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판사는 보복의 화살 맞게 돼 있다”
한겨레 입력 2012.02.07 15:30 수정 2012.02.07 18:40
조직 내부 관행과 싸우다 1997년 판사 재임용 탈락한 방희선 교수
검찰 고발·헌법소원 냈다가 '소영웅주의·사회생활 부적격자' 비난받아
"연임 탈락 조항은 '엿장수 맘대로' …법원 '밀행주의' 여전"
1992년 한 판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구속영장을 기각했는데도 피의자가 계속 구금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해
경찰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이 그 경찰을 무혐의 처분하자 이번엔 검찰을 상대로 재정신청을 냈다.
이 사건을 빌미로 대법원장이 자신을 인사이동시키자 대법원장을 상대로 헌법소원도 제출했다.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과거 군사정권에 휘둘린 사법부가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사법개혁에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에서도 유신·5공 판사들 정리돼야 한다"고 주장해 '대법원장이 격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소설가 김훈은 기자 시절 그의 싸움을 두고
"공동의 선보다도 공동의 악이 구성원 전체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회에서,
그의 싸움은 1인 대 만인의 싸움이다"라고 썼다.
그 판사의 지금 직업은 교수다.
방희선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왼쪽 사진).
당시 법원 선후배들로부터 '
돈키호테', '소영웅주의', '경거망동', '사회생활 부적격자' 등으로비난받기도 했던 방 교수는 1997년 판사로 임용된 지 11년이 되던 해, 연임 심사에서 탈락했다.
방 교수는 6일 < 한겨레 > 와의 통화에서
"연임이 안 된다는 통보조차 미리 받지 못한 채, 발령장이 나오는 당일 법원장으로부터
'이름이 없다'며 연임 탈락 소식을 들었다" 고 말했다.
방 교수는
"당일날 판사 생활을 접게 하면서 법원장실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니 법복도 다 치워버리는 등
참으로 모욕적인 기억이었다" 고 그때를 회고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가
"이해할 수 없는 조처"라고 성명서를 내고 이후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으나
대법원은 방 판사 연임 탈락 사유에 대해 "개인의 인사사항이라 답변할 수 없다"며 함구했다.
방 교수는
"암암리에 사석에서 '조직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괘씸죄' 등의 사유를 들었다"고 말했다.
1988년 판사 임명권자가 대통령에서 대법원장으로 바뀌면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판사들은 3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이들 외에도 상당수 법관이 '재임용 부적격 대상' 연락을 받고
조용히 사표를 내고 법원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3명 가운데 한 명인 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1993년 판사 신분으로 '법관 조직의 과도한 관료화 계급화는 사법부 만악의 근본'이라는
법원 비판 글을 언론에 기고한 뒤 그해 8월 연임 심사에서 탈락했다.
연임 심사 탈락 뒤 사법부는 '그의 사생활'을 이유 삼았다.
신평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로를 막아버린 사법부의 비민주성, 가족사와 과거의 치부를 조작하는 비열함,
서슴없이 '왕따'시키는 사회의 봉건성에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한 명인 방희선 교수는
앞서 쓴 대로 조직 내부의 관행과 싸우다 역시 연임 심사에서 탈락했다.
다른 한 명은 사적인 문제로 탈락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3명 가운데 두 명이 법원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행동하는 법관'이자 '색깔있는 판사'였다.
방희선 교수가 연임심사에서 탈락한 1997년으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소신 발언을 해온 서기호 판사가
역시 '연임적격여부 심사'를 받게 돼 논란이 일고 있다.
서기호 판사는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 때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알리고
비판했던 '튀는 돌'이었다.
'외로운 싸움'을 하고 법원에서 밀려난 방희선 교수는 이 사태를 어떻게 볼까.
방 교수는
"법원이 '근무성적' 등을 이유 삼고 있는 서기호 판사는 내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방 교수는
"15년이 지나도록 법관의 임명과 연임에 관한, 공개된 구체적 기준이 없으며
역시 연임 며칠 전에 통보하는 방식의, 법원의 '밀행주의(밀실행정주의)'와 '권위주의'는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방 교수는 또한
"나를 비롯해 법원을 비판하고, 법원에 도전적인 의견 표명을 하는 법관들은 인사조치 되는 등
제대로 법관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도 말했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판사의 연임발령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유로
△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해로 인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 판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등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이 세 조항에 대해 방희선 교수는
"'엿장수 맘대로'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방 교수는
"판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의 '품위'는 무엇을 말하냐"며
"너무 막연한 말"이라고 비판했다.
방 교수는
"예전에 법관이 법정에서 피고인을 향해 막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술자리에서 누가 봐도 품위 없는 행동을 하고 법원 안팎으로 소문이 자자한 경우에도
'공론화되지 않은 경우' 품위없는 판사가 아니었다"며
"어떤 경우는 사소한 개인적 실수인데도 '품위'조항에 걸려 판사를 할 수 없고
어떤 경우는 아주 거대하고 잦은 행위지만 '품위없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결국 이렇게 '두나마나한 레토릭' 조항은 결국 인사권자에게 전권을 쥐어주기 위한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서기호 판사 사건도 논란이 있는 것은 자의적인 조항으로 판사의 재임용을 심사하기 때문"이라며
"독일처럼 '법관의 임명과 연임에 관한 법률'을 따로 두고 공식적 심사기구를 두고
누가 봐도 공정하게 심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기호 판사는
대법원 산하 법관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6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연임심사 절차가 매우 불투명하고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법원 행정처로부터 받은 10년 동안의 근무성적평정을 공개했다.
서 판사는
자신의 근무평정이 개정된 법원조직법이 정한 근무평정 기준에 따라 작성되지 않은 점,
'근무성적 현저히 불량'에 해당할 객관적 근거가 없는 점 등을 들어
"근무평정의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재임용 심사를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 판사는 이에 따라
"부적격 심사 절차는 당연히 방어권이 충실하게 보장되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헌법상 법관의 신분보장과 재판의 독립 원칙을 위반하였다는 논란과
법적 분쟁이 장기화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서기호 판사가 자신의 근무평정에 대해 수긍하지 못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며
"인사평정권자들에게 밉보이면 안 좋게 써버리는 것이 근무평정으로,
근무성적 좋다는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눈 밖에 나거나 언론보도에 '판결문' 이외의 방식으로 노출되거나 논란이 되는 개인적 발언을 하는 등
'튀는 판사'는 법원에서 버티기 힘들고 결국 '보복의 화살'을 맞게 돼 있다"라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현행 근무평정 기준은 1995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소속 법원장들이 만든 객관적·주관적 자료를 토대로
나름의 항목을 평가하는 것이어서 자의적이라는 주장은 과하다"며
"바뀐 법원조직법에 따른 파기율(원심 판결이 취소되는 비율) 등 구체적 수치를 토대로 한 근무평정기준은
올해 만들어져 올해부터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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