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냐 쿠데타냐?… 5·16 50주년 평가는 아직도 논쟁 중
국민일보 | 입력 2011.05.15 18:44 | 수정 2011.05.15 21:28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은 끝없이 그에 대한 선택적 평가를 강요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적과 동지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의 말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극심한 이념갈등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가 일치되는 경우가 없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박정희 평가'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고 할 정도로 뜨겁게 부딪힌다.
5·16 50주년을 맞아 열린 각종 토론회에서도 이런 차이가 분명하게 확인된다.
◇ 5·16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
50년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5·16에 대한 성격 규정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쿠데타'와 '혁명'이 여전히 맞부딪친다.
지난 13일 한국정치외교사학회가 주최한
'5·16과 박정희 근대화 노선의 비교사적 조명' 학술행사에서
정일준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5·16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정치적 담론이 형성되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간 쿠데타라는 규정에 반발해온 보수 진영에서 나온 얘기 중에는
변화의 기미도 엿보인다.
대표적인 보수학자로 꼽히는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박정희연구원이 주최한 '박정희 통치철학 국제포럼'(13∼14일)에서
"5·16은 정변이며 혁명"이라고 해석했다.
"5·16은 분명히 정변(政變)이다.
군사 쿠데타라는 비합법적 수단으로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몰아내고
정권을 탈취한 정변이고 사변(事變)이다.
그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고 또 부인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 정변으로 하여 산업화를 성공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냈다.
다시 국가를 만드는 국가재조(再造)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명백히 '산업화 혁명'이며 '국가재조 혁명'이다.
그렇다면 5·16은 정변이면서 혁명이다."
송 교수는 4·19에 대해서도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밑으로부터' 일어나서 구 정권을 몰아내고 새 정권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4·19와 5·16, 이 두 혁명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야권 인사들이 주축이 된 민주복지포럼(상임대표 이부영)이 16일 개최하는
'5·16쿠데타 50돌 학술대회 자료집 출판기념회'에서는 진보 진영의 박정희 평가가 결집된다.
강연자로 나서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미리 배포한 원고에서
"박정희 찬양론의 핵심은 경제성장"이라며
"만약 우리가 경제만 잘 되면 다른 것은 볼 것 없다는 경제지상주의에 기대
박정희의 군사반란과 헌정질서 파괴, 인권유린과 정보정치를 용인한다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시대 YH무역 노동조합위원장을 지낸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도
"세계 최저의 임금수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세계 최대의 산업재해로 벌어들인
초과이윤을 재벌들에게 몰아주어 급속한 산업화, 즉 고도성장을 달성한 것이
박정희 개발독재의 실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른 토론회에서 나온 전상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부국이 된 것은 박정희 시대의 공적으로 정확히 평가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적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국 사회와 경제에 내재한 성장의 잠재력을 극대로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의 평가도 진보 진영과 여전히 격차가 크다.
◇ '박정희 논쟁'은 계속된다 =
'박정희 논쟁'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등 야권은 '박정희=독재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독재자의 딸'로 몰아붙일 기세다.
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3월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이기면 지금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달리는 사람의 별명은
'독재자의 딸'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영 전 의원도
"박근혜가 '선진국 진입' '복지국가' '성장을 통한 분배'를 내세운다"면서
"그것은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잘 살아보세' '선성장 후분배'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화장만 조금 고친 것"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경제 치적을 강조하고 있다.
박 전 대표도 여러 차례
"박 전 대통령의 통치에는 공과(功過)가 있다"면서
민주화 운동을 억압했던 데 사과하면서 산업화의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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