요계의 원로 黃文平(황문평·80)씨다.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TV 방송인 HLKZ가 방송을 시작했는데 나는 편성과장이었어요.

1957년 연말에 「예능 로타리」라는 프로의 연말 결선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내 밑에 일하던

AD(Asistant Deiector:보조 PD) 한 사람이 「과장님 어린 여자 하나가 기똥차게 노래를 잘 부르는데

아마 이번에 입상하게 될 겁니다」 그래요.

노래 잘 부르는 애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므로 그저 그런 애가 있겠거니 했지요.

 

마침내 연말 결선대회를 하는데 심사위원은 테너 오현명씨와 김상두씨, 그리고 나 셋이서 맡았지요.

거기 李美子가 결선에 올라온 거예요. 李美子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발머리에 까만색 싸구려 운동화를 신은 여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는 하지만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여학생이 노래를 부르는데 「아, 이것이 노래라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심사를 하고 있던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습니다.

「이거다」 하는 느낌이 세 사람의 귀와 가슴을 동시에 쳤던 겁니다』

 

 黃文平씨가 그때 받았던 李美子 목소리의 느낌과 맛은 「완벽에 가까운 목 소리」라는 것이었다.

 

1964년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 아가씨」의 주제가를 작곡하여 그 노래를 부른 李美子와 함께

작곡가로서 일생을 통해 가장 큰 분수령에 올라버렸던 白映湖(백영호·61)씨의 「李美子論」도

『타고났다』는 말밖에 다른 형용사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李美子의 목소리는 기름이 자르르 흘러요.

목소리 자체에서 천부적으로 나는 맛이기 때문에 그 어떤 다른 가수도 흉내를 낼 수 없고,

대역을 할 수가 없는 李美子만의 장점이지요.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것은 어떤 노래도 소화해 낼 수 있는 李씨의 넓이와 깊이입니다.

「동백 아가씨」를 처음 취입했을 때는 높은 음을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음이 높다,

좀 낮춰보라는 주문이 있어 음을 낮춰보았어요.

李美子는 높은 음을 잘 소화했던 것처럼 음을 낮추었는데도 역시 완벽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그런 가수를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白映湖씨는 李美子의 목소리는 곱기도 하지만 음폭이나 호흡법 등에서 가수로서 지녀야할 여러 조건마저

천부적으로 타고난 사람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원자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적절히 구사하는 창법이나 목소리를 이어가게 하는 호흡법,

그리고 노래를 소화해 내는 감성과 이해력 등이 혼연일체가 되지 않으면 좋은 목소리를 지닌 사람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좋은 가수가 되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재능과 관련이 있는 신체 부위가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미국 사람들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聲帶(성대)를 영구 보존하여 해부해 보고 싶어하는 마음,

아인슈타인의 뇌를 해부하여 특이한 구조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 등이

모두 「특별한 사람은 신체 구조가 뭔가 다를 것」이라 는 가정과 기대에서 비롯된 호기심이다.


李美子에 대해서도 그런 호기심이 있었다.

黃文平씨도 『李美子의 목소리가 타고난 것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목청 구조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였다.

 

李美子의 死後 그의 성대를 영구보존하여 해부학적으로 연 구해 볼 가치가 있다는 말이 오래 전부터

일본 쪽에서 흘러나왔다.

李美子씨 본인은 아직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런 요청이나 제의를 받아본 일이 없다고 하지만

호사가들 사이에 그런 얘기가 오갔던 것은 사실이다.

 

일반 국민들도 「李美子의 무엇이 저토록 고운 목소리를 내게하고,

또 그 목 소리를 40년 넘게 변하지 않게 하는가」라는 의문을 지니게 되었고,

이러한 의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KBS는 1993년 「일요 스페셜」에서

가수 李美子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그리면서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해부학적인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검사를 맡은 기관은 이화여대부속병원 음성관리소(소장 문영일 박사).

검사 항목은 성대검사, 음폭검사, 발성검사, 공기역학검사 등이었다.

검사 결과 성대검사에서는 『성대에 점액질이 풍부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음폭검사에서는 예상했던 대로 『음폭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李美子의 음폭이 14음폭으로 보통 사람들이나 가수들에 비해 넓은 편이었다.

 

白映湖 씨가 「동백 아가씨를 높은 음에서 잡아도 소화하고 낮은 음에서 잡아도 잘 소화해 내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나,

정풍송씨가 『李美子는 높은 음, 낮은 음 모두 무리없이 해낼 줄 알기 때문에 노래가 자연스러워 듣기에 편하다』고

하는 말 모두 근거가 있는 얘기였다.

 

 

李美子 목소리는 또 음역이 넓고 깊다는 것 말고도 「늙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젊을 때의 음역은 나이가 들면서 좁아지고 처지게 마련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차츰 저음으로 기우는 것이 정상이지요.

 젊을 때는 C메이저로 노래를 하던 사람이 늙으면 D메이저로 키가 낮아지는 식으로요.

李美子는 안 그래요. 젊을 때나 지금이나 음역이 내려가지 않고 그대롭니다. 참으로 놀라워요. 이것 역시 타고난 거지요.

다만 지난해 「내 노래 40년」을 녹음할 때 느낀건데 체력적으로 전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듭디다.

 

 

볼륨에 힘이 덜 들어가는 거예요.

본인도 「어떤 대목에서는 힘을 내어 노래를 하려는데도 힘이 안 들어간다고 실토합디다.

그게 세월이고, 세월은 누구도 못 막는 것 아닙니까』(白映湖)

 

 

즉 李美子의 목소리는 변하는 것이 아니라 체력에 따라 다소 힘이 약해지고 있을 뿐이라는 진단이었다.

발성검사 결과는 『발음이 명확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노래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게 한다』였다.

 

이 점은 「고운 목소리」 못지않게 李美子의 노래를 듣기 편하고 즐겁게 하는 커다란 요소이다.

비록 한국어로 된 오페라일지라도 오페라의 가사를 제대로 알아듣게 부르는 가수는 거의 없다.

 

창법과 발성법 때문이다.

오페라는 서양 음악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의 전통 음악의 하나인 唱(창) 역시 내용을 알아들으려면

사전에 줄거리와 대사 를 熟知(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 역시 창법과 발성법 때문이다.

 

대중가요에서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와 가수가 너무 많다.

그러나 李美子의 노래는 알아듣기 힘든 노래가 없다. 가사의 전달이 너무나 또렷하고 명확하다.


마지막으로 공기역학검사에서는 『호흡이 아주 원활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黃文平씨는 李美子의 장점 중에 특히 호흡법을 첫손에 꼽았다.

 

『가수의 호흡법은 많은 훈련을 통해 개발됩니다.

그러나 李美子는 아무런 훈련을 하지 않고도 자기만의 독특한 호흡법을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발성법도 마찬가지고요.

후천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천부적, 천재적 재능이지요.

李美子의 발성법과 창법은 누구에게서 전수받은 가르 침의 결과가 아니라

李美子식 창법, 李美子식 발성법이라고 밖에 달리 명칭 을 붙일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이것이 李美子의 가장 큰 장 점이자 대가수로서의 면목일 것입니다』

 

「李美子식 창법」과 「李美子식 발성법」은 무한한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黃文平씨의 계속되는 평가다.

 

『국내외 공연장을 다녀보면 공연장마다 환경이 달라요. 마이크의 성능이라 든가 에코 등이 다 달라서

보통 가수들은 그 환경에 맞추기 위해 많은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李美子는 마이크 없이 생으로 무대에서 부르는 버라이어티가 최고인 가수입니다.

그 때문에 공연장의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그 환경을 지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黃씨는

『배우지 않고도 자기만의 목소리를 자기만의 창법으로 완벽하게 부 르는 가수, 그런 가수가 李美子의 뒤로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李美子는 목소리만 타고난 것일까.

목소리는 가수로서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음악에 대한 종합적인 재능이 있어야 만 한다.

리듬과 박자를 이해하고 소화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李美子는 이 모든 분야에서 「타고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평가였다.

요즘은 다르지만 지난날 대중가요를 부른 가수들은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기를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 었다.

「콩나물 대가리」를 읽을 줄 모르고도 노래를 불렀다. 李美子도 그런 경우였다.

 

그녀가 열아홉살에 데뷔곡 「열아홉 순정」을 부를 때까지, 그로부터 수년 후 「동백 아가씨」를 부를 때까지도

음악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기를 만한 교육의 기회는 없었다.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李美子는 훈련받은 어떤 가수보다 노래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이 그와 함께 일해본 작곡가들의 얘기였다.

 

예전에 동아방송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를 하나 맡아 곡을 만든 후 「李美子를 시키자」고 결정했어요.

그런데 취입할 시간이 됐는데도 李美子가 나타나지 않아요. 「건방지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나더군요.

악단장이 李美子를 불러놓고 서너 번 연습을 시켰어요.

아, 그랬는데, 겨우 서너 번 연습을 시켰는데 처음 만난 곡을 완전하게 불러버리는 거예요.

모두들 감탄했고, 나도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黃文平씨)

 

『李美子씨는 신곡을 받아도 두 번 이상 연습하지 않습니다. 연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작곡가가 피아노로 치는 것을 들어봅니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따라서 불러봐요.

그게 끝이에요. 세 번째는 「됐습니다 」 그래요.

李美子씨가 「됐다」면 된 겁니다. 그래서 「어디 해보자」고 시작하면 정말 귀신처럼 정확하게 불러요.

감정까지 적절하게 표현해서 말이지요』(백영호씨) 

 

李美子의 노래에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감정 표현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대중가요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헷갈릴 때가 많다.

노래의 가사와 곡은 슬픈 내용인데, 가수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선정적으로 몸을 흔들고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부른다. 노래의 내용 따로 표현 따로이다.

 

그 자체만 가지고 곰곰 따져보면 이건 영락없이 정신병의 경지다.

그러나 李美子의 노래에서는 그런 정신분열적인 현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 이 또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마력 중의 하나다.

 

李美子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것은 분명한데 오직 트로트를 부르기 위해 그 많은 재능들을 타고난 것일까.

즉 그의 재능은 트로트 부르는 데만 유효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李美子씨 본인도 자신이 트로트만 잘 부르는 가수로 한정되는 것에는 거부감을 보였다.

 

백영호씨는 이렇게 분석한다.

 

『나는 대개 곡을 만들기 전이나 만든 후에 「이 곡은 이래서 李美子에게 맞을 것 같고」,

「저 곡은 저렇기 때문에 李美子에게는 맞지 않고 A가수에게 어울릴 것」이라고 미리 정해놓습니다.

그래서 李美子에게 맞을 것 같은 곡은 李美子에게 시키고 안 맞을 것 같은 곡은 다른 사람에게 줍니다.

李美子에게 안 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곡을 李美子에게 내밀면서 「참고로 한 번 불러봐라.

너한테는 안 맞을 거다」하고 줬는데 그 자리에서 부르는 것을 보니 어, 그게 딱 맞는 거라. 그런 식입니다.

무슨 노래든지 다 소화할 수 있는 가숩니다. 목소리 하나 좋다고 李美子가 아닙니다』

 

 정풍송씨는

『李美子가 소화하지 못하는 양식은 없다』고 했다.

 

『李美子는 트로트가 필요로 하는 색깔과 맛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트로트 뿐 아니고 가곡과 팝 등

모든 양식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가창력을 가졌어요 . 필요로 하는 색깔을 스스로 만들 줄 아는 가수예요.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 미조라 히바리를 두고 「열 두 가지 목소리를 낸다」고 하지만

李美子는 그 다 월등 뛰어난 가창력을 지녔습니다』

 

李美子를 평가해 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의 엔카 가수 미조라 히바리와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미조라 히바리 역시 한국계 사람이라는 것, 엔카와 한국의 트로트가 혈연적으로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 등이

비교의 바탕을 이룬다.

한국의 비평가들은 예외없이 『李美子가 한 수 위』라고 서슴없이 단언한다.

 

본 쪽에서도 『대중들의 삶에 앙금처럼 맺혀 있는 한을 풀어내어 이를 노래로 승화시키는 폭과 깊이는

李美子가 더 낫다』는 사 람들이 많다.

바꾸어 말하자면 일본 가수들의 목소리나 창법은 아름다운 면은 있으나 깊은 울림을 지니지 못한 반면,

한국 가수인 李美子나 한국계 일본 가수인 미조라 히바리는 그것을 절절히 풀어내는 힘을 지녔다는 것,

그 중에서도 일본에서 살아온 미조라보다 李美子 쪽이 더 깊다는 얘기로 간추려진다.

 

李美子가 트로트 아닌 다른 양식의 노래들도 훌륭하게 부를 수 있다는 증거는 많다.

일본 레코드회사에서 취입한 「허공」이 그예이다.

1985년 정풍송씨가 작곡, 그 해 말 조용필이 불러 이듬해 크게 히트한 「허공」은 왈츠곡이다.

 

그러니 애당초 李美子와는 인연이 없는 계열의 노래였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작곡가 정풍송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일본 레코드사에서 「허공」을 일본어로 취입하자는 제의가 왔다.

그것도 조용필 대신 李美子가 불러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게 될까」고개를 갸웃했던 정씨는 李美子가 「허공」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李美子에게 반해버렸다.

정씨도 만족했고 일본의 레코드사도 대만족이었다.

 

조용필의 「허공」과 李美子의 「허공은 색깔과 창법 모두 다른데 각자 특유의 맛이 있었어요.

李美子의 「허공」은 매력적이고 편안했습니다』

 

데뷔곡 「열아홉 순정」도 트로트가 아니었고, 데뷔 이후에도 많은 양식의 노래를 불렀던 李美子는

「동백 아가씨」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트로트 가수」로 한정된 가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동백 아가씨」는 세상을 엎어 놓고 트로트를 대중가요의 중심에 갖다놓으면서

그 노래를 부른 가수 李美子를 「트로트의 여왕」으로 자리매김을 해버렸다.

이후 지금까지 李美子와 트로트는 동전의 양면처럼 세월의 배를 함께 타고 왔다.

 

그 결과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익을 얻었을까.

만일 李美子가 트로트 아닌 다른 노래를 불렀다면 오늘의 李美子가 되었을까.

 

黃文平씨는

『李美子를 만나 트로트는 대중의 사랑을 더욱 받았고, 트로트를 만나 李美子는 오늘의 李美子가 되었다』

고 정리했다.

 

음악평론가 이영미(42)씨는 저서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李美子와 트로트의 관계를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기교나 과장된 가창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호소력을 발휘하는 그 놀라운 가창력이

그를 歌王(가왕)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 시대(1960년대)가 가장 안정적이고 대중적이면서

트로트적인 특성과 생명력을 잃지않은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이다』고 적고 있다.

 

李씨의 지적대로 트로트의 전성기는 1960년대였고, 그 시대는 또한 李美子의 시대였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은 대중음악의 양식이 포크와 발라드, 록과 댄스뮤직, 레게와 랩, 힙합으로

정신없이 바뀌어도 李美子와 트로트는 「흘러간 옛노래」가 아닌 오늘의 노래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분명히 우리 대중들의 삶과 존재의 밑뿌리에 엉겨 있는 한의 정서가 트로트를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저자 월간조선(2002)-소설가 李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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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空(허공) / 이미자(엔카)

 

1

泣き濡れて 諦めた あなたにかけた戀

나키누레떼 아키라메타 아나타니 카케타 코이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眠れない苦しみが 今日も身をせめる

네무레나이 쿠루시미가 쿄우모 미오세메루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はるか離れた あなたをしのび

하루카 하나레타 아나타오 시노비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うつろに 泣く空へ 呼びかける

우츠로니 나쿠소라에 요비카케루

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 옛이야기

 

あなたは命 私の命 別れた二人でも

아나타와 이노치 와타시노 이노치

와카레타 후타리데모

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할 그날들

허공속에 묻힐 그날들

 

 

2

憎しみも喜びも 空しくなった今

니쿠시미모 요로코비모 무나시쿠낫타 이마

잊는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미련이 남아

 

ただ殘こる 面影が 私をなやませる

타다 노코루 오모카게가 와타시오 나야마세루

돌아선 마음 달래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はるか離れた あなたをしのび

하루카 하나레타 아나타오 시노비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うつろに 泣く空へ 呼びかける

우츠로니 나쿠소라에 요비카케루

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옛이야기

 

あなたは命 私の命 別れた二人でも

아나타와 이노치 와타시노 이노치

와카레타 후타리데모

스쳐버린 그 약속 잊어야할 그 약속

허공속에 묻힐 그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