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

연연 않겠다던 MB ‘회담 구걸’ 이중성

기산(箕山) 2011. 6. 2. 00:04

 

연연 않겠다던 MB ‘회담 구걸’ 이중성

 

청와대 침묵… 보수진영서도 “굴욕적”
남북 모두 ‘강 대 강’ 예고 파국 불가피

 

                                                                         경향신문 | 박영환 기자

                                                                         입력 2011.06.01 22:03 | 수정 2011.06.01 22:40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한 1일

정부는 긴박하고 곤혹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남북 정상회담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말과 달리

뒤로는 비밀접촉을 하면서 정치적 목적의 정상회담을 추진한

'이중 외교'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날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 형식을 통해

지난 5월 베이징 비밀접촉의 전말을 공개한 것은 오후 2시48분.

 

연합뉴스를 통해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는 충격에 빠졌다.

북측의 메가톤급 공격에 대한 첫 대응은 침묵이었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등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들은

모두 전화기를 꺼놓은 채 언론 접촉을 피했다.

천 실장은 보도 직후 이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으며,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관계 수석들을 모아 긴급대책회의에 들어갔다.

2시간이 넘는 회의에서는 비밀접촉 사실을 인정할지,

천안함 사과 관련 절충안을 요구했다는 주장과 돈봉투를 건넸다는 주장 등에 대한

대응책이 논의됐다.

청와대는 장시간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은 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상황 발생 3시간이 지난 오후 5시50분쯤 청와대는

"조선중앙통신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기로 했다.

통일부에서 입장을 밝힐 것이다"라고 전했다.

비밀접촉 당사자로 지목된 김 비서관은 내부 회의 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통일부에서 당국 간 접촉만 확인하기로 했다"면서

본인의 참석 여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민감한 사안이 터진 뒤 통일부를 앞으로 내세우며 청와대는 뒤로 빠진 것이다.

접촉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고 있던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오후 6시30분쯤 브리핑에 나섰다.

 

천 대변인은

"진의를 왜곡한 일방 주장으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내용의

세 줄짜리 논평만 내놨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접촉은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 성격이 아니다"라면서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에서도 사과와 재발방지를 분명히 요구했다"고 밝혔다.

돈봉투를 건넸다는 주장도 "황당한 얘기"라고 부인했다.

북한이 외교관례를 어기며 이면접촉 인사와 시점, 장소까지 밝히면서

남북관계는 파국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북측으로선 초강경 카드를 통해 이명박 정권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초부터 대화공세를 펴오던 북한이 대남 정책기조를 강경모드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이봉조 전 통일부 장관은

"접촉을 통해 우리 정부 입장을 들어봤더니 더 이상 상종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고 풀이했다.

정부로서도 '애걸·구걸·너저분'이란 소리까지 들으며 공개 면박을 당한 만큼,

더 이상 남북접촉을 시도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절충을 시도했다는 북측 주장이 제기된 만큼

정부로선 더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이제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 요구를 절대 접을 수 없게 됐다"면서

"지금보다 더욱 독해져야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치적으로도 보수와 진보 사이에 끼이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정부의 일관된 원칙론을 지지했던 보수 세력은 '굴욕외교'라고 공격에 나섰다.

자유선진당 윤혜연 부대변인은

"만일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자존심도 배알도 쓸개도 없는

한심한 정부라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반대로 민주당 등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대북정책과 '밀실 외교'를 비판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겉으론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하며 뒤로는 정상회담을 애걸하는 이중적 자세는

국민을 속이는 자세로 진정성도 없고 실효성도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의 한 간부는

"대미지가 클 것 같다.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우리가 누려온 도덕적 우위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한다"고 진단했다.



< 박영환 기자 yhpark@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